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한미래포럼에 대한 견해 - 박석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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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한미래포럼에 대한 견해 - 박석준
  • 승인 2006.11.10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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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대에 과학사·과학철학 과정 개설해야”

다음 글은 지난 10월 23일 있었던 한의학미래포럼 제4차 토론회의 주제(한의학의 과학화)에 대한 박석준 동의과학연구소장의 견해입니다. <편집자 주>

‘한의학의 과학화’라는 말은 일제에 의해 한의학의 부흥이 제창되던 1930년대부터 제기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한의학 부흥운동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 정책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한 마디로 말하자면 서양의학의 지배가 완전하지 못한 조선 현실에서 식민지 지배비용의 절감을 위한 것이었다.

이때 과학화의 논리는, 한의학은 과학이 아니며 따라서 그 비합리적인 요소를 배제하여 과학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한의계에서는, 한의학은 과학이 아니라 철학이라고 하거나 오히려 한의학은 과학이라는 주장으로 맞섰다.
특히 조헌영은 서양의학이 국소적인데 비해 한의학은 종합적이므로 더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조헌영 외, 『한의학의 비판과 해설』, 소나무)

30년대의 논쟁과 현재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한의학의 과학화라는 논의가 공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의학의 과학화에 대해 합의하거나 논의된 바조차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의학은 어느새 과학화의 대상이 되었다.
80년대까지는 한의학의 과학화를 언급하는 사람에 대해 백안시하는 풍토가 일반적이었지만, 90년대 이후 한의계에서 나오는 논문의 대다수가 소위 말하는 ‘과학적 방법’에 따르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정부의 정책 방향이 한의학의 과학화에 집중되어 있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한의학의 과학화가 필요한 것인지, 또 그것이 한의계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는 둘째치더라도 ‘과학’이 무엇이고 또 ‘그러한 과학’에 의한 연구가 한의학의 어떤 측면을 연구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또한 과학에 대한 논의는 더 나아가 한의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를 필요로 하지만 대부분의 논문에서는 예를 들어 기, 음양오행, 기미, 경락, 장부 등이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 지에 대한 언급 없이 곧바로 ‘과학적’ 분석이 도입되고 있다.

■ 서양에서의 과학에 관한 논의들

과학이 무엇인가를 정의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과학은 단순한 연구방법으로서의 측면만이 아니라 제도, 지식 혹은 인식체계, 생산력이라는 다양한 측면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떤 측면에 강조를 두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버날, 『과학의 역사』, 한울)
또한 기술과 과학과의 관계도 그렇게 간단하게 풀리지 않는다. 좁은 의미에서 방법론으로서의 과학이라고 해도 여기에는 매우 다양한 입장이 존재한다.

방법론으로서의 귀납주의와 반증주의의 문제는 아직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인식론으로서의 실재론과 반실재론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래디언, 『과학철학의 이해』, 이학사)
그러나 이러한 과학에 관한 논의들은 대부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라고 하는 서구의 역사적 전통 속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비서구적 배경을 갖는 여러 시대와 사회의 과학을 설명하기 위한 논의가 나오게 된다. (레비스트로스, 『야생의 사고』, 한길사)

또한 자연과 사람의 몸을 대상으로 할 경우 달라지는 과학의 기준 혹은 방법론에 대한 모색도 나오게 된다(특히 마음과 연관된 최근의 여러 논의).
그리고 분화되어가기만 하는 과학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시도와 이에 대한 비판 역시 나오고 있다. (윌슨, 『통섭』, 사이언스 북스 / 베리, 『삶은 기적이다』, 녹색평론사)
이처럼 다양한 논의가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의계에서 ‘과학’이라는 말로 의미하는 바는 서양과학의 기준에서 보아도 매우 편협한 것으로 보인다.

■ 누가, 왜 과학화를 요구하는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과학화의 가장 큰 배경은 경제적 필요다. 정부로서는 한의학의 과학화를 통해 국부를 증가시키는 것이 목적이며 연구하는 사람과 연구자가 속해 있는 기관의 입장에서는 연구비의 획득이 목적이다.

그러면 개원가의 경우는 어떠한가.
대다수의 개원가에서는 한의학의 과학화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일부 관심이 있다면 자신의 임상을 뒷받침해줄 객관적 자료로서의 의미 이상은 아니다.
그러나 연구자나 정부의 입장에서는 ‘사적인’ 개원가의 임상을 뒷받침해줄 이유가 없기 때문에 개원가에서의 과학화는 거의 전적으로 사비로 충당되고 있으며 정부의 자금은 개원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한편 국민의 입장에서 과학화는 어떤 의미일까. 한의학을 비과학 혹은 사이비과학이기 때문에 과학화해야 한다는 사람은 아마도 일부의 의사나 약사를 제외하면 매우 적은 수일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은 한의학의 과학화로 자신들에게 더 이익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약재의 안전성 확보나 진단과 치료의 표준화, 효능의 객관화 등 한의학의 현대화에 해당하는 부분에 관심이 많을 것이다(이러한 현대화가 반드시 과학화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 한의계에서 과학화가 필요한 이유

한의계, 특히 대학에서 과학화에 몰두하고 있는 사이에 개원가에서는 최근 매우 염려스러운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대학에서 배출된 한의사들이 엄청난 고액의 임상과외를 받고 있으며 그렇게 해도 임상에 자신이 없어 개원을 포기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특별한 임상 훈련을 받지 못하고 개원한 대다수가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대학 졸업생의 사회진출이 어려워지면 입학생이 줄고 그러면 대학의 존립 자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현재와 같은 사태가 지속된다면 과연 한의대는 존립할 수 있을까.
과학, 특히 근대 서양과학은 과학의 대상을 보는 관점과 분석하고 종합하는 방법은 한의학의 그것과 일치하지 않는다. (박석준, 「한의학을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한의계에서 한의학의 과학화가 필요한 이유는 한의학의 이론과 임상을 현대적으로 설명해야 할 필요 때문이다. 산업화를 통한 부의 창출은 부수적인 효과일 뿐이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과학화는 대부분 한의학 이론에 근거하지도 않고 이를테면 한약재에서 신약을 개발하려는 시도처럼 한의학과는 전혀 관계없는 연구로 그치고 있다(그러한 연구는 한의학을 소재로 한 과학적 연구일 뿐이다).

한의학의 과학화는 한의학의 한 부분일 뿐이다. 진정 중요한 것은 한의학의 중심, 곧 한의학의 고전과 임상이다.
한의학의 과학화는 어디까지나 한의학의 관점에서 한의학의 이론과 임상을 증명하는 수단 혹은 도구로서 역할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 바란다면 이러한 연구가 부분과 전체, 기계론과 생기론, 환원주의와 유기체론 등과 같은 철학적 사유에 새로운 지평을 제시하는 것으로 역할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의료 일원화와 같은 진정한 동서고금의 통합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한의학이 비과학이기 때문에 한의학을 과학화해야 한다는 논리는 적어도 한의계에서는 매우 소수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비록 소수일지라도 현재의 과학화에 대한 요구가 과학 혹은 서양의학에 대한 컴플렉스에서 비롯된 측면은 없는지, 그리고 오히려 그 반작용으로 서양의 과학을 지나치게 편협하게 받아들이는 측면은 없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왜곡된 컴플렉스를 없애기 위해서는, 그리고 한의학의 과학화를 계속 진행하려고 한다면 당장 한의대에 서양의 과학사(의학사 포함)와 과학철학을 위한 과정부터 개설해야 한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보게 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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