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주 칼럼] 한의학 vs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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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주 칼럼] 한의학 vs 한의사
  • 승인 2008.02.1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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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에 대한 비판을 반박하거나 변명해야 할 입장에 처했을 때, 필자는 항상 한의학과 한방의료, 개별 한의사의 행태를 구분해 달라는 말을 한다. 의사 한 사람의 잘못된 행태를 이유로 서양의학 전체를 비난, 부정하지 않으며, 현실 의료에는 의학만이 아니라 의료제도의 문제점이 반영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지적에 많은 사람들이 수긍한다.

그러나 개별 한의사의 문제가 단지 개인의 책임 영역에만 속하는가라는 질문이 이어지면, 고민거리가 많아진다. 이런 논리로 한의학을 옹호하고자 한다면, 학문 자체의 속성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문제와 개인의 미숙함, 능력부족, 잘못된 태도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가 구별되어야 할 뿐 아니라, 후자를 제도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교육체계와 자정제도가 구비, 작동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의학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이 현실적으로 ‘한의사의 정체성’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한의학 교육의 획기적인 변화가 절실하다는 주장은 이 지면을 통해 몇 차례 다루어진바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한의사들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의료체계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외부의 기대수준과 한의계 내부의 기준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의료인의 역할 인식이라는 관점에서 의사와 한의사를 비교해 보면 개개인의 편차를 뛰어넘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물론 기초와 임상, 내과계와 외과계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의사들은 자신의 치료의 한계에 대해 잘 알고, 거기에 부담을 느끼지도 않는다. 자신의 실력 부족이 아니라 현대 의학 수준의 한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세분화된 자신의 영역 밖의 의학 지식을 잘 모르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모든 영역을 알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그럴 필요도 없다. 어떤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고 환자를 의뢰할지 판단할 수 있는 지식만 갖추면 된다. 정해진 프로토콜을 따르면 되므로, 학교 공부는 좀 더 힘들어도 의사로서 진료하기는 한의사보다 더 편하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한의사들은 한의학의 전인적인 특성상 치료 영역을 국한시키는 것도 힘들고, 서양의학의 기초적인 지식도 습득해야만 하는 부담을 가지고 있다. 또 서양의학과는 다른 관점에서 치료의 가능성을 평가하므로, 환자가 잘 치료되지 않으면 자신의 실력 부족으로 탓하거나 서양의학에 대한 열패감에 빠져버리기도 한다.

백가쟁명의 이론과 임상 때문에 졸업과 수련 후 과정에서도 끊임없는 공부 압박에 시달린다. 꼭 명의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실력을 갖춘 성실한, 좋은 한의사가 되는 것은 평균적인 좋은 의사가 되기보다 더 어려워 보인다.

더 이상 한의사 개인에게 한의학을 대표하는 무한 책임을 지게 해서는 안 된다. 한의사 다수가 개원하여 일차 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꼭 필요한 교육 내용은 무엇이고, 어떻게 그것을 정확하게 가르치고 습득할 수 있을까? 한방 의료의 전문화와 한방 의료전달체계 수립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야 할까?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한의학의 통일성 확보가 시급하다. 다양한 관점은 한의학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장점이기도 하지만, 한의사라면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최소한도의 통일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또 그 통일성은 양적으로는 최소한도이지만, 질적으로는 한의학의 정수를 놓치지 않는 통일성이고 정체성의 수립이어야 한다. 나만 옳다는 독선을 버리고, 극좌 극우 편향을 벗어난, 생산적인 논의, 활발한 논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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