한의학, 패러다임, 그리고 21세기의 고민(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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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패러다임, 그리고 21세기의 고민(6)
  • 승인 2008.04.04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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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수

박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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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마음의 전우(중) ■

지난 회의 괘는 지화명이(地火明夷)였습니다. 땅속에서 불이 오래 타면 뜨거운 물이 되어 가끔은 땅 위로 용솟음칩니다. 그것이 곧 용암(鎔巖)입니다.
한의학적으로 해석하면 ‘불이 극(極)하면 물을 닮은 모습이 나타난다(火極則似水)’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행(五行) 중의 한 가지 기운이 너무 과(過)해서 지나치면 자신을 이기는 모습으로 바뀌어서 스스로 억제하게 되어 평형을 유지하게 되는, 곧 ‘항해승제(亢害承制)’의 원리가 실현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화명이괘의 하괘(下卦)인 ‘불기운의 이괘(離卦)괘’가 ‘물기운의 감괘(坎卦)’로 바뀐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지수사(地水師)괘’가 되는 것입니다.
지수사괘의 괘사(卦辭)는 ‘사(師)는 바르게 하는 것(貞)이니 장인(丈人)이라야 길(吉)하고 허물이 없으리라(无咎)’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사(師)는 ‘무리, 집단, 군대, 군사’ 등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군중이나 어떤 집단, 군대 등을 바르게 이끌어야 하며, 경험이 많거나 그런 일에 능숙한 사람이 무리를 이끌어야 큰 탈이 없고 잘못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계속해서 나오는 단사(彖辭)에는 ‘능하여 무리를 바름으로써 하게 되면(能以衆正) 가히 왕이 될 수 있을 것이리라(可以王矣)’라고 하였으니 올바르게 군중을 이끌 수 있다면 어느 한 집단의 리더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리더의 덕목 중에 ‘바름(正)’이 필수적이라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위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지수사(地水師)’괘는 지도자의 요건으로서 ‘바름(貞과 正)’을 첫머리에 두었습니다. 그만큼 앞에서 이끄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바르게 함’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오장 중에 군주, 곧 왕(王)의 위치에 있는 것이 ‘심(心)’입니다. 이제마 선생님도 동의수세보원에서 ‘심’을 ‘중앙의 태극(中央之太極)’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장육부, 14경맥, 365체(體)를 이끌어 나가는 ‘심(마음)’의 바름(正)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의 바르지 못함, 곧 그릇됨(不正則邪也)은 나머지 몸 전체를 이끌어 나감에 있어 허물이 많이 따를 것입니다. 허물이 많은 몸은 곧 병든 몸이 됩니다.

이것은 곧 지수사괘의 초효(初爻)에 나오는 ‘군대가 나아가는 데 있어서 규율로 할 것이니(師出以律) 그러하지 아니하면(否) 착하더라도(臧) 흉(凶)하니라’는 내용과 뜻이 통합니다. 착하더라도 흉하다는 것은 단순히 착한 것(善)만으로는 집단을 이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올바르게 이끌어야 전신이 제대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니 한편으로는 ‘심이 바르지 못하면 혈맥을 제대로 주관하지 못하여 오장육부와 전신지체에 병이 든다(心不正而不主血脈 卽病於臟腑肢體)’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한 집단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것과 우리 몸의 중심장부인 마음(心)이 가져야하는 것으로서 바름(正)이 중요함을 알 수 있는 괘가 지수사(地水師)인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뜻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해도 바르게 하지 않으면 좋지 않은 결과가 나타날 수 있음을 강조하는 것은 ‘목적론적 세계관’에 대한 경계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선한(善意) 목적에 의해서 수단이 정당화될 수 있음’에 대한 경계인 것입니다.

지수사(地水師)가 의미하는 또 다른 중요성은 ‘장인(丈人) 즉 전문가’에 대한 강조입니다. ‘바르게 하되 장인이어야 좋고 허물이 없을 것이라’하였으니 집단을 이끄는 사람은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전문성은 현대적으로 ‘professional 혹은 specialist’에 해당되는 속성입니다. 지난 회에서 서로 다른 패러다임은 서로 다른 문제해결책을 제시하고 그러한 서로 다른 문제해결책을 구체화하는 ‘실현자들’이라는 존재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그 ‘패러다임 실현자들’이 바로 일종의 ‘숙련된 전문가집단(experienced specialist group)’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패러다임이 정착되고 계승되려면 우선적으로 그 패러다임을 학습하여 익숙하도록 훈련받는 사람들(disciplined trainees)이 있고, 그 다음으로 익숙해진 패러다임의 문제해결방식을 통하여 새로이 나타나는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숙련된 전문가집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의학적 패러다임의 전문가집단은 바로 ‘한의사들’이고 양의학적 패러다임의 전문가집단은 ‘양의사 혹은 양방 각과의 전문의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떤 패러다임이 실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곧 그 패러다임을 실현하고 있는 ‘전문가집단’이 실재하는가를 살펴봄으로써 풀릴 수 있을 것입니다. <격주연재>

朴完洙(경원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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