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주역] 지천태 – 평안에 이르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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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주역] 지천태 – 평안에 이르렀는가
  • 승인 2023.04.21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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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

박혜원

mjmedi@mjmedi.com


박혜원
장기한의원장

태평성대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그런 평가를 들었던 정권이나 왕조는 드물다 못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은 만족을 모르는 존재고 그렇기에 늘 불만 거리를 찾아낸다. 누리고 있는 것이 당연해지게 되면 그것 이상을 바라고, 더 좋은 대접을 받기 원하는 것이 사람의 심보다. 내가 누리고 있던 것이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 기본 중의 기본이라 결코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권리가 사실은 누군가의 노동과 권리 수호의 노력 끝에 얻어졌다는 것을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난 다음에야 절실히 깨닫는다.

주역의 지천태 괘는 그 태평성대를 그린 괘다. 지천태 괘의 괘사는 다음과 같다.

 

泰 小往大來 吉亨

彖曰 泰小往大來吉亨 則是天地交而萬物通也 上下交而其志同也 內陽而外陰 內健而外順 內君子而外小人 君子道長 小人道消也

 

태괘는 소인의 시대가 가고 대인의 시대가 오는 것을 나타낸다. 안에 있는 양이 확장되어 밖으로 뻗어나가고, 위에 있는 하늘이 아래로 내려와 순환이 시작된다. 반대의 모양인 천지비 괘가 소통 불가의 상태를 나타낸 것과는 달리 태괘는 선순환이 시작되어 숨통이 트이는 상태이다.

 

初九 拔茅茹 以其彙 征吉

 

띠풀은 땅속에서 서로 뿌리가 얽혀 있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난 것 하나를 뽑으면 그 뿌리가 연결된 다른 것들도 같이 뽑혀 나온다. 띠풀 혼자는 연약하지만 서로 연결되어 붙잡고 있는 그 무리는 쉽게 제거되지 않는다. 태괘와 반대의 모양인 비괘의 초육 효사는 저기서 ‘형통하다’는 말이 하나 더 붙은 것 빼고는 같다. 비괘의 초육이 압제에 저항하는 민초와 같다면 태괘의 초구는 승리의 원동력이며 미래로 가는 추진력이다. 같은 뜻을 모아 함께 행동하는 것이 제대로 된 방향과 목적을 설정하고 순조롭게 가는 상황이니 길할 수밖에 없다.

 

九二 包荒 用馮河 不遐遺 朋亡 得尚于中行

 

구이는 음의 자리에 있는 양이지만 가운데에서 자기 역할을 잘 해내는 중이다. 육오와 음양이 서로 응하는 짝이며 연약한 육오 대신 이 상황을 이끌고 나갈 태괘의 주인공이다. 초구는 여럿이 모여 힘이 있지만 서툴고 거칠다. 그런 초구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잘못을 가르치며 화합하도록 만드는 것도, 구삼에게 내괘에서 외괘를 건너는 용기를 가지도록 하는 것도, 멀리 있는 육오가 능력이 없다고 등한시하지 않는 것도, 마지막까지 고집을 부리며 저항하는 소인인 상육의 무리를 흩어버리는 것도 전부 구이가 할 일이다. 이 모든 것들을 다 해낼 수 있다면 존경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九三 無平不陂 無往不復 艱貞 無咎 勿恤其孚 于食有福

 

구삼은 앞의 구이에서 나온 用馮河의 주체이다. 논어에 暴虎馮河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고 큰 강을 배 없이 걸어서 건넌다’라는 뜻으로 용맹하지만 극도로 무모한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것이 구삼의 운명이다. 당연히 그 길이 순탄할 리 없다. 조금 수월한가 싶으면 언덕이 나타나고 길을 잘못 들어 갔다가 후퇴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 그 모든 결정을 깊이 생각해서 한다면 이 고생 끝에 반드시 결과가 온다. 세상만사 고생과 그 결실이 항상 정비례하지 않는다. 그러나 구삼은 믿고 가야만 한다. 그게 구삼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六四 翩翩 不富以其鄰 不戒以孚

 

육사는 외괘의 관문이지만 이미 구삼의 입성을 허용한 상태다. 만약 이 자리에 양효가 있어 구삼과 서로 다툰다면 일이 지연되고 제대로 성사되지 않을 수도 있다. 육사가 대가를 요구하거나 싸우려 들지 않고 문을 열어주기에 대인의 시대가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단전에는 不戒以孚 中心願也라 하였다. 육사가 비록 상육과 같은 음효이지만 구이의 행보를 지지하고 따르기를 원해왔기에, 구이가 그만큼의 덕을 갖추고 믿음을 주는 사람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六五 帝乙歸妹 以祉元吉

 

육오는 양의 자리에 있는 음이다. 그러나 구이의 도움으로 이 자리에서 해야 하는 올바른 일들을 할 수 있다. 두 세력의 강력한 결합은 흔히 혼인으로 완성된다. 육오와 구이도 마찬가지이다. 구이가 자기 뜻을 펼치기 위해서는 육오의 위치가 필요하며, 육오는 이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구이의 능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이해관계가 맞는 둘이 결합함으로써 대화합의 시대가 열린다.

 

上六 城復于隍 勿用師 自邑告命 貞吝

 

소인의 시대는 끝이 났다. 성은 무너졌고 이제 남은 것이 없는데도 고집해서 군사를 일으키고 거대한 시류의 흐름을 막아보려 한들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없다. 순순히 항복하여 구이의 아래로 들어가는 것만이 상육이 살아남을 방법이다. 소인이 아무리 꾀를 내어본다 한들 대인을 넘어설 수는 없고 이제는 민심과 시운마저 소인의 편이 아니다. 그러니 고집해봤자 자기 위치와 상황만 더 나빠지게 만든다.

역사는 항상 폭군(暴君)과 암군(暗君) 사이 잠깐의 단비 같은 성군(聖君)과 그 어디에도 속한다고 말하기 어렵게 공(功)과 과(過)를 모두 갖춘 지도자들의 이야기가 반복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 모든 것이 언젠가는 끝난다는 것이다. 하늘 아래 영원한 권력은 없고 역사는 반복되는 듯 아주 느리고 천천히 어떤 방향으로 흘러간다. 지도자에게는 지도자의 몫이 있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끌려갈 때는 격하게 저항하고, 옳은 방향으로 갈 때는 날개를 단 듯 등을 밀어주는 것은 결국 어려울 때나 좋을 때나 띠풀이다. 비괘와 태괘의 띠풀이 모두 길하다고 해도, 비괘의 띠풀은 형통한 이유는 그 참혹한 시기에는 그런 믿음이 절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태평성대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구삼처럼 평평한 길도 언덕길도 가며, 가끔은 되돌아 나오고 잘못을 깨달으며 그렇게 오늘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동훈은 지안에게 묻는다. ‘평안에 이르렀느냐’고. 그때 지안은 짧게 ‘네’라고 대답한다. 우리에게도 그럴 수 있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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