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열 칼럼] 한의학은 학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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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열 칼럼] 한의학은 학문인가?
  • 승인 2007.06.0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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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한약분쟁 초기 아이를 둘이나 둔 가장이자 본과 2학년이었던 필자는 약사회의 다음 한마디에 분발하여 싸움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한의학은 학문이 아니다. 다만 한약이 좋을 뿐이니 그것만 가져다가 과학화하면 그 뿐이다.”
그렇다면 학문도 아닌 것을 6년씩이나 공부하는 우리는 대체 어떤 바보들인가?

천인상응론, 음양오행론과 같이 훌륭한 이론으로 체계화된 동양의 자연과학과 그 가장 실용적 형태인 한의학, 이것들이 통째로 무시되고 있는 이 상황! 필자는 대학을 두 번째 다니고 있는 분들과 뜻을 모아 세칭 ‘나사’를 조직하여 여론지도층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 때 만든 문건의 제목이 ‘한의학 존립의 위기’이다.
한의학은 훌륭한 하나의 의학이다. 그저 민간요법이 아닌 하나의 의학이 되려면 생리, 병리, 진단, 치료, 예방 각 분야에 걸쳐 일관된 체계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볼 때 한의학은 이 모두를 매우 훌륭하게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19세기말에 창안되어 현대화된 한의학 체계인 사상체질의학의 예를 들어보자. 체질의학은 사상의학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 갈레누스의 4체액론, 근대의학의 체형론, 현대심리학의 심리유형론, 인도아유르베다의 체질약물론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의 의학에 체질을 논하지 않은 경우가 오히려 드물다. 하지만 이들 체질의학 중에 체질이 그렇게 형성되는 생리적 근거부터 시작해서 체질 병리, 체질 진단, 체질 치료법에 이르기까지 그 전체가 하나의 체계를 갖춘 경우는 일찍이 없었다.

그러나 사상의학의 경우, 폐비간신 4장 중 하나가 선천적으로 약한 상태로 태어난다는 체질 생리론, 약한 장부 기능 때문에 어떻게 질병 양상이 달라지는지에 대한 체질 병리론, 외형-심리-증상 등 심신간의 전영역에 걸쳐 개념화된 체질 진단론, 약물 뿐 아니라 음식물과 용심법(用心法)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확립된 체질 치료법과 예방법에 이르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선진화된 체질의학의 체계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사상의학이 그것으로 충분한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찾아간 한의원마다 체질을 다르게 보는 체질 진단법의 문제, 질병 치료 정확도 향상의 문제, 치료 평가 도구의 개발 등 현대적 학문으로 발전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으며 이런 문제 때문에 아직 주류 의학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 사상의학 뿐이랴! 실은 한의학 전체가 이와 같은 상태라 할 것이다.

필자는 공학을 하고 연구원에 근무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사상의학을 알게 된 후 한의학의 과학화에 뜻을 두고 한의대에 입학했다. 한의학이 이미 훌륭한 학문이거늘 여기에 다시 ‘과학화를 한다’함은 또 무슨 의미인가? 앞으로 이 칼럼을 통해 강호의 독자들과 이 문제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약력 : ▲서울대 공대 건축학과, 한국과학기술원(석사)졸 ▲경희대 한의대, 원광대 대학원(한의학박사) 졸 ▲전북 익산 원광한의원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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