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년퇴임 앞둔 원광대 신민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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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년퇴임 앞둔 원광대 신민교 교수
  • 승인 2007.08.17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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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연구실 삼아 본초연구 30년

꼬박 29년을 대학에서 봉직해온 신민교 교수(65·원광대한의대 본초학)에게 이달 말로 다가온 정년퇴직은 믿어지지 않는 느낌이다.
본초를 채집하느라 산을 연구실 삼아 살아오는 동안 스스로 나이 듦을 잊고 살다 두 달 전 대학본부로부터 쓰고 있는 집기를 반환하라는 공문을 받고서야 비로소 “아, 내가 벌써 늙어 정년 퇴직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신민교 교수는 전임교수로서 활동은 끝났지만 명예교수로서 학생과 만남을 5년 더 이어갈 수 있어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는다.
경기 여주 출생인 신 교수가 본초학을 전공하게 된 것은 그가 다니던 대신농고 임세흥 교장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잘사는 농촌을 만들겠다는 사명감으로 해마다 봄·가을이면 3박4일간 약초채집활동을 벌인 교장선생님의 덕분에 신 교수는 본초학에 눈뜰 수 있었다.

실제로 그의 경험은 한의대 교수가 돼서 유용하게 활용됐다. 우리나라에는 없다는 적작약을 경기도 양평 칠읍산 능선에서 채취한 것이다. 그때의 희열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남들이 없다고 하는 것을 반드시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는 이미 50년대에 적작약을 캔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는 본초학 교육에서 관찰력을 매우 중시한다. 관찰의 중요성은 “책으로만 하는 본초학은 죽은 본초학”이라는 그의 말 속에서도 확인된다.

‘모든 것은 약이 될 수 있으므로 삶의 주변에서 관찰하고 의심하고 확인하면 본초학은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게 그의 확고한 신념이다.
신 교수는 본초학을 하는 고충도 털어놓는다. 깊이 들어갈수록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게 본초라고 회고한다. 해석이 안 되는 식물이 나올 때는 갈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애써 발견한 식물을 촬영했으나 잘 안 찍히거나 촬영한 사진의 보존상태가 안 좋았을 때는 아쉬움도 느꼈다.

그가 산야를 누벼 채집하고 정리한 기록들은 여러 저서에 고스란히 담겼다. ‘임상본초학’, ‘도해 향약(생약)대사전’, ‘최신전통약물외치임상’은 그의 대표적인 저서다. 이중 은사의 동생(임기흥)의 제자인 정보섭 교수와의 공저인 도해향약대사전은 보완 발행할 계획이다. 이달 말경에는 정년기념 헌정책자인 ‘원색외치임상본초’가 발간될 예정이다.

원광대 한의대 학장을 역임한 그는 재임 중 뛰어난 문서기안 기술을 바탕으로 학교측을 설득해 한의대 교수 증원, 기초학교실 정비, 한의대건물 증축, 전주한방병원 건립 등에 일조하기도 했다.
그간 개인생활이 없었다는 그는 어학공부 등 못다 한 공부를 하는 한편 더 많은 약용식물을 찾아 다시 산천을 누빌 것이라고 밝히고, 후학들에게는 신념과 의지, 사명감을 갖고 살아가면 성취가 빠를 것이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신 교수는 본초학분야에서 이룩한 학문적 업적을 인정받아 제2회 류의태·허준상(2005년)을 수상했다.
가족으로는 부인 한상인(65) 씨와의 슬하에 2남 1녀가 있으며, 제자인 노영득(경기 구리 서울한의원) 씨를 양자로 삼고 있다.

구리 = 민족의학신문 김승진 기자 sjkim@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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