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비평] 유림(儒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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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평] 유림(儒林)
  • 승인 2007.03.0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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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역사 펼친 대서사시

댄 브라운(Dan Brown)의 ‘다빈치코드(The Da Vinci Code)’가 전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이후 가장 두드러진 문화현상 중의 하나는 소위 ‘팩션(Faction)’일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사건이나 인물에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을 결합하여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키는 ‘팩션’! 역사성과 오락성을 구비한 탓에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반면, 사실왜곡의 가능성도 함께 지니고 있는 ‘팩션’! 이 신조어(新造語)의 문화예술장르는 ‘주몽’, ‘대조영’, ‘그놈 목소리’, ‘아버지의 깃발’ 등이 증명하듯이 최근 TV 드라마와 영화 등으로도 더욱 확대되는 추세이지만, 역시 주된 적용 분야는 애초의 출발점이기도 했던 소설임에 분명합니다.

얼마 전 팩션 소설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유림(儒林)’이 전 6권으로 완간되었습니다. 저자는 소개가 불필요한 최인호 님이며, 제목에서 풍기는 뉘앙스 그대로 2,500여년 유교의 역사가 장대하게 펼쳐지는 대서사시입니다. 즉 유교의 기원인 공자에서부터 퇴계 이황에 이르기까지 유교가 찬란하게 꽃피운 인문과 문화 및 시절인연이 낳은 대사상가들을 시공을 초월하여 되살려놓은 소설인 것이지요. 기실 유교에 대해선 대강의 지식이 있노라 생각했기에 선뜻 손이 가진 않았지만, 이전에 경허(鏡虛)스님의 일대기를 다룬 ‘길 없는 길’을 워낙 재미있게 읽었던지라 6권 셋트임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울 경우 치러질 밤샘까지 각오하고 구독했더랬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각각의 낱권에 표지된 대로 1권은 조광조, 2권은 공자와 노자, 3권은 퇴계 이황, 4권은 맹자, 5권은 율곡 이이, 6권은 공자와 퇴계 등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안자, 장자, 주자, 묵자, 순자, 왕양명, 육상산, 정이천, 정명도 등등이 총망라되어 동양사상 전반을 정신없이 훑어볼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내용이 방대한 탓인지 이전 저자의 책에서는 흔치 않았던 오자가 상당히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또 내용이 상당 부분 겹칠뿐더러, 3권과 6권은 거짓말 좀 보태면 반 가까이가 중복되더군요. 아울러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 사이에 오간 편지는 따로 단행본(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을 읽었던 사람에게는 너무 겉핥기식으로 넘어간다는 느낌뿐이었습니다.

방금 언급한 이런 단점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유림’은 전체적으로 장점이 더 많은 소설이라 여겨집니다. ‘박이부정(博而不精)’할지언정 동양사상의 전반을 맛볼 수 있고, 한시(漢詩)나 선시(禪詩)의 작성 배경 및 행간의 의미를 살포시 파악할 수 있으며, 유명 사상가의 인생역정까지도 슬며시 그려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에만 취해 지냈을 것 같았던 퇴계선생께서 다음과 같은 연시(戀詩)를 지으셨다는데……!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死別已呑聲)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없더라(生別常惻惻) 서로 보고 한번 웃은 것 하늘이 허락한 것이었네(相看一笑天應許) 기다려도 오지 않으니 봄날은 다 가려고 하는구나(有待不來春欲去)” <값 전6권 5만7천원>

안세영(경희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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