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한미래포럼에 대한 견해 - 이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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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한미래포럼에 대한 견해 - 이정호
  • 승인 2006.11.1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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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東醫)과학, 또는 한의(韓醫)과학을 위하여

다음 글은 지난 10월 23일 있었던 한의학미래포럼 제4차 토론회의 주제(한의학의 과학화)에 대한 고려대 생명자원연구소 이정호 선임연구원이 보내 온 견해입니다. <편집자 주>

한국이라는 땅에 사는 우리가 우리의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호소할 수 있는 공간은 두 이미지로 나뉘어 있다. 한국에서 의료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아닌 보통 사람들은 다양한 편차가 있겠지만 두 구분된 공간을 일상적으로 이용하게 된다. 하나는 한의학이라는 의료가 베풀어지는 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서양 의료가 실행되는 공간이다.
의료는 인간이 사회를 이루면서 언제나 같이 있었기에, 저마다 나름대로의 체계적이고 엄밀한 지식들이 이러한 의료적 공간 속에 들어가 있다. 이런 의료지식들은 사용되는 의료기술들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고, 특히 동서양의 구분과 맞물려 있기도 하다.

서양의료는 근대에 들어와서 ‘의과학(medical science)’ 혹은 ‘생물의학(biomedicine)’이라고 하는 과학지식의 지지를 받으면서 성장하고 그 의료기술들을 엄밀화 및 체계화시켰다.
한국에는 이러한 의과학 내지는 생물의학을 연구하는 제도가 ‘기초의학’ 교실이라는 이름으로 제도화 되어 있다.

하지만 제도적, 인적 결함으로 인해서 한국의 기초의학 교실에서 생산되는 과학지식의 수준은 의학연구센타(Medical Research Center)라는 국가연구비가 들어가기 시작한 최근 이전에는, 일반적인 생명과학자들의 입장에서 보기에 급속도로 발전하는 한국 생명과학의 평균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임상의학 연구도 통계학이나 역학(epidemiology)의 전문적 연구자 내지는 과학자 집단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또한 굉장히 한국적인 혹은 후진적인 체제라고 하면 가혹한 비평이겠지만, 한국의 서양 의학계에서는 전문의 제도와 박사-석사 학위 대학원 과정이 병립한 체제로 되어 있다. 최고도의 의사 훈련의 종착점인 전문의를 양성하는 체계는 의료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전문의 의사에게 자신들의 질병을 보이는 것이 환자들의 의료 복지이다. 물론 유전질병전문의와 같은 제도는 한국에는 아직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개원을 하면 의학박사 학위가 프리미엄으로 중요해지기 때문에 학문적인 업적이 있어야 하는 현실적·상업적 필요가 있다. 국가연구비가 거의 최근까지도 지급되지 않았던 기초교실들의 실험연구비재원 마련에 의학 박사-석사를 편법적·비윤리적으로 양산한 의학대학원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었다. 요약하여 말하면 최근까지 한국의 서양 의학계는 새로운 과학지식의 생산이라는 과학 연구 본래의 모습은 그다지 보이지 못했다.

그러한 기초의학교실에서 길러지던 기초의학 학문 후속세대는 과학자라는 정체성보다는 서양 의사라는 정체성의 지배아래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측면이 상당히 개선되고 있지만, ‘의사(醫師)협회’ 산하에 ‘의학회(醫學會)’가 부속되어 있는 현재의 체제가 이러한 측면을 제도적으로 반영한다. 의학은 과학자와 임상의사가 협력하여 발전시키는 것이라는 개념이 아직 정립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제도적, 인적 구조의 결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 중국, 대만, 그리고 일부의 일본에 있는 동북아시아의 전통의료는 어떠한가?
엄밀하고 체계적인 전통 의료 지식의 정립이나 서양 과학지식의 철학과 방법론의 수용과 결합을 시도하지는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는가를 살펴보면 여러 결함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먼저 한의학 연구자들이 서양 의학의 의과학에 대응되는 동의(東醫) ‘과학’, 또는 한의(韓醫) ‘과학’을 구성하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어떻게 얼마나 기울였는가를 물으면 대답이 궁색해지는 것 같다.

한의과 대학과 대학원에도 기초와 임상의 구분이 생겨나 있지만 동의과학, 또는 한의과학을 하는 과학자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몇 명이나 있을까?
해방 이후의 한의학의 과학화에서 빠진 것은 아마 이러한 동의 과학자 내지 한의과학자 집단의 형성이 없었다는 측면일 것이다. 한의학과 과학이 이상하게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유 중의 하나도 분명 동의과학, 또는 한의과학을 하는 과학자가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가시성을 띄고 있지 않아서 이기도 하다. 이러한 모습을 성찰하면 한의학에 대해 이런 애정 어린 질문이 생긴다. “동의과학 혹은 한의과학은 구호나 슬로건에 그치지는 않았을까?”

세계적인 수준의 과학을 하는 나라가 되려면 최소한 과학철학과는 별도로 과학의 실행, 또는 실천(practice)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적 노력들이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한국의 과학 전체를 평가한다고 해도 이러한 이론적 노력들이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통을 현대화한 동의과학 이론, 또는 한의과학 이론은 어떤 모습으로 형성되어 있을까?

한국에서는 지난 100여년 동안 서양 과학을 수용하면서 과학지식의 전수와 교육, 나아가 실험기기나 방법론과 같은 실천적 측면들만 크게 부각시켰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경제성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기술개발을 중요시 하는 기술중심주의도 형성되어 있다. 한의학 연구실험실에서 실험기기나 서양과학 방법론의 채택이나 수용만이 과학화의 전형적 모습으로 비추어졌을 것은 자명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동의과학, 한의과학의 실천은 어떠한 모습일까? 혹시 경제성 높은 한의 의료기술의 개발에만 열중한 것은 아닐까? 분명히 이것은 서양 과학철학만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여러 한의학 고전 서적과 내용, 그리고 임상에서의 경험적 연구들을 종합하고 체계화 하면서 엄밀성을 가지게 할 문제인데 이러한 방향에 대해서는 한의학 연구자 집단에서 토마스 쿤 식의 파라다임까지는 안 되더라도 컨센서스(consensus)도 없는 것은 아닐까?

한의학을 하는 한의사들은 동의과학 내지는 한의과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적어도 소수의 생명과학자들의 유입이 예상되는 가까운 미래에 생명과학자들이 동의과학, 또는 한의과학을 잘 할 수 있게 지원하고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자신들의 밥그릇을 빼앗아간다고 방해하지는 않을까? 한국의 서양의사들처럼 기초의학이라는 이름을 내어 걸고 훈련받는 한의사들이 자신들을 한의과학을 하는 과학자들이라고 떳떳하게 내세울 수 있을 것인가?

진정으로 동의과학자, 또는 한의과학자의 출현을 바라는 마음에서 이러한 화두를 던지고 싶다. “한국의 한의학계가 한국의 서양 의학계가 제대로 제도화하지 못하고, 인적 혁신을 이루어 내지 못했던 일을 할 수 있을까?”
만약 한의학계가 이러한 방향의 발전을 이룬다면 한국의 서양의학계보다 진일보한 면모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것은 동양적 전통의 올바른 현대화가 가져다주는 승리로 이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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