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주 칼럼] 다시 한 번 희망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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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주 칼럼] 다시 한 번 희망 만들기
  • 승인 2007.11.0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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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오랫동안 보건복지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는 의사 친구를 만났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약사나 의사들에 비해 한의사는 너무 비정치적이고 세련되지 못했다. 한의계 대표선수로 자타가 공인하는 역량 있는 한의사들이 정부 부처에 더 많이 진출해야 되는데, 아직은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말을 들었다. 한의사들이 모이면 늘 하는 말이었건만, 한의계 밖의 사람의 입을 통해 다시 들으니 기분이 묘해졌다.

대선 공약에 관한 토론이 이루어진 지난번 한의학미래포럼에 참석해서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었다. 전체 대선 판 자체가 많은 사람들의 포기와 무관심 속에서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그 모임도 썰렁했다.
의사가 지지하는 후보와 한의사가 지지하는 후보가 명확하게 갈렸던 2002년 대선에 비해, 이번 대선은 여전히 오리무중이기 때문일까? 그것보다는 ‘희망이 없다’는 생각, ‘한의계가 뭘 할 수 있겠느냐’는 냉소주의, 무기력감이 근본적인 이유로 보였다.

필자는 95~96년의 한약분쟁으로 인해 전원 유급되고, 7년 만에 졸업할 수 있었던 한의사들 중 한 명이다. 1년 반이 넘는 투쟁 기간 동안 가슴 벅찼던 일, 뜨거운 논쟁들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 벌써 1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당시 투쟁 목표가 다 이루어서 이제는 더 요구할 것도 쟁취할 것도 없기 때문이 아니라면, 한의계는 이러한 목표상실, 방향상실의 상태를 하루빨리 극복해야 한다.

대선 공약은 기본적으로 정치적인 것이고 내용을 잘 만들어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내용만이 아니라 공약이 만들어지는 과정 또한 중요하다. 몇몇 임원이나 단체의 의견을 모아 놓는 것이 아니라 한의계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또 정확하게 수렴해야 한다. 대선 공약은 후보에 대한 요구 이전에 우리의 비전, 청사진이며 단결의 기치를 다시 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약을 당선자에게 관철시킬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설사 그렇지 못하더라도 내년 총선, 또 그 이후까지를 밀고 나갈 한의계의 발전 전략으로서 논의해야 한다. 협회는 대선 국면을 침체된 한의계에 활발한 논의를 불러일으키는 단결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주길 바란다.

공약 내용에 관한 토론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두 가지였다. ‘한의약 산업화’ 공약과 관련해서 ‘한의약의 발전=한의학의 발전=한의사의 처지 향상’이 아니라 오히려 한의약 산업화가 한의학의 왜곡, 한의사 처지의 몰락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또 법률을 정비하여 한의사의 진단기기 사용, 양방 검사 시행권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 요구도 매우 컸다. 언뜻 보면 상호 모순되는 듯한 요구에 같은 무게가 실리는 것, 이것이 현실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한의학의 산업화, 과학화라는 명제에 불안감과 불만이 높은 한편, 오히려 최근에는 한의사들이 의료일원화(물론 의사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지만)를 요구 혹은 용인하는 듯한 움직임마저 느껴진다. 이것은 결국 한의사의 정체성 인식, 한국 사회에서, 한국 의료제도 내에서 한의사의 위치와 역할 설정에 관한 논의를 통해서만 방향을 잡아갈 수 있는 문제이고, 한의학 교육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지난 10일 예방한의학회 학술대회에서는 “한의학 교육 현황과 개선방향”이 논의되었다. 이 모임이 교육과정안을 제시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면 한의학 미래포럼에서는 좀더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심층토론, 난상토론을 준비하고 있다(12월 4일 예정). 대선 공약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백년지대계인 한의학 교육문제에도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목소리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지만, 지금은 다시 한번 우리의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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