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한미래포럼에 대한 견해(2) - 이정호
상태바
제4차 한미래포럼에 대한 견해(2) - 이정호
  • 승인 2006.11.24 14: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bmaster@http://


어떻게 동의(東醫)과학을 발달시킬 것인가?

동북아시아에 과학(科學)이라는 말이 정착된 지는 길게 잡아야 150년 정도가 된다. 한국 근현대사에 포개어 보면 이 말도 거의 개화기로부터 일본에서 수입되어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에서 사이언스(science)를 지칭하는 번역어로 과학이 물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과학을 의미하는 이학(理學)이라는 말과 함께 쓰이기도 하고, 과학과 이학이 철학을 의미하는 필로소피(philosophy)와도 혼동되어 쓰이기도 하다가 과학, 이학 및 철학으로 정착된 것이다.
서양학문사에서 철학(일부는 신학)이라는 큰 학문적 범주에서 거의 모든 분야의 과학 분야와 학문이 분화해 나간 것과 궤를 같이한다. 과학과 학문의 전반적 모습을 그려내거나 과학과 학문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지침과 처방을 주는 그런 지식이라는 의미에서의 철학이 있는 것이다.

■ 과학과 학문을 보는 협소한 시각

그런데 현재 한국에서 일반화된 극심한 문과-이과의 두 문화 분리현상은 이러한 측면을 볼 수 없게 만들고 또한 그러한 학문 활동은 분업화가 과도하게 진행된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이상한 것으로 보게 한다.
이러한 과학과 학문을 보는 협소한 시각이 아주 짙게 드리워 진 곳들 중의 하나도 한의학계와 서양의학계가 아닌가 생각된다. 모두 이과출신들이고 자연계열이니까 더 그런지도 모른다. 동의과학, 또는 한의과학을 자연스럽게 실천하는 과학자와 과학자 사회를 형성해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과학과 의학을 보는 시각의 폭과 깊이를 넓히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방향을 위한 주장 중의 하나가 한의과대학에 서양과학사(의학사 포함)와 과학철학을 위한 과정부터 개설하자는 주장일 것이다. (박석준, 『한의대에 과학사·과학철학과정 개설해야』, 민족의학신문 2006년 11월 13일자)

■ 한의대에도 과학기술학자 필요

그런데 서양 과학과 의학을 인문사회학적으로 연구하는 ‘과학학(science studies)’, 또는 ‘과학기술학(science & technology studies)’에는 과학사 및 의학사, 과학철학 및 의학철학 뿐만이 아니라 과학사회학과 의료사회학, 과학커뮤니케이션학, 과학관리학(과학경영학 및 과학정책학) 및 의료관리학이라는 여러 세분 분야들이 있기도 하고 이러한 여러 세분 분야들을 뭉뚱그리는 초학제적(transdisciplinary)인 지식생산도 주도되고 있다.
아마도 한의학교육과 연구에도 이러한 좀더 넓은 ‘과학기술학’의 접근과 방법론을 전문적으로 구사하는 학자들의 유입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학기술학자들이 기존의 한의학자 사회뿐만이 아니라 임상시술을 실시하는 한의사 사회와 다양한 상승적인 상호작용을 일구어 내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러한 방향은 한국의 서양의학에게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의료사회학자는 한국에서는 정말 한 손으로 손꼽을 정도밖에 없다. 미국 사회학의 거대한 축이 의료사회학을 하는 사회학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굉장히 위축되는 측면이다.

“왜 그렇게 없는가?”를 물으면, 이는 또한 한국의 근현대화 와중에서 별다른 의식없이 서양과 일본의 것들을 수용하고 답습하던 세대들과 같이 태어나고 형성된 제도들의 결함과 허점들을 냉정하게 성찰하게 만드는 주제가 되어 버린다.
시선을 동의 과학자, 또는 한의과학자들이 형성해 내야 할 ‘동의과학’으로 돌려보자. 서양의학에 연계된 의과학자, 또는 생명의학자(biomedical scientist)들이 현행으로 실천하고 있는 생명과학의 모습과는 여러 측면에서 다른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동서의 의학 내지는 의과학이 연구하고자 하는 대상은 아무래도 인간이라는 생명체이다.

그러면 인간이라는 생명체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하는 이론적 문제 내지는 지식의 문제가 중요하게 마련이다. 생명의학자들이 실천하는 과학은 현대 생명과학의 서구적 역사 발전에서 축적된 이론과 실천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반면에 동의 과학자들은 동양 의료가 만들어 온 전통 의료 지식들을 엄밀화하고 체계화하는 데에 기여할 것이다. 인간 몸과 질병에 대한 전통인식틀이 어떤 것이었는가 뿐만이 아니라 현대적인 모습의 한의학의 인식틀은 어떠한 방향으로 형성될 수 있는가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이런 방향의 연구는 한국한의학연구원뿐만 아니라 실제의 임상을 하는 개원의들과의 상호작용도 예상하게 한다. 물론 과학기술학 전문가들의 기여도 필요할 것이다. 서양적 인식틀을 참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서양 과학철학계의 흐름으로 보아 최근에는 물리과학을 과학의 전형으로 보는 과학철학과는 형이상학적으로나 실천적으로 구분을 보이는 철학, 생명과학의 발달사와 이론과 연계된 과학철학이 대두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서양철학적 흐름을 수용하면서도 동양에서 생명을 보는 관점을 정리하고 이에서 나름대로의 논리와 이론을 끌어내는 작업이 중요할 것이다. 동의과학의 독자적인 과학적 인식틀을 만들 수 있으면 더욱 좋고, 아마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 동의과학의 독자적 인식틀 만들어야

이러한 이론적 작업과 동의과학의 연구실험실은 병행 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의 한의학 기초의학교실에 한의약품의 서양 약리학적 환원이라는 측면을 강조하는 실험실이 많이 생겨났다고 한다.
침을 현대 의물리학(medical physics)의 기기 - 예를 들어 핵자기공명영상(MRI) 같은 기기 - 와 데이터로 재해석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다양한 개념들과 의료적 실천들을 강조하는 기초의학 실험실의 개설도 고려해 봄직하다.
전통 의서들에서 시작된 여러 개념들 - 특히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에서 나타난 사상(四象)개념 - 을 유전학이나 서양 의학 및 생명과학의 방법론을 가지고 재구성해 볼 수 있을 것인가라는 화두를 가지고 연구하는 동의과학 실험실도 개설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한의학에서 질병으로 취급하는 대상으로 역학(epidemiology) 연구를 실시하는 연구실의 개설도 가능할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동의과학자, 또는 한의과학자들의 연구결과들이 발표되는 현대적 동의 과학 학회의 활동을 전략적으로 발달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그 학술지의 수준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여러 가지 전략들을 수립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동의 과학자들의 활동과 그 결과물은 전통적이지만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현대의 우리 문화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