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피기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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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피기 좋은 날
  • 승인 2007.02.09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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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자의 쿨한 불륜 보고서

강의를 위해 오랜만에 집을 떠나 한적한 곳에 위치한 연수원으로 떠났다. 복잡한 도시의 모습은 곧 한강을 따라 이어진 산으로 바뀌었고 어느덧 버스는 산 속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1시간에 한 대로 움직이는 버스를 놓칠까봐 노심초사했던 마음을 달래며 차창 밖을 보다가 별달리 대수롭지 않은 풍경이 되어 버린 모텔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산 속에 모텔이 있다니”라는 생각보다는 이러한 모텔이 왜 이 곳에 있어야 하는지를 <바람 피기 좋은 날>을 본 후에 쉽게 생각할 수 있었다.

지고지순한 모습으로 남성의 보호를 받아야만 되는 나약한 존재로만 그려지던 여성의 이미지가 현재는 남성들의 위치를 압도하면서 당당히 불륜의 주체적인 입장으로 그려질 정도로 여성의 파워는 강해졌다. 물론 아직 TV 드라마에서는 남편의 외도에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는 여성들의 모습이 많이 등장하고 있지만 영화에서는 <해피 엔드>, <바람난 가족> 등으로 이어지는 여성 외도 영화의 계보를 통해 불륜의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여성들의 성적 욕망을 당당하게 그려 나가고 있다.

무료한 일상 생활을 지내던 유부녀 이슬(김혜수)과 작은 새(윤진서)는 채팅을 통해 대학생(이민기)과 여우 두 마리(이종혁)를 만나면서 삶의 활력소를 얻게 된다. 처음에는 남의 시선을 피해 몰래 만나던 불륜 커플들은 서서히 과감해 지고, 급기야 이슬은 남편에게 현장을 들켜 버린다. 그 때 옆 방에 있던 작은 새는 경찰인 남편이 오자 자신을 잡으러 왔는지 알고 놀라 숨는다.

제목부터 화제가 된 <바람 피기 좋은 날>은 <타짜> 이후 대한민국의 섹시코드로 자리매김한 김혜수의 도발적인 연기가 덧붙여지면서 개봉 전부터 많은 관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거기에 유부녀들의 불륜을 과감하면서도 기존 불륜 영화와는 달리 쿨(cool)하게 표현하면서 질퍽질퍽할 것 같은 내용의 영화를 코믹하면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영화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발상의 전환이 과연 보수적인 관객층까지 다 커버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 문제다.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에서도 걸핏하면 불륜이 주된 소재가 되고 있는 마당에 영화까지 그것을 표현할 필요가 있느냐라고 반문하면서 이 영화의 파장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사회적인 논란이 가속화 될 수도 있다.

최근 청소년의 성(性)문제가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되면서 올바른 성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른들의 불륜이 청소년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모르지만 어차피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바람 피기 좋은 날>은 답답한 일상 속에서 잠시 동안 탈출하고자 했던 두 여성들의 모습을 비록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불륜이라는 부분을 넘어서 본다면 이 영화는 사랑과 가족이라는 이분법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 또 다른 면을 생각하며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상영중>

황보성진(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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