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366] 疑獄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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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366] 疑獄集
  • 승인 2008.02.29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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獄事에 疑惑을 없게 하라

웬만큼 고전에 해박한 독서가라 할지라도 조선에서 간행한 책 중에 이런 이름의 고문헌이 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으리라 본다.
원작은 중국의 五代시대에 和凝(898~955)이란 사람이 疑獄事案 즉 법의학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의혹사건의 사례 29건을 모아 편찬한 것이다.
아들인 和몽(951~995)이 뒤를 이어 증보하여 완성했다고 하는데,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적지 않은 내용이 보충되었다고 한다. 때론 원작이 망실된 상태에서 후대인들이 상당 부분 改撰을 거듭하였고 淸代 『四庫全書』에 이르러서는 상당히 변형된 내용의 판본이 저본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특히 현전본은 3권1책으로 되어 있는데 반해 후대의 여러 판본은 4권 혹은 6권 나아가 10권으로 합본된 것이 전해지며, 『사고전서』의 의옥집 提要에는 “지금 전해지는 4권본은 후인들이 나눈 것으로 의심된다.”고 지적하면서도 明代에 나온 『補疑獄集』과 10권본을 수록해 놓았다.
다만 『玉海』에는 “화응이 29조를 모아 상권을 만들고 아들 화몽은 38조를 이어 하권을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어 아버지가 상권을 짓고 아들이 중, 하 2권을 더한 형태로 현전 버클리대학 소장 조선본과 가장 흡사한 체제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의 관심사는 무엇보다도 이 책이 어느 시기에 우리에게 입수되어 어떻게 쓰여졌는가 하는 점이다.
이 책이 처음 들어온 시기는 분명치 않다고 하나 현전본의 저본이 된 것은 고려 문종 13년인 1059년에 開板된 기록이 남아 있다.
또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1418년(태종18)과 1483년(성종14)년에 다시 간행함으로써 이 책이 조선 초기에 국가경영과 통치기반을 확립해 가는 시점에서 매우 중요한 형법서 혹은 법의학서로 사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국내에서 이 책의 존재에 대해 잘 몰랐던 이유는 전본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지난 해 오용섭 교수가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동아시아도서관에 소장되어있는 책이 조선 초기에 간행된 조선본임을 밝혀낸 서지학적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논문에 의하면 현재 중국과 대만, 일본에 전하는 여러 가지 『의옥집』 중에서 가장 오래된 판본 이래야 1535년에 나온 것이라 하니 청대에 이르러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변형되어 버린 판본은 논외로 차치하고서라도 이 조선간본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책임을 말해 준다.

이 책의 간행 사실은 『高麗史』 文宗조에 安西都護府使 都官員外郞 異善貞 등이 肘後方 73판, 疑獄集 11판, 川玉集 10판 등을 새로 찍어 바쳤는데, …… 秘閣에 비치하게 했다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오늘날 남아 있는 조선판본도 역시 이때에 새로 찍은 고려본을 저본으로 삼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선조시기에 간행된 『고사촬요』에는 永川에 의옥집 판목이 있다고 되어 있지만 성종 때 이후로는 간행했다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이로 보아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법의학서인 『無寃錄』(1308년)보다 원작도 3~4백년 정도 앞선 시기에 저술된 것이고 조선조에 들어서도 『무원록』보다 앞서 조선판을 간행하여 배포한 것으로 보아 그 비중이 결코 낮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태종, 세종, 성종조 국가의 정치제도가 정비되어 가는 시점에 이들 법의학서가 연거푸 간행되었다는 사실은 통치기반의 확립뿐만 아니라 사법행정의 절차와 제도의 마련이라는 측면에서도 법의학적인 기반이 필수적이었음을 시사해 준다.

현재로선 이 『의옥집』이 일반 의학문헌에 크게 활용된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이 책과 함께 고려정부에서 간행했던 『川玉集』은 『동의보감』 편찬 당시 주요 참고문헌으로서 歷代醫方의 첫머리에 자리하고 있다.
이 책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檢驗專門書이자 『무원록』, 『세원록』과 더불어 조선 전기이전의 법의학적 판단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자료이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상우
(042)868-9442
answer@kio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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