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의료법은 의료의 상업화 촉진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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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의료법은 의료의 상업화 촉진법인가?”
  • 승인 2007.02.0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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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조항 몇 개 빼도 신자유주의적 본질은 그대로
의료를 상품으로 보는 한미FTA 협상의 연장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법개정안은 일부 문제조항이 조정된다 하더라도 의료의 상업화 흐름을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돼 관심을 끈다.
이번 의료법개정안이 의료의 영리화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발상을 저변에 깔고 있어 의료계가 주장하는 독소조항 몇 개를 뺀다고 해서 그 본질이 크게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게 의료인들의 공통적인 생각이다. 의료법 개정이 의료시장의 개방에 대비해 경쟁체제로 전환시키기 위한 선제적인 대응조치의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실제로 개정안에 삽입된 조항 하나하나의 성격과 전체적인 성격 측면에서 그 특징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우선 의료기관의 분류체계를 재편했다. 의료기관의 종별을 기존에 종합병원·병원·치과병원·한방병원·요양병원·의원·치과의원·한의원 및 조산원으로 나누던 것을 의원급 의료기관, 병원급 의료기관, 종합병원급 의료기관, 종합전문병원급 의료기관으로 나누고 동시에 이들 의료기관에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가 의료행위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이라고 명시했다.

또한 병원의 기능을 일반병원에 더해 전문병원·재활병원·지역거점병원 등 특수기능병원 조항을 신설했다.
이런 조항은 병원내에서의 협진과 의료전달체계를 원활하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고 인정된다. 한 곳의 의료기관에서 한의사·양의사·치과의사가 진료하면 협력진료가 가능해 치료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국가입장에서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의사의 입장에서 의사, 치과의사와 동등한 위치에서 진료에 참여함으로써 사회적 위상이 제고될 수 있는 여지도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의 신설로 인한 최대의 수혜자는 병원자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의약분업 이래로 위축된 중소병원의 활로를 틔워주자는 목적에서 추진됐기 때문이다. 특징이 없는 병원을 다양한 의료인이 근무하는 협진의료기관으로 만들어줌으로써 1차 의료기관에 대한 경쟁우위에 서게 할 뿐 아니라 특수기능병원으로 전환할 수 있게 함으로써 병원의 전문성을 신장시킬 수 있다는 의도에서다. 이 개정안이 확정될 경우 1차 의료기관은 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높다.

병원산업을 육성하려는 정부의 의지는 이 조항말고도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다. 의료행위에서 ‘투약’과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없는 행위’를 제외하는 조항도 그중의 하나다.
투약을 의료행위에서 제외할 경우 약에 대한 의료인의 권리가 축소될 것은 물론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없는 행위를 유사의료행위로 규정하는 조항과 맞물려 1차 의료기관, 특히 한의원급의 위상을 심각하게 떨어뜨릴 것으로 평가된다.

네가티브 의료광고의 허용, 비급여 의료수가의 공시, 유인·알선행위 허용, 의료기관의 명칭에 전문병원과 전문분야 표기를 허용한 것도 병원과 프랜차이즈의료기관의 입지를 넓혀주는 조치들이다.
여기에 더해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는 병원 50여 곳을 지정한다거나 이들 병원에 정부예산을 지원하는 정책이 현실화되면 병원의 경쟁력은 1차 의료기관을 압도함은 물론 1차 의료기관의 붕괴로 인한 의료소비자의 권리도 침해될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법인의 합병과 관련한 조항이 7개조나 포함된 것도 눈에 띤다. 이들 조항은 비영리 의료기관간 인수·합병을 자유롭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료법인의 거대화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의료법인의 부대사업을 허용하는 조항도 병원에 주는 특혜다. 이 조항에 따라 병원이 할 수 있는 부대사업은 지난해 개정당시 허용된 주차장·장례업 등 7개 분야에 더해 이번 개정안에서는 국외 의료업, 관광업, 의료체인업, 유료 사회복지사업 등 4개 분야를 추가해 부대사업의 범위가 총 11개 분야로 늘어나게 됐다.

대한병원협회가 의료법 개정을 찬성하는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다. 의료법 개정안에 포함된 광고규제 완화, 비전속진료(프리랜서의사) 허용, 병원 내 의원 개설 허용, 부대사업 인정 등의 조항은 병원계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요인이기 때문이다.
의료법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12일 재정경제부가 발표한 서비스산업 경쟁력강화 종합대책에 입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의료서비스의 다양화·첨단화를 위한 9가지의 제도개선 사항 중에는 병원경영지원회사(MSO : Management service organization)의 신설을 허용해 의료행위와 관련없는 병원경영 전반을 지원할 수 있게 했다.

이밖에도 병의원간 장비 공동이용, 의료인의 비전속진료 허용, 의료기관의 기능분화, 의료법인의 수익사업 허용을 통한 신시장 영역 개발, 혁신형 병원 신설, 비영리 의료기관간 인수·합병의 활성화, 유인·알선 완화, 실손형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등의 조치를 담고 있다. 이들 내용은 거의 대부분 이번 의료법개정안에 반영됐다.
재경부가 의료를 하나의 영리행위로 보고 일련의 입법을 추진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제주, 부산, 인천 경제자유구역에 영리의료법인에 의한 병원설립을 허용하는 정책도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이런 흐름은 외교통상부와 재정경제부가 주도하고 있는 한미FTA협상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게 관계전문가들의 견해다. 의료를 자격교환의 대상으로 삼은 것 자체가 의료를 상품으로 본 것이라는 점에서 서비스 경쟁력강화 종합대책이나 한미FTA협상, 그리고 의료법개정안 등이 동일한 범주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한미FTA협상에서 유보된 의료직종의 자격 상호인정이 언제, 어떤 형태로든 수면위로 부상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의료계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결국 의료법개정이든, 한미FTA든 일부 조항을 삭제하든 수정하든, 아니면 논의를 중단하든 대세는 의료시장 개방과 그에 따른 경쟁력 강화의 흐름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1차 의료를 한편으로 하는 측과 병원산업, 그리고 병원산업을 육성·지원하는 정부를 다른 한편으로 하는 측 사이에 끊임없이 갈등하는 국면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의계가 어떤 관점에서 의료법개정을 대처해나갈지 일선한의사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족의학신문 김승진 기자 sjkim@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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