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369] 愚岑雜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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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369] 愚岑雜著
  • 승인 2008.03.2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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賞春客의 醫案錄

미간행 원고본 하나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저자는 愚岑이란 호를 가진 지방의원으로 본문 첫 장부터 대뜸 기막힌 치험례로 시작하여 시종일관 자신의 치료사례와 경험방을 수록하는 것으로 본문을 구성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의안의 요지이다.

癸巳年 봄 3월 어느 날 저자는 일을 구실삼아 길을 나서서 順天 땅 어느 고을에 발걸음이 닿았다. 다리가 아파 잠깐 쉬러 들른 주막에서 산수 풍광을 감상하다가 그만 주저앉아 날이 저물고 말았다. 저녁상을 받아들여 수저를 드는 순간 어디선가 은은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주모를 불러 사연을 물은 즉 미간을 찡그리며 하는 말이 나이 40에 딸 자식 하나를 두었는데 시집갈 나이에 갑자기 병이 들어 온갖 방도를 구해 치료해도 낫질 않고 2달이 지났건만 날로 심해져 시름시름 앓고 있다고 하였다. 주모가 딸을 살려달라고 간청하는지라 마지못해 수응하게 되었다.

가만히 그녀의 행색을 보아하니 자색이 요염하고 세상에 보기 드문 규수인지라 진맥을 해보니 양 척맥이 모두 浮動하고 좌측 關部만이 弦數한 맥상을 띠고 있었다. 이것은 필시 남자를 그리워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아 心脾가 손상된 까닭에 肝氣鬱結되고 脾虛下陷이 되었으니 이른바 ‘陰虛火動’이란 것이다. 확인차 소복과 陰門이 묵직하게 짓누르는 증상이 있는가 물었더니 부끄러워 대답하지 못한다. 죽을 지경에 이르렀으니 숨김없이 隱曲한 말을 다하라 한즉 얼굴을 붉히고 머리를 떨어트리며 수긍하였다.

살아날 방도가 있으니 근심하지 말라하고 神門, 行間을 瀉하고 照海를 補하고 다음으로 폐와 대장경의 絡脈과 列缺을 취혈하였다. 탕제는 龍膽瀉肝湯에 靑皮를 넣어 5첩을 주어 肝膽의 울기를 소통케 하였으며 다음으로 逍遙散에 黃芩, 黃連, 山梔를 더하여 凉血시킴으로써 養血扶陰하고자 하였다.

길을 떠날 즈음에 당부하길, 내가 다시 돌아올 때 까진 보름 정도가 소요될 듯 하니 그 사이에 연속하여 복약하면 너의 병이 나을 수 있을 것이라 말하고 발걸음을 돌려 松廣寺로 향하였다. 산수간의 기기묘묘한 절경과 웅장한 절집의 풍관이 가히 三南의 大刹이라 할만 했다. 3일을 머물다 선암사를 거쳐 깊은 산속을 헤매는데, 입에서는 시귀가 절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해는 이미 서편으로 기울었는데 달은 산봉우리 위로 떠오르고 수풀 너머로 아련히 오래된 암자에서 종소리가 들리네. ……”라고 노래하였다. 가곡 성불사의 밤을 떠올리게 하는 詩想이 아닐 수 없다.

집안 친척의 집에 들려 일을 마친 후 광청리의 객점에 들르니 그 여인네는 이미 병이 나아 출입이 평소와 같았다.
내가 돌아오기 까지 불과 10여일이 지났을 뿐인데 2제를 복약하는 도중에 15첩을 넘기지 않고 쾌차하였다고 하니 정말 우연이라고만 하기에는 기막힌 만남이 아니겠는가?

다소 내용 소개가 길어졌지만 본문에 기술된 것을 골자만 압축한 것이다. 경험담 다음에는 본문에 소개된 2~3가지 방제의 내용이 고스란히 적혀 있다. 초고인지라 군데군데 지우고 수정한 부분도 많고 때론 거친 문장이 섞여 있어 읽어 내리기가 간단치 않지만 일기처럼 저자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기록한 내용이어서 한결 생동감이 넘친다.

또한 의안마다 병증과 진단 결과, 병리 분석 그리고 투약과 처치 및 향후 예후까지 자세히 기록하고 있어 매우 연구가치가 높다.
다만 서두에 저자와 저술시기 등이 명확하게 표기되어 있지 않아 아쉬운데, 표지에는 ‘丙午仲秋月’로 작성시기가 표기되어 있지만 어느 해 병오년인지 추정하기 위해서는 세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상우
(042)868-9442
answer@kio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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