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近現代 韓醫學 人物史18] 田光玉(1871~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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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現代 韓醫學 人物史18] 田光玉(1871~1942)
  • 승인 2007.08.31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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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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諸醫書에 博通한 한의학 교육자

우연히 1955년에 東洋醫藥社가 발행한 『東洋醫藥』 제1권 제1호를 뒤적이다가 한의사 朴東浩의 “鳳岡 田光玉先生을 追慕함”이란 글을 접하고 매우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일제시대 전시대를 통해 한의학 교육과 학술단체의 결성을 위해 몸바쳐 노력한 위대한 한의학자인 田光玉 선생을 뒤늦게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벌써 近現代 韓醫學 人物史가 18회까지 되도록 이런 훌륭한 분의 업적을 조명하지 않고 방치한 채로 흘러온 점에 필자는 적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필자가 田光玉 선생의 생애에 대한 내용을 찾으면서 느낀 점은 그가 자신의 名利를 위한 행위를 거의하지 않았기에 그의 행적을 찾아내기가 어려웠다는 점이다. 그는 매우 실력있는 한의사로서 한의학 교육과 학술단체의 결성을 위해 자신을 감추고 보이지 않게 노력하였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田光玉의 행적을 기록한 1955년 한의사 朴東浩가 쓴 “鳳岡 田光玉先生을 追慕함”이란 글은 田光玉의 생애와 사상을 이해하는데 매우 소중한 자료이다.
한의사 朴東浩는 함경북도에서 주최한 醫學講習會의 講師로 초빙된 田光玉 선생의 강의에 감복받아 3년동안 그의 가르침을 받아 醫生試驗에 합격한 일제시대 한의사이다. 그의 이 글이 아니었다면 田光玉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깊은 내용들은 역사속에 파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朴東浩에 따르면 田光玉은 天性이 溫厚하며 체격이 장대하여 겉모습에 위엄이 있었다. 四書三經을 숙독한 후에 모든 醫書를 精硏하여 諸書에 博通하였고, 종교·철학·시대·과학 등 모든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아침마다 일어나서는 十二段錦導引法을 運行하여 하루를 시작하였고, 불교에도 조예가 깊어 고완경, 화엄경 등을 암송하고 있었다고 한다.

학술적으로 田光玉은 張景岳의 학설을 가장 으뜸으로 꼽았다.
그의 저술은 『通俗醫學要義』와 『古今良方集』의 두 종류가 있다. 『通俗醫學要義』는 『黃帝內經』, 『景岳全書』, 『石室秘錄』, 『東醫寶鑑』 등에 古今의 經驗方들을 집대성한 綜合醫論으로서 함경북도에 순회강연을 갔을 때, 이 강의에 감복한 日本人 관리의 노력으로 講義錄을 보완하여 인쇄하여 醫生들에게 나누어준 것이라고 한다.

『古今良方集』은 田光玉이 평생동안 경험한 경험을 써놓은 것으로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재 원고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1955년에 발행된 『東洋醫藥』 제1권 제2호에 나오는 朴東浩의 “鳳岡田光玉先生의 遺傳、經驗方抄集”이라는 글 속에 나오는 處方들로 그 면모만을 느낄 뿐이다.

그는 황해도 태생으로 京城에서 醫生으로 활동하면서 한의학을 살리기 위한 활동을 전개한 인물이었다.
이종형의 연구에 의하면 田光玉은 1904년 洪哲普의 노력과 고종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한의과대학 同濟醫學校의 敎授로 金永勳과 함께 선발되어 한의학교육자로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학교는 헤이그밀사사건을 트집잡아 日帝에 의해 고종이 퇴위되게 됨에 따라 개교 후 3년 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 모처럼의 한의학교육의 기회가 상실되게 된 셈이었다.

이에 田光玉은 1905년부터 결성되어 한의학의 부흥에 노력한 八家一志會회원인 趙炳瑾, 金永勳(서울), 朴爀東(江原), 張起學(平安), 李喜豊(忠淸), 徐丙琳(大邱), 李炳厚(東萊) 등과 힘을 모아 사설강습소를 만들어 한의학교육의 명맥을 이어가고자 하였다.
이들은 1909년에 전국의 한의사를 단결시킬 한의사단체를 결성할 것을 다짐하여 大韓醫士總合所(大韓醫士會)를 만드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1915년 전국적인 학술단체인 全鮮醫會가 만들어진 이후 東西醫學硏究會 등 단체에서도 講師로 활동하면서 한의학교육에 힘썼다.

1915년에 간행된 『東醫報鑑』이라는 학술잡지에는 田光玉의 “萬事有時”라는 글이 실려 있다. 이 글에서 그는 지금이 바로 열심히 정진해서 한의학을 부흥시킬 때라고 역설하고 있다.
특히, 이 잡지에는 “東醫學講述”이라는 강의를 싣고 있는데, 이것은 醫生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시험대비용 강의였다.
이 잡지에 田光玉은 池錫永, 趙炳瑾, 崔東섭, 洪鍾哲, 徐丙孝, 閔儀鎬, 李完珪, 金永勳, 張起學, 李喜豊, 朴麟緖, 林昌洙, 李峻奎, 徐丙琳, 高濟柏, 李祥源, 李承九, 張斗熙, 朴海鎭 등과 함께 講述師로 기록되어 있다.

1936년에 간행된 『忠南醫藥』 제5호에는 田光玉의 “治病要領論”이라는 글이 나오는데, 이 글은 그의 학술사상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값진 자료이다.
이 글에서 그는 병을 치료하는 것의 관건을 “治病必求其本”이라고 정의하고는 標本의 분별을 강조하고 있다. 의사의 본분으로서 “醫者必通三世之書”라는 말을 인용하여 醫書講讀의 필요성도 아울러 주장하고 있다.
田光玉의 학의학에 대한 탐구심과 교육에 대한 열망은 문화의 시대 21세기 한의학을 연구하는 모든 한의사들의 귀감이 될 것이다.

金南一(경희대 한의대 醫史學敎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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