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은 나의 삶58話] 박영배 경희대 한의대 교수
상태바
[한의학은 나의 삶58話] 박영배 경희대 한의대 교수
  • 승인 2007.05.18 13: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bmaster@http://


한의학 정체성 반영한 진단기 개발을 화두삼아

의료기기를 비롯해 다양한 의학기술이 빠르게 발전, 업데이트되고 있는 반면 의학기술발전의 성과를 공유하는 데 한계가 있는 한의계로서는 상대적인 박탈감만을 키워갈 뿐이다.
때문에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제한하는 제도적 상황은 갑갑증을 더한다. 비행기로 지구촌을 왕래하는 것은 이미 과거의 얘기이고, 이제 우주여행 시대가 도래한 마당에 여전히 발로 걷는 것만이 허용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한의계가 요구하는 대표적인 사안 중 하나가 의료기사 지휘권이고, 특히 임상에서 진단기기 활용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한의사가 쓸 수 있는 진단기 개발에 대한 요구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 문제 해결을 누가 해야 하는 것인가 할 때, 주목되는 주체 중 하나로 98년 설립된 경희대 한의대 진단·생기능의학과교실을 든다. 주임교수인 박영배(54) 교수는 한방 진단기 개발을 비롯한 한의학 연구에 대해 ‘발아기’라고 표현했다. 덧붙여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완벽할 수 없지만, 이것을 바탕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한의학 개념의 정량화가 핵심

박 교수는 진단기 개발에 있어 무엇보다 ‘정량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그동안 연구생활을 하면서, 연구방법론으로 통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내린 결론과 일맥상통하다. 통계치를 가지기 위한 전제로 ‘정량화’라는 작업이 필요하고, 이는 현대화·정보화를 위한 공통분모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음·양, 기 등의 개념이 현대 과학의 개념과 매치되기 위해서는 서로 전환될 수 있는 공통언어가 필요하다. 공통언어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것이 숫자, 바로 정량화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개념의 정량화를 하기 이전에, 개념 자체의 정의에 대해 박 교수는 “한의학의 배경이 되는 동양문화권에서 같은 글자를 사용하더라도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내경에 들어 있는 神의 의미만 해도 7~8가지의 의미로 사용됐다”면서 “개념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존의 한의학에서 사용하는 개념들을 정리해 내고, 거기서 물리적인 개념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의학의 정체성이 확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양한 측면으로 접근해서 문제를 해결하기에 그동안 한의계의 연구 인프라는 충분하지 못했다. 그는 “현재 11개 대학 중 진단생기능의학교실이 임상에 속해 있는 곳은 경희대 한 곳이고, 몇 곳의 대학에서는 본과2학년에 교육되는 기초분야에 있을 뿐이어서 학문의 자리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하면서 “인력 양성을 위해 대학별로 진단생기능의학과학 교실을 구축하고, 국시와 전문의 제도에도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기 평택이 고향인 박 교수는 약대를 합격해 놓고, 경희대 한의대로 진로를 바꿨다.
“당시 친분이 있었던 한의원장이 계셨는데, 수납장에 현금이 가득하더군요. 될 분야이구나 싶어서 결정했죠”라며 웃는다. 그러나 한의대 재학 중 이봉교 교수가 세계 최초로 맥진기를 개발, 임상에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는 진단학에 뜻을 두게 됐다.
경희대 석·박사를 마치고 모교에 남아 연구, 교직생활을 하면서 가장 큰 희열을 느끼게 한 것은 바로 진단·생기능의학과학 교실을 개설한 일이었다.
“처음 무엇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주변을 설득하고 개척해야 합니다. 그래서 싸움꾼이라는 소리도 듣게 되더군요”라고 회고했다.

■ 진단·생기능의학교실 개설에 자부심

그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진단학의 기둥을 세우고, 문패를 달고, 비 막을 정도로만 지붕을 얹은 것”이라며 “후배들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자신이 진단학을 하겠노라고 마음먹을 당시 해보고자 했던, 맥·뇌파 등의 기기를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연구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만족감을 느낀다고.
그동안 그는 국내특허 4건, 유럽특허 2건, 미국특허 1건, 중극특허 2건 등 총 9건의 특허를 냈고, 지난 4월까지 321편의 논문을 냈다.

연구생활 중 가장 의미있는 내용으로 ‘맥률’을 꼽았다. 지맥·삭맥이 한·열을 진단하는 주요 지표인데, 과연 느리고 빠르다는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그는 폐가 심장을 움직인다는 한의학적 원리를 반영, 호흡/맥박수 라는 맥률의 정의를 부여하고, 진단기를 개발했다. 완벽한 기기개발을 위해서는 아직 연구가 더욱 필요하다고 한다.

박 교수는 “제가 진단기를 개발한다고 해서 한의학의 정체성을 놓지는 않는다. 연구방법론은 나와, 또 대학, 한의계가 풀어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아울러 “지금 한의계는 집을 짓기 위해서 나무를 심고, 톱을 만들고, 설계도도 스스로 그려야 한다. 양방처럼 도구며 재료들이 다 준비돼 있는 상황과 전혀 다른 것이 현실”이라면서 “부딪히며 극복해야 할 과정”이라고 말했다.

■ “나무 심는 마음으로 만들어가야”

현재 그는 04년부터 산자부가 지원하는 ‘심자도·뇌자도 신호의 한의학적 활용을 위한 임상기술 개발’연구의 일부를 위탁받아 양방병원과 함께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의료기 개발단계에서부터 함께 연구할 때 사용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는 진단기에 대해 “변증은 다양한 물리적인 지표들의 총합입니다. 진단기는 일부의 참조할 수 있는 지표이지, 하나의 진단기로 변증을 완벽하게 가려낼 수는 없죠”라면서 “저도 임상에서 진단기를 활용할 때 마지막으로 손수 진맥을 합니다. 신체가 할 수 있는 영역과 기계가 할 수 있는 영역은 다릅니다. 의료기기는 인체가 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 확인을 하게 해주는 도구이죠”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한의계에서 ‘현대 의료기기’라는 표현은 지양해야 합니다. 이 표현대로라면, 마치 원래 한의학과 현대의료기기는 상관없는 관계인 것처럼 보여지는데, 사실이 아니죠”라고 지적했다.

한의학은 흐르는 물과 같아 유연한 사고를 요구한다는 그는 한의학 연구방법론을 화두로 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
대한한의진단학회 회장·대한침구학회 감사·대한한의학회 이사를 역임한 그는 아내와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저서로 변증진단학(공저·성보사 刊)·한방진단학(〃) 등이 있으며, 맥진기·뇌의 전자기적 신호와 관련된 경락 등을 주제로 복지부와 산자부의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민족의학신문 오진아 기자 ojina@mjmedi.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