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近現代 韓醫學 人物史20] 宋秉泰(1884~?)
상태바
[近現代 韓醫學 人物史20] 宋秉泰(1884~?)
  • 승인 2007.11.02 14: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남일

김남일

webmaster@http://


晩學으로 가업계승한 韓醫師 겸 醫師

1968년 5월 24일자 『漢醫師協報』(現 ‘한의신문’의 前身) 제9호에는 “八五老醫의 名門尋訪記”라는 題下에 宋秉泰라는 인물을 조명하는 기사가 기록되어 있다. 신촌역전에 三世韓醫院이라는 한의원을 개설하고 3대째 한의사를 하고 있는 85세의 이 老醫는 본래 52세까지는 교편생활을 하였지만, 집안의 가업을 계승하기 위해 52세인 1935년 醫生試驗에 합격하여 韓醫의 길을 걷게 된 晩學徒였다. 水原胎生의 이 인물은 洋醫師免許試驗에도 합격하여 韓醫와 洋醫 양방면의 2중 면허를 모두 가지고 있는 당시 몇 안되는 손꼽히는 인물이었다. 그의 한의원의 명칭을 “三世”라고 한 것은 그의 집안이 대대로 한의학을 했던 집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한때 京畿道立醫學講習所의 副所長으로 있으면서 후배들을 6백여명 길러내면서 한의학교육계에서도 주목을 받았고, 해방 후 한의사시험 試官으로 있으면서 수많은 후배들을 배출시키기도 하였다. 그는 하루에 30여명의 환자를 보면서 한양방 두 방면의 의술을 구사하여 전주, 광주 심지어 제주도에서까지 환자가 몰려오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1945년 해방이 되면서 韓醫들은 일제시대까지 억눌려왔던 한의학의 부활과 발전을 위해서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하였다. 1945년 10월 경기도 醫生會 간부들이 서울에 있는 京畿道醫生會館에 모여서 한의학발전을 논의하면서 전국규모의 한의단체를 조직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같은 해 11월 3일에 朝鮮醫士會를 결성하고 회장에 朴鎬豊, 부회장에 金東薰을 선출하였다. 이들의 노력은 學會의 결성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1947년 5월에 朝鮮醫士會를 중심으로 53명의 인사가 모여 한의학의 체계화를 목적으로 東洋醫學會라는 학회를 만든 것이다. 東洋醫學會에서는 나중에 東洋醫學會學術院을 운영하여 한의학에 입문하려는 예비 한의사들에 대한 교육과 기존 한의사들에 대한 재교육을 시행하고자 하였다. 宋秉泰는 본 學術院에서 衛生學科를 담당하는 교수로 李炳天, 洪性初, 鄭源景과 함께 활동하였다.
한의사협회의 기관지 성격의 학술잡지인 『東洋醫藥』이 1955년에 창간호로 나오게 됨에 따라 본 잡지에서는 한의학과 관련된 시론과 학술적 논쟁, 지상강의 등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宋秉泰는 이 잡지에 寄生蟲學, 洋方衛生學 등 서양의학 관련 내용의 강의를 지속적으로 싣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 한의계에서 필요하다고 생각된 몇 가지 서양의학지식을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寄生蟲은 당시 한국인들 대부분이 퇴치해야 할 主疾病原 가운데 하나였기에 宋秉泰는 기생충관련 글들을 집필하기 시작하였다. 1955년 창간호에는 “韓國人과 寄生蟲에 對한 醫用昆蟲學”이라는 그의 글이 게재되어 있다. 이글에서 그는 당시 韓國人의 95%가 寄生蟲에 노출되어 있어 이에 대한 퇴치가 절실하다고 여기고 이에 대한 그의 학술적 견해를 강의의 형식으로 기술하고 있다. 寄生蟲學을 寄生原蟲學, 醫用昆蟲學, 寄生연蟲類 등으로 3大類別하여 설명하고자 한 시도가 그의 견해였다. 이 글에서는 사람에게 해가 되는 각종 기생충을 나열하여 설명을 하고 있는데, 빈대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해충의 습성과 활동, 발육, 질병과의 관계, 구제(驅除) 등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다. 이어서 세균을 옮기는 곤충으로서 파리, 모기, 이 등을 지목하고 그 퇴치방안을 내놓기도 하였다.

洋方衛生學이라는 제목의 시리즈 형식의 강의를 게재하면서 그의 衛生學에 대한 관심은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東洋醫藥』에 시리즈 형식으로 게재된 講義의 집필진은 傷寒篇에 朴鎬豊, 雜病篇에 金長憲, 診斷學에 朴鎬豊, 生理學에 朴性洙, 病理學에 韓世靖, 解剖學에 金思達, 衛生學에 韓世靖, 古代衛生學에 洪性初, 洋方衛生學에 宋秉泰, 藥物學에 申佶求, 劉時明, 金聖培, 鍼灸學에 李昌彬 등이었다. 이들은 당시 한의학계의 중심에서 학술을 이끌어가는 인물들로, 宋秉泰는 이들 속에 포함되어 洋方衛生學을 담당하였던 것이다.
그는 1955년무렵에 金永勳, 李起世, 朴鎬豊 등과 함께 서울시 한의사회의 顧問으로 추천되었고, 代議員으로 활동하면서 한의계의 원로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金南一
경희대 한의대醫史學敎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