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은 나의 삶59話·下] 신준식 자생한방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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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은 나의 삶59話·下] 신준식 자생한방병원장
  • 승인 2007.06.08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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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사고로 한의학의 국제화·세계화에 눈떠야”

■ 한의학의 세계화 몸소 실천

최근 신준식 원장이 복지부관계자 및 28개 병원 관계자들과 함께 해외환자유치사업단 설명회차 미국에 갔을 때의 일이다.
성빈센트병원에서 신 원장 일행을 맞은 침구과 의사는 퇴행성 무릎관절염으로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했다.

함께 병원을 방문한 일행들은 신 원장에게 한번 치료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 침을 놓고 치료하자 침구과 의사는 이내 편안하게 걸어다녔다.
또 미국 도심 메디컬빌딩에 있는 한의원에 방문했을 때는 180cm의 키에 몸무게 90kg 되는 거구의 원장 아들이 허리를 다쳐 옴짝달싹 못한다고 해 치료했더니 잠시 후 잘 걸어다니더라고 했다.

미국방문에 동행한 복지부 관계자는 일련의 치료과정들을 보고 한국침술의 우수성에 연신 감탄했다는 후문이다.
신 원장은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세계로 나가 외국인들을 치료하고 임상 내용을 축적해 논문을 쓰고, 그것이 SCI급 저널에 실리면 주류의학에서도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자생은 병원 내에 국제진료소가 설치돼 있기도 하지만 최근 2~3년 사이 외국인 환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 국내에서는 주한대사들 및 그 가족들이 서로 입소문을 통해 병원을 방문하고 있고, 독일 마인츠 요하네스버그 쿠텐베르그 의대학장과 베트남 보건복지부 장관 등 외국 의료인 및 보건관계자들의 방문도 끊이질 않고 있다.
그는 여러나라로부터 현지에 한방병원을 설립하자는 제의도 여러차례 받았다고 했다.

■ 한의학의 미래는 밝다

그는 한의사들이 시야만 넓히면 한의학의 미래는 밝다고 확신했다. 더불어 한의사의 권익도 더욱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단 한의사 개개인이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고 마음자세부터 바꿨을 때라고 단서를 뒀다.
배우고 웅비하려는 열정 없이 남의 발목잡고 시기하는 사고로는 한의사 개인은 물론, 나아가 한의학 전체가 발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 원장은 열린 마음으로 실력있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그들에게서 배우고 왜 잘하는가를 묻고, 나름대로 응용해서 발전시키려는 열정을 가지면 한의원에 환자가 많이 몰려들 것이라고 했다.
환자 중에 외국인이 있으면 해외에 소문이 나서 외국에서도 그 한의사에게 치료받기 위해 찾아오게 될 것이고 그 한의사가 나아가 외국으로 진출할 수도 있다면서 이러한 것이 한의학의 세계화가 아니겠냐고 했다. 이제는 한의학의 국제화, 세계화에 눈을 떠야 한다는 것이다.

■ 자생의 노하우 전파하고파

그는 마음이 열리면 아무리 새내기 한의사라 하더라도 빠르면 5년, 늦어도 10년 안에는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마음의 문을 닫으면 20년이 지나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즉 열린마음과 긍정적인 생각, 열정 그 자체가 좋은 스승이라고 조언했다.
신 원장의 꿈은 앞으로 자생의 노하우를 전수해 줄 수 있는 교육사업에 힘을 쏟는 것이다.
그것이 국내가 됐든 국외가 됐든, 돈벌이가 목적이 아니라 오로지 교육을 위해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그동안 한의사로서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온 그는 이제는 한 인간으로서 주변도 돌아보며 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요즘은 사회각계 인사들로 구성된 추임새운동본부(서로 치켜세우고 배려하고 도우며 사는 운동), 선플달기운동(악플 때문에 고생하는 이들을 위한 격려댓글 달기 운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 고인 물은 썩는다

그는 “선채로 멈추면 돌이나 한줌의 흙과 다를 것이 없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지만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지금 한의학 실정을 들여다봐서 무엇이 고여 있고, 무엇이 흐르고 있는가를 점검해 봐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늘 국내외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는 있지만 그래도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또 아버지로서 늘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평소 건강을 위해서는 단순·명쾌하고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고, 난상토론으로 스트레스를 푼다. 남달리 문화예술에도 조예가 깊은 그는 음악을 즐기며 틈틈이 시도 즐겨 쓴다.

신 원장은 “아마 한의사가 되지 않았더라면 소설가나 영화감독이 됐을 지도 모른다”며 웃었다.
가족으로는 부인 전일색(53) 씨와의 사이에 1남 2녀를 뒀다.
대표저서로는 ‘허리병 때문에 아직도 고생하십니까?’(1996년 둥지 刊), ‘삶의 반환점에서’(1999년 중명출판사 刊), ‘허리가 생명이다’(2000년 가교 출판사 刊) 외 다수가 있다.

민족의학신문 강은희 기자 leona01@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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