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열 칼럼] 한의학의 세계화, 어디서부터 매듭을 풀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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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열 칼럼] 한의학의 세계화, 어디서부터 매듭을 풀어야 할까
  • 승인 2007.08.17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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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정부 시절 세계화가 중요한 이슈로 등장했다. 당시 이런 정치적 흐름과 대학교육협의회의 한의대 평가가 맞물려 각 한의과 대학들이 앞 다투어 교육목표에 한의학의 세계화 내지 국제화라는 문구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어학 교육 강화, 외국 대학과의-주로 중국이었지만- 교수·학생 교류 같은 여러 가지 대책들을 내 놓았다. 당시 협회에서도 한의학의 세계화는 중요한 구호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 때에 비해 한의학의 세계화가 얼마나 진전되었을까? 한의대 교수가 세계 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리고, 외국으로 연수를 나가고, 또 국제학회에 참석해서 논문도 발표하고 하는 것을 보면 한의학의 세계화 지수가 상당히 높아진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의 한의학은 외국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고, 세계 보완대체의학 시장에서의 영향력도 미미해서 중국 중의학의 아류 정도로 취급되고 있다.

‘한의학의 세계화’라는 구호만큼 다양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이 또 있을까. 작게는 한의학의 영문 이름을 잘 정하고, 한의학과 관련된 영문 컨텐츠를 확대해 나가는 것부터 한국 한의학의 임상이나 관련 산업이 해외에 진출하고 또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는 것까지 모두 세계화라는 구호 속에 포괄될 수 있다.

하지만 세계에 한의학을 각인시키는 가장 중요한 방편은 여전히 학술이다. 한의학의 세계화는 한국의 한의학을 외국학자들에게 가능한 한 많이 노출시키는 데서 시작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의 학자들이 영어 논문을 많이 쓰고 외국에도 많이 나가야 하며, 한국에도 외국 학자들이 많이 와야 한다. 그러나 정작 이 부분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에 있으면 국제 학술회의라는 것이 얼마나 일상적일 수 있는지 알게 된다. 외국 학자들의 단기 방문은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일이고, visiting scholar로, 또 대학이나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케임브리지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학자들도 많다. 그래서 각 학과나 연구소가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초청 강연회나 세미나, 또 교수가 주도하는 연구 모임들이 많고, 심지어 대학원 학생들까지도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의 연구모임을 조직해서 세미나를 연다.

학기 중에는 한 주에도 여러 세미나 모임이 인터넷에 공고된다. 한국 대학들은 대체로 3개국 이상의 학자들이 참여하면 국제 학술 모임으로 인정하는데 그 기준으로 보면 케임브리지에서 열리는 소그룹 연구 모임들이 대부분 국제 학술 모임이다. 이처럼 케임브리지에서 국제 학술 연구 모임은 이미 사람들의 몸에 밴 생활의 일부분처럼 되어 있다.

우리는 한의학의 세계화를 너무 형식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학술과 관련해서 한의학의 세계화라고 하면 호텔 컨벤션 홀에서 대규모의 국제학술대회를 열어 한국 한의학의 위상을 과시하는 것을 먼저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일회성의 요란한 잔치가 세계화의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듣고 보고 배울 것을 지속적으로 공급하지 않으면 외국학자들은 자신의 돈을 들여 한국에 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의학의 세계화도 결국은 한의학계 안에서 논문 발표와 학술적인 토론이 활성화되고 일상화되는 것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각 학회나 대학에 어떤 주제를 놓고 깊이 연구하고 토론하는 전문성을 갖춘 작은 연구 모임들을 많이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임들을 통해 한국 한의학만의 고유한 특성들을 찾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작지만 수준 높고 한국 한의학만의 특색을 가진 연구모임들이 많아질 때 외국학자들은 한국 한의학에 대해 관심을 보일 것이다. 지금처럼 중의학이나 일본 한방의학과 아무 차별성을 갖지 못하는 한의학에 외국학자들이 관심을 가질리 만무하다.
작은 시냇물이 모여 큰 강을 이루듯 경쟁력을 갖춘 소그룹 연구모임들의 활성화, 이것이 세계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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