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주 칼럼] 한약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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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주 칼럼] 한약의 운명
  • 승인 2007.09.07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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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의 위기에 대한 우려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안전성’ 문제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는 ‘한약의 위기’가 그 핵심이라고 생각된다. 약재의 재배(수입), 가공, 유통 전 과정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제도적 관리, 협회의 노력이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약재가 있어도 일선 한의사가 그것을 선별해서 애용하지 않는다면 그런 노력들의 성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한약과 관련된 간손상에 관한 논문을 많이 발표했던 의사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여러 가지 항의성(?) 질문과 대답이 오고가는 가운데, “한의사 처방 약보다 민간에서 임의로 사용하는 단방약이 더 문제다.
한국 한약재가 중국이나 일본 것보다 월등히 우수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것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싶다. 그런데 요즘 한의사들, 특히 젊은 한의사들은 한약을 너무 모른다.”는 말을 하셨다. 직접 채집한 약초 표본, 진료실 벽을 차지하고 있는 약초 사진들은 그 말이 빈 말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명의로 존경받는 분이 있다. 몇 가지 중요 약재들은 자연산을 고집하시고, 직거래로 계약 재배를 하기 위해 현장 방문도 자주 하셨다. 약재가 새로 들어오면 달여서 맛을 보는 일도 거르지 않으시고, 후학들에게는 늘 약재와 친해질 것을 당부하신다.
그렇게 비싼 약재만 사용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누가 물으면 “좋은 약재를 사용해야 치료효과가 좋고, 약재비가 전체 비용의 30~40% 이상을 차지하니 굳이 비용처리할 항목을 찾으려 애쓰지 않으면서 세금도 덜 내게 되니 일석이조 아니냐” 고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탕약 위주의 한약은 조만간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전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부가 추진하는 한방 과학화에는 한약재의 성분 분석, 유효성분 추출로 천연물 신약을 개발하는 사업이 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한약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의 제형 개발도 중요하다. 그러나 단미제 보다는 잘 구성, 가미된 복합 처방이 효과가 좋고, 환·산·고제 보다는 탕제가 안전성, 빠른 약효에서 우수한 것은 분명하다.

항산화제로 각광받고 있는 비타민 A, E를 영양제로 섭취할 때 오히려 사망률이 높아졌다는 최근 연구(JAMA 2007년 297권 8호)는 서양의학계에도 충격을 주고 있다. 아무리 좋은 영양소라 해도 원재료를 통째로 음식물로 섭취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성분만을 추출 또는 합성해서 복용하면 유익하지 않고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이기 때문이다.

이미 약국에서는 드링크제 형태 외에 한의원과 똑같은 파우치제, 과립제가 다양한 형태로 대량 제조 판매되고 있다. 저렴한 기성복이 많아진다고 해서 디자이너의 명품 옷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간편한 즉석 요리 제품이 소문난 맛집에서 방금 요리된 음식을 대신할 수도 없다.
한의사 처방의 탕약을 차별화시키는 것, 즉 좋은 약재를 사용하고, 신선해서 氣味가 살아 있으며, 환자의 증상변화에 따라 가감이 이루어져 맞춤옷처럼 환자에게 꼭 맞는 한약으로 차별화하는 것이 한약의 위기를 타개하고 한의사도 살 수 있는 길이 아닐까?

틈나는 대로 약초 공부 산행에도 쫓아다니고, 거래하는 한약 제약회사의 현장도 찾아가 보려면 좀더 바빠져야겠다. “약은 잘 모르겠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면서 익숙한 몇 개 처방만을 관성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려면 본초·방제 공부도 손에서 놓을 수 없다. 작게는 한의원의 경영, 크게는 한약의 운명이 달린 일이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하는 日新 又日新의 삶 자체를 한의사의 운명이며, 행복한 한의사의 삶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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