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近現代 韓醫學 人物史24] 趙性燦(1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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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現代 韓醫學 人物史24] 趙性燦(1865~?)
  • 승인 2008.02.29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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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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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의 아픔을 함께 한 儒醫

1913년 10월에 『漢方醫藥界』라는 한국 최초의 한의학관련 학술잡지가 간행된다. 이 잡지는 한의학의 학술연구를 진작시켜 한의학의 부흥을 꾀하고자 朝鮮醫生會라는 단체에서 만든 역사 깊은 잡지이다.
1914년 1월에 2호가 간행되는데, 이때 “한방의학의 개량”과 “한의학의 연구정진”이라는 구체적인 슬로건을 내걸게 된다. 朝鮮醫生會는 본래 朝鮮醫學講究會라는 명칭으로 활동했던 단체가 1913년 醫生制度가 발표되면서 이름을 바꾼 한의사 단체이다.

醫生制度는 한의학을 말살하기 위해 일제가 만든 정책이다. 일제는 조선의 실상이 아직 西醫배출이 태부족일뿐 아니라 의료시설도 확충할 수 없는 실정이므로 이것들이 해결될 때까지 당분간 한의사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리하여 醫生制度라는 모호한 법을 구상하게 되었다. 이것이 1913년 11월 15일에 발포된 醫生規則이다. 이것은 1914년 1월 1일부터 시행토록 하였다.
『漢方醫藥界』 2호의 앞부분에는 朝鮮醫生會의 중요 활동인물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여기에는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위엄있는 표정의 趙性燦이라는 인물이 소개되어 있다.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天上에 無不識字之神仙이라 하나 世豈有不讀儒之良醫乎아 君은 以儒家講匠으로 感范文公所謂 不爲良相인대 當爲良醫之言하야 遂專意於醫學者十星霜數矣라 甞以典醫로 屢奏顯效하야 受賞이 多矣러니 自數年以內로 私設病院하고 以誠治病하며 以誠用藥하야 無往不誠하니 噫라 君은 可謂誠而神者也로다.”

이 내용을 살펴보면 趙性燦은 본래 儒學을 전공한 儒學者 출신으로서 醫學을 연구한 儒醫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宋代의 儒者였던 范文正公의 “좋은 재상이 되지 못할 것 같으면 마땅히 좋은 의사가 되는 것이 낫다(不爲良相, 當爲良醫)”라는 말은 당시 儒醫들이 마음에 품고 있었던 좌우명으로서 趙性燦도 가슴에 새기어 두었던 名句였다. 趙性燦은 10여년의 한의학연구 끝에 典醫로서 宮中에서 활동하면서 뛰어난 醫術로 상을 받기도 하였다.

趙性燦의 행적을 알아볼 수 있는 기록이 그다지 발견되지 않기에 그의 생애를 알아내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朝鮮王朝實錄』의 1904년 7월 2일의 기록에 따르면 趙性燦은 의원면직 즉 그 자신의 의사에 따라 면직된 것으로 나타난다.
그가 궁중에서 의학만을 전업으로 하는 御醫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가 궁중에서의 활동을 접고 한의사로 활동하여 장안에서 이름을 떨쳤던 것이다.
당시 조선에서는 儒學을 전문으로 하는 관리로서 의술로 이름을 내었던 인물들이 많았던 것을 볼 때 趙性燦은 관리로서 궁중에서 의술도 겸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1912년이 되면 그동안 朝鮮醫士總合所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임원들이 모여서 朝鮮醫學講究會라는 단체를 만들게 되고 1913년 11월 15일에 醫生規則이 공포됨에 따라 朝鮮醫生會라는 명칭으로 단체명을 바꾸게 되면서 趙性燦은 한의사 사회에서 이름을 내기 시작하였다.
趙性燦은 朝鮮醫生會의 評議員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漢方醫藥界』 2호에 다음과 贊詞를 쓴다.

“크도다 의학이여. 그 유래가 멀도다. 시초에 백성들이 藥餌를 쓸 겨를 없음에 聖人이 처음으로 강림하여 백상들의 요절을 근심하였다. 이윤이 처음 창제하고 신농과 황제가 세상에 내려왔고 화타와 편작이 모습을 드러낸 후로 갑자기 크게 바로 잡혀지게 되어 이 의학의 도가 다시 밝아지게 되었다. 동양과 서양 兩方은 한가지로 돌아가노니 안팎으로 시술한다면 추호의 오차도 없을 것이다. 우리 동포들이여 영원토록 더욱 창성할지어다.(大哉醫乎, 其來遠矣, 厥初生民, 未暇藥餌, 聖人首降, 憂民其夭, 伊孰草創, 神農軒岐, 降于季世, 華扁旣邈, 奄及大正, 斯道復明, 東西兩方, 一輒同歸, 內外施術, 一無差毫, 欽我同胞, 永世益彰)”

이렇듯 趙性燦은 일제에 의해 국권을 강탈당한 즈음에 궁중에서의 관료생활을 접고 한의학에 전념하여 의술로 이름을 떨쳤던 불행한 조선말기의 지식인이었다.

金南一
경희대 한의대 醫史學敎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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