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의 젊은 힘, 지역보건의 참 일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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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료의 젊은 힘, 지역보건의 참 일꾼(5)
  • 승인 2006.09.0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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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몸 고생, 한의학 위상 높아진다면야…”

5. 섬에서 공중보건의사로 살아간다는 것
(의료취약지역 공중보건의사의 이야기①)

■ 포기함을 배워야만 하는 섬 생활

“여보세요, 오늘 목포 나가는 배가 몇시에 있죠?”
“어... 오늘 파도가 높아서 출항하지 않습니다.”
‘이런... 오랜만에 주말 약속잡고 나가 볼랬더니...’
여지없이 섬에 갇힌 것이다.
며칠 전 크레인선박이 항해하다 섬으로 이어지는 송전선을 끊어버린 일이 있었다. 덕분에 응급복구 될 때까지 여러 날을 전기 없이 살았다. 전기가 없으니 불도 없고, 물도 없고, TV도, 인터넷도 없다. 온 섬에 적막뿐이다.
여기가 바로 섬이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안 되는 걸 억지로 되게 할 수 없는 곳이 섬이다.

작년 여름 홍도에 의료봉사 갔을 때 이장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섬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포기하는 법부터 배워야 해.”
이 말이 이상하리만큼 가슴깊이 새겨졌다. 실제로 문화생활이나 레포츠, 취미생활을 비롯하여 공중보건의사 시절에 꼭 해야 한다는 많은 것들을 섬에 있기 때문에 포기해야 한다. 도시의 삶에 익숙한 청년에게 섬 생활은 고역살이가 아닐 수 없다.
그 후로 마음을 다스리며 포기하는 법을 배우고 주위를 둘러보니 감사할 것들이 생겨났다. 해변에서 조깅하고, 사진기 들고 아름다운 자연을 담아내며, 낚싯대 들고 강태공도 되어볼 수 있는 시간으로 느껴졌다. 한적하게 여유를 만끽하며 삶을 누릴 수 있는 곳이었다.

이런 섬에 나는 2년째 살고 있다. 목포에서 배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비금도에 2년째 살고 있다. 2년째 살고 있다고 하면 다들 의아해 하며 묻는다.
“왜 이동 안하고 섬에 계속 있어?”
당부의 말도 꼭 덧붙인다.
“괜한 객기부리다가 시기 놓쳐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내년엔 꼭 육지로 나와라.”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한다. 나 역시 왜 그런 생각을 안 해봤겠는가. 세상의 중심에 서서 생각해보면 육지로 나가야할 이유밖에 없다. 그러나 그 중심에서 한발만 물러서 바라보면 이곳에 남아야 할 이유가 너무 많다. 한의사가 없어서 무면허시술자나 물리치료사를 찾아가는 섬에서 한의사란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된다.
또 공중보건의사 시절에 공공의료 안에서 한의학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 정책이나 사업을 추진하는 역할을 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일선에서 최선을 다해 봉사하는 것 또한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 성실함으로 시작되는 진료를 맞이하며

조용하고 여유가 넘치는 섬에서 나의 삶은 조금은 바쁘게 돌아간다. 아침에 출근하면 이미 오전시간은 예약이 끝났다. 진료시작 후에 오는 환자들은 오후에 진료받는 것을 당연시 여긴다. 이렇게 하루에 수십명씩 진료를 받고 간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먼저는 환자들을 사랑하고 환자입장이 되어 생각하려고 노력하다보니 성실히 할 수밖에 없다. 도시에 비해 이곳 주민들은 무지한 편에 속한다. 자신의 수준에서 한의학을 바라본다. 한의학을 물리치료와 같은 수준으로 바라본다. 한의사로서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그래서 환자들에게 설명을 자세히 해주면서 국한된 진료영역을 조금씩 확대해 나갔다. 대학병원에서도 안 된다고 포기한 걸 섬마을 보건지소에서 된다며 신기해하는 환자도 있었다. 이렇게 진료영역이 넓어지니 당연히 환자수도 늘게 되었다.

■ 의과 공보의와의 경쟁 심리를 넘어서…

또 다른 이유는 의과 공중보건의사의 성실함이다. 적잖은 수의 한국누가회 출신 의사들이 의료소외지역인 신안군 섬에 와 3년간의 공중보건의사 근무를 성실하게 근무하곤 한다. 그러기에 소극적으로 진료하면 보건지소장 직책까지 가진 의과 공중보건의사에 눌려 주민들에게 인식조차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이유들은 나로 하여금 더욱 성실하게 만든다. 그러나 현실은 슬프게도 한계를 지어준다. 한의과 공중보건의사가 늦게 들어왔다는 이유로 보조인력이 제대로 없다. 보조인력이 없이 하루에 수십명을 진료하는 어이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한의사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곳에선 HUB사업과 연계하여 보건지소에서 독거노인을 비롯하여 거동이 어려운 분들을 선별하여 가정방문진료를 다닌다. 방문대상자들은 사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방문갈 때마다 한숨만 내쉬며 살아서 뭐하겠냐는 환자들에게 침을 놓고 한결같이 긍정의 말로 위로하며 격려해야 한다. 그렇게 수개월 째 방문 진료사업을 하던 어느 날 환자 입에서 한숨이 아니라 미소를 머금고 긍정의 말이 나오는 순간, 그 기분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일흔 넘은 노인이 다섯 살짜리 아이보다 더 예뻐 보이는 순간이다.

■ 작은 노력 모여 한의학 발전되기를

2년차에도 섬에 남기로 결정하면서 개인적으로 사업을 하나 시작했다. 섬 자체가 오지인데 이 섬에서도 더 오지가 존재한다. 보건지소조차 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마을들로 침을 들고 순회 진료를 다니기 시작했다.
80세가 넘은 어르신이 평생에 침을 처음 맞아본다고 말씀하신다. 효과는 기대이상이다. 진료받은 동네사람들이 모여앉아 다음에 언제 오냐고 물으신다. 매주 오면 안 되냐고 난리들이다. 한의사 된 것이 뿌듯하고 감사해지는 순간이다.
이렇게 사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들도 있다. 내가 섬에서 이렇게 한다고 무엇이 변화되고 바뀌어지겠는가.
하지만 나에겐 그런 시각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선배 한의사들의 헌신으로 지금 내가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하고 있음에 감사하며 나 역시 내게 맡겨진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이 작은 노력들이 모여서 훗날에 한의학의 위상이 좀 더 높아지길 기대해 볼 뿐이다.

필자약력 : ▲대구한의대 졸(05) ▲전남 신안군 비금면 보건지소 근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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