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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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 승인 2008.03.07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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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의 아픔을 스스로 치유하는 사람들

홍콩의 영화감독 중에는 세계적인 감독들이 몇 명 있는데 그 중 대다수는 할리우드로 넘어가서 작업을 하고 있다. 왕가위 감독 역시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리는 감독이지만 꾸준히 아시아에서 아시아의 배우들과 작업을 계속해 왔었다. 왜냐하면 그의 영화에는 서양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동양만의 정서가 듬뿍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기존의 왕가위 영화의 한문 제목과는 달리 영문 제목이고, 나오는 배우들도 할리우드 스타들이다. 그래서 사실 눈 크게 뜨고 감독이 누구인지 파악하지 못했다면 이 영화는 그냥 스쳐지나갈 뻔 했던 작품이기에 더더욱 호기심 가득 찬 눈으로 영화를 보게 한다.

아픈 이별을 경험한 엘리자베스(노라 존스)는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카페 주인 제레미(주드 로)를 만나게 되고, 그가 만들어 주는 블루베리 파이를 먹으며 대화를 나누면서 조금씩 상처를 잊어간다. 어느 날, 엘리자베스는 실연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훌쩍 여행을 떠나게 되고,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은 제레미는 매일 밤 그녀의 자리를 비워두고 기다린다.

지금까지 왕가위 영화를 한 편이라도 본 관객들이라면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대번 알 수 있을 정도로 왕가위만의 감성으로 만들어진 영화로 마치 <중경삼림>의 할리우드 버전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왕가위 감독은 세계 어디를 가서 촬영해도 영화 속 공간은 항상 홍콩의 건물처럼 좁고 제한적이며, 지하철이 지나간다.

또한 그러한 공간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누군가를 항상 그리워하지만 다가갈 수 없음에 마음 아파하는 인물들이다. 이 영화 역시 실연당한 남녀가 좁은 식당에서 만나게 되고, 서로의 아픔을 달래주면서 또 다른 사랑이 싹 트게 된다는 전형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이전 작품과 달리 왕가위 감독은 여주인공에 포커스를 돌리며 그녀의 여행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여주인공이 내적으로 자기 치유를 하면서 성숙해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뭐든지 빠른 현 시대에서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매우 느린 템포로 아날로그적인 사랑을 나누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지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흔한 핸드폰 대신 유선 전화기로, 이메일이 아닌 편지로 자신을 이야기하고, 상대를 그리워하면서 내적인 소통을 하는 주인공들을 통해 기존의 할리우드의 멜로 영화와는 달리 베드신 하나 없어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동양적인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홍콩의 어떤 배우가 나와도 충분히 역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시적인 대사와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지는 미국의 모습들이 꽤나 독특한 가운데 이 영화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음악이다. 탁월한 영화음악 선택으로 정평이 나 있는 감독답게 영화를 보고 나면 OST를 구해서 듣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날 정도로 매혹적이며, 특히 여주인공인 노라 존스는 그래미상을 수상한 재즈 가수로 영화의 주제가를 부르기도 했다. 2007년 칸 영화제 개막작으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상영 중>

황보성진(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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