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열 칼럼] 시스템 의학으로서의 한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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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열 칼럼] 시스템 의학으로서의 한의학
  • 승인 2007.10.05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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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한의학연구원에서 추진하는 한의학 과학화의 또 다른 방향은 현대 생물학과의 융합연구다. 생물학은 동서양 막론하고 관찰에서 시작되었다.
다만 동양 생물학이 음양오행론에 바탕하여 생명의 구성요소 사이의 관계성에 중심을 둔 반면, 서양 생물학은 18세기 이후 발달한 물리·화학의 영향을 받으며 미시적으로 파고들어 분자생물학을 탄생시키면서 많이 달라졌을 뿐이다.

그런데 미시적 분자생물학이 생산해낸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해석해내기 위해 생물정보학이라는 학문영역이 생겨났고, 최근에는 여기에 수학적 모델링과 시스템 공학까지 결합되어 시스템 생물학이 탄생한다.
즉 대단히 많은, 낱개로 쪼개어진 생물학적 정보들 사이의 관계성을 시스템적으로 파악해 보겠다는 것인데,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미국에선 System Medicine이란 용어도 이미 쓰여지고 있다고 한다. 즉 세부적 요소 분석에서 전체적 관계 파악으로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미세하게 쪼개어져 수집된 숲의 구성요소들을 모아서 다시 숲을 그려내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그런데 숲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 있다면 그 작업은 훨씬 쉬워질 것이다. 이 때 한의학은 전체 시스템의 관계성을 중심으로 발달해온 학문이므로 인체에 관해 ‘숲을 본 사람’에 해당한다. 그런 점에서 한의학은 이미 시스템의학이며 다만 그 관계성의 구체적 증거들을 갖추기 위해 시스템 생물학을 활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반면 시스템 생물학자에게 한의학은 캄캄한 밤길에서 가야할 큰 방향을 일러주는 향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중풍 분야에서 한의학과 유전단백체학의 결합, 사상체질의 유전체학적 규명 등이 이러한 연구사업의 예이다. 사상체질이 유전된다면 유전자의 구조와 그 발현, 그리고 여러 인체 정보들 사이의 관계성을 통해 증거가 확인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연구는 매우 어렵고 갈 길이 멀다. 현재의 시스템 생물학은 너무 미시적인 레벨에서의 관계성 파악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각종 세포 모델, 기관 모델들이 발달하고 in silico 실험이 제약사에서 크게 채택이 되면서 점점 거시적 관계 파악에도 접근해갈 것으로 기대된다.
그럼 한의학과 시스템생물학의 결합이 과연 어떤 효과를 현실세계에 낸다는 것인가?

지금 세계 의약계는 인간유전체 프로젝트 이후 맞춤약물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즉 같은 질병이라도 체질에 따라 잘 듣는 약이 따로 있으니 이러한 체질적 차이를 초래하는 유전자를 미리 알아서 질병치료를 효과적으로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과정이 매우 어려워서 아직까지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투입 자원에 비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 맞춤약물시대에 이르기까지는 앞으로 2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사상의학은 이미 체질에 따라 다른 약을 쓰고 있는 집단맞춤의학이다. 예를 들어 같은 천식 환자라도 소음인은 폐에 온기가 부족한 때문이니 따뜻한 천식약을 쓰고, 소양인은 폐에 열기가 과다한 것이 원인이니 서늘한 천식약을 쓰며, 태음인은 폐 기능 자체가 약해서 천식이 오므로 폐 기능을 보강하는 천식약을 쓴다.

이러한 차이에 대한 분자생물학적 근거를 확보한다면 우리는 경쟁국보다 빨리 맞춤의학에 도달할 것이다.
이러한 집단체질 맞춤의학의 효과는 한약 뿐 아니라 양약에까지 그 효과가 파급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희망으로 지금도 한의사, 의사, 생물학자, 공학자, 수학자까지 연구원에 모여 함께 토론하고 연구해 나가고 있으니 한번 기대해 볼만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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