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近現代 韓醫學 人物史15] 崔奎憲(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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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現代 韓醫學 人物史15] 崔奎憲(1846~?)
  • 승인 2007.05.04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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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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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 小兒科의 正統을 이은 御醫出身 名醫

조선시대에 연구된 전문분과 가운데 小兒科는 비교적 체계화된 영역에 속한다.
조선초기 『鄕藥集成方』, 『醫方類聚』 등에서 정리된 조선의 소아과는 『東醫寶鑑』에 의해 독립된 분야로서 자리를 확고하게 되었고, 이것은 趙廷俊의 『及幼方』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궁중에서 이러한 내부적 전통을 이으면서 소아과전문의로 활동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崔奎憲이다. 崔奎憲은 자가 胤章, 호는 夢庵이다. 그는 고종 원년인 1864년에 甲子式年 醫科에 급제하여 太醫院典醫, 三登郡守를 역임하였는데, 특히 小兒科로 유명하였다. 醫科에 급제한 때의 나이가 10대 후반이었음을 감안한다면 그는 어린 시절부터 醫學을 業으로 하였던 집안에서 체계적으로 修學하여 왔음을 알 수 있다.

崔奎憲의 저술 『小兒醫方』의 서문인 “小兒醫方原因”에는 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崔奎憲은 고종시대에 유명한 名醫였다. 그 당시 황실의 御醫로 三登郡守를 역임하였으며 성인의 醫方으로도 유명하였지만 小兒의 醫方에 더욱 練鍛과 經驗이 많으시던 까닭에 세상 사람들이 小兒名醫 崔三登이라고 불렀다.” 이를 보면 그는 궁중에서 御醫를 하면서 소아과 의사로 이름을 드날렸던 것을 알 수 있다.

이가은의 연구(「小兒醫方의 판본비교 및 편제고찰」)에 따르면 『小兒醫方』은 1912년 廣學書鋪에서 처음 출판된 이후로 1936년에 『夢菴遺稿 小兒醫方』이라는 이름으로 活文社에서 간행되었고, 1943년에는 『新譯註解 小兒醫方』이라는 이름으로 杏林書院에서 출간되었다.
나중에 나온 『簡明註解 丁茶山先生 小兒科秘方』이라는 책은 1943년에 나온 『新譯註解 小兒醫方』과 같은 내용의 책이다.

『小兒醫方』은 그가 사용한 처방 가운데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 처방들을 중심으로 소아의 생리와 호리법 등을 기록한 것이다. 특히 한문에 토를 붙이는 형식을 띠고 있어 의원들로 하여금 소아에 대한 지식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게 배려하고 있다.
내용에 있어서도 小兒調護法, 察色法, 脈法, 初生諸證, 變蒸 등 소아의 생리와 진단에 대한 내용을 앞에 놓고, 客오中惡, 天弔, 夜啼, 諸吐, 諸瀉, 일膈, 諸痢, 脫肛, 疝, 淋 小兒傷寒 등 소아들의 호발증상들을 써놓았다.

뒷부분에는 氣, 神, 血, 夢, 聲音, 言語, 津液, 痰, 頭, 面, 眼, 耳, 鼻, 口, 舌, 脣, 牙齒, 咽喉, 頸項, 背, 胸, 乳, 腹, 腰, 脇, 皮, 手, 足 등 『동의보감』의 내경편과 외형편의 순서에 따라 병증과 처방을 기록하고 있고, 그 뒤에 잡병편 가운데 浮腫, 脹滿, 消渴, 黃疸, 학, 癰疽, 諸瘡, 諸傷, 解百藥百物毒(『동의보감』의 解毒에 해당) 등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모든 증상과 처방은 소아질환에 맞추어 진단법과 용량을 맞추어 놓고 있어 임상을 통해 얻은 경험을 반영시킨 흔적을 보여준다.

이 책의 특징에 대해서 이가은은 「小兒醫方의 판본비교 및 편제고찰」에서 몇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 전반부 60항목은 기존의 小兒科 영역이었던 小兒調護法, 初生病, 驚風 등을 다루고 있지만 후반부 38항목은 기존의 小兒科영역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성인에게서도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질병을 소아에 맞게 『東醫寶鑑』 순서를 빌어 수록하였다.

둘째, 精神 자극으로 오는 질병을 배제하고 처방의 약재용량을 소아에 맞게 조정한 것 등 소아과 전문서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셋째, 역대 소아과의 가장 큰 질병 중 하나였던 痘瘡이 실려 있지 않는데, 이는 저자가 활동하던 시기의 시대적 특징을 나타내준다. 당시 이미 우두법이 국가적으로 시행되고 있었고 서양 의학교와 의원이 생겨 종두의를 전문적으로 양성하였기 때문에, 두창에 대해 한의학이 주도권을 잃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1925년 10월에 나온 『東西醫學硏究會月報』혁신 제1호에 나오는 “醫會歷史”에 따르면 崔奎憲은 1898년에 朝鮮醫士總合所가 설립되었을 때 李鶴浩와 함께 連次所長으로 10여년간 봉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朝鮮醫士總合所는 한일합방과 더불어 폐지되고 말았다. 1913년에 朝鮮醫生會가 결성되고 다음해에 『漢方醫藥界』라는 최초의 학술잡지가 나왔을 때 同誌에서는 崔奎憲을 編述員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여기에 그는 “小兒生長保護論”이라는 글을 발표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어린 아이가 태어날 때 처치법으로부터 태어나서 젖 먹이고 잘 자라게 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어서 소아과 전문의로서의 면모를 느끼게 해주고 있다.

그는 朝鮮醫生會가 창립된 후의 감회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醫道斯昌, 내有報筆, 杏林春回, 橘井香溢, 發揮眞理, 거아如洗, 泛彼慈航, 無往不濟, 意之所到, 誠存于內, 念玆在玆, 毋或少懈.”
이렇듯 崔奎憲은 小兒科 專門醫로서 당대 최고의 명의로 이름을 떨쳤던 御醫出身 한의사이다. 그의 관심은 조선의 小兒科의 전통을 제대로 계승하여 후대로 이어주는 것이었고, 이러한 노력은 오늘날에도 계승되고 있다.

김남일(경희대 한의대 醫史學敎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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