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열 칼럼] 한의학과 중의학(TCM)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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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열 칼럼] 한의학과 중의학(TCM)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 승인 2007.02.2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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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학자들을 만났을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아마 ‘한국의 한의학이 중의학과 어떻게 다른가’일 것이다. 전통시대 한국과 중국은 의학 분야에서 거의 대부분의 이론, 치료기술, 텍스트를 공유했다.
지역의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과 중국의 각 지역에서 지리적, 문화적 환경에 따라 다양한 의학이론과 치료기술들이 출몰했지만 큰 틀에서 보면 다 내경의학과 상한의학의 전통 속에 포섭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므로 전통시대 한의학과 중국의학에 대해서는 차이를 강조하느냐, 아니면 공통점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같은 의학으로도, 또는 다른 의학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작 두 나라 전통의학 사이에 큰 차이를 만들어낸 것은 근·현대 시기다. 중국의 경우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되는 1949년부터 1965년에 이르는 시기는 현대 중의학(TCM) 형성에 있어 대단히 중요하다.

중국의학사 연구자들은 이 시기를 ‘중국의학의 대전환기’라고 부른다. 中西醫合作(1945~50), 中西醫團結(1950~8; 1950~3:中醫學習西醫, 1954~8:西醫學習中醫), 中西醫結合(1958~현재)과 같은 구호들이 이 시기 중의학과 서의학의 관계, 또 그 속에서 이루어졌던 중의학의 변화과정을 대략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이 시기 중의들은 서의들과 대결하면서 위기를 느꼈고, 중국의학을 보존하고 발전시킬 방법들을 모색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중국의학을 이데올로기적으로 공산주의 유물론 철학과 결합시키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중국의학이 더 이상 ‘봉건적’, ‘미신적’이 아닌 ‘새롭고(新)’, ‘과학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중국의학사 학자들은 중의들이 만들어낸 ‘中醫辨證, 西醫辨病’이라는 구호가 이런 목적을 달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이 구호는 무엇보다도 중의가 서의와 겹치지 않는 독자적인 영역을 가지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또 ‘변증논치’의 변증(辨證)이라는 용어는 중국에서 ‘dialectic’의 번역어로 사용되는 변증법(辯證法)이라는 용어와 발음, 실질, 철자법상 유사했다. 즉, 중의사들은 변증이라는 용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중국의학의 고유한 영역을 확보하고, 또 중국의학을 이데올로기적으로 공격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변증논치의 뿌리를 諸子百家 시대의 전통적인 중국 사상 속에 존재했던 ‘소박한 유물론’에 갖다 대었고, 변증논치를 이론과 실천의 혁명적인 단결(통일)을 상징하는 모델로 만들었다.

이런 과정들은 근·현대시기 유사한 현대화, 과학화, 체계화, 표준화의 과정을 밟았으면서도 한의학과 중의학을 서로 상당히 다른 양상의 의학으로 만든 주된 원인이다. 중의학이 발전시킨 한의학적 개념과 이론에 대한 유물론적 재해석은 한국과 중국의 한의학 이론분야에서 많은 차이들을 만들어 냈다.
또 그동안 간과되어 왔지만 변증논치에 있어서도 한국과 중국 사이에 분명한 차이를 만들어 냈다. 변증논치가 서양의학과 구별되는 한의학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그렇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중의학은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필요에 의해 변증논치를 서의의 변병에 대립하는 중의의 고유한 특징으로 특별히 부각시켰다.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마치 전통시대 한의학 임상에는 변증논치만 있었던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중국의 중서의결합 의학이 중의 병명을 포기하고 서의 병명과 중의 변증을 결합하는 형태로 임상을 표준화함에 따라 이런 인식은 더욱 고착화되었다.
하지만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에서도 변증논치에서의 증(證, pattern)과 함께 증(症, 증상, sign), 병(病, disease)에 대한 인식이 공존하고 있었고, 임상에서도 환자의 진단과 치료에 이 세 가지가 모두 활용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한의학적 병명, 증(證)명, 증(症)명 이 세 가지 모두가 임상에서 활용되고 있다. 중국식의 변증논치만으로 임상하는 것이 뭔가 우리에게 어색하고 불편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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