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의 젊은 힘, 지역보건의 참 일꾼(3)
상태바
공공의료의 젊은 힘, 지역보건의 참 일꾼(3)
  • 승인 2006.07.28 1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bmaster@http://


노력과 결과를 인정받지 못하는 가슴아픈 현실
3년차 한의사 제치고 1년차 의사가 지소장이 되는 악순환

3. 한의사 보건지소장, 추진에서 포기까지

■ 보건소에서 보건지소로 근무지 이전

보건소에서 1년간 진료 및 보건사업을 수행하던 중 보다 주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자 공보의 2년차 때는 산골에 있는 산내지소로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산내면은 남원 및 전북의 동남쪽 끝 경계지역이며, 산내지소는 지리산 뱀사골 입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남원 시내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 의과는 1년 근무 뒤 시내이동 1순위를 받아 나가는 지역으로, 늘 신규 공중보건의가 1년만 있다가 이동하며 직원도 신규자가 우선적으로 배치되는 남원의 최오지입니다. 근무지를 옮기며 신규로 배치받은 1년차 의과 선생님과 근무를 하게 되었으며, 관례대로 의과 선생님이 자동적으로 보건지소장(이하 ‘지소장’)을 맡았습니다. 보건소에서 공중보건의로서 1년을 경험했던 제가 지소장을 했으면 하는 막연한 바람이 있었지만, 근무지를 옮길 당시에 한의과 진료실을 이동시키고 폐쇄시키는 남원시만의 사정이 있었고 그로 인해 시간이 지연되어 얘기를 꺼낼 형편이 되지는 못했었습니다.

■ 보건지소 내 한의사의 위치

시내에서 면지역으로 옮겨온 뒤 처음에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은 대다수 시골 분들의 인식에 보건지소의 한의사는 그저 ‘침놓는 사람(침쟁이)’에 불과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접수하는 과정을 살펴보니 어디든 아픈 곳이 생기면 우선 의과 진료부터 받았습니다.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도 별 호전이 없으면 그제서야 ‘침을 맞으면 나을까?’라고 물으십니다. 그런 인식 때문인지 제가 갔던 첫 달에는 근골격계 질환을 가진 극히 일부의 환자들만 진료를 받으러 오셨습니다. 그리고 접수를 할 때 “소장님(의사, 지소장)한테 진료를 받아야지 침쟁이(한의사)한테 침을 맞을 수 있냐”고 묻는 분들이 간혹 계시기도 했습니다. 보건지소에서 오랜 시간 의과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고 한의과 진료실이 생긴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그런 편견을 바꾸어 놓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습니다.

■ 한의과 보건지소장의 필요성 인식

한의사로서 1년간 진료실에서 정성껏 진료를 보고 마을에 나가 지역보건사업을 수행하면서 지역 주민들의 한의학에 대한 편견을 바꾸어 나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역 주민 분들과 자주 접촉하면서 제가 지소장이라는 위치가 아님으로 인해서 생기는 장애가 의외로 크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2006년 3월에 의과보조 직원이 신규 배치되면서 1, 2년차 직원들로 채워지게 되어 제가 산내지소에서 최고 경력의 공무원이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소장은 보건지소의 업무를 관장하고 소속직원을 지휘, 감독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지소 직원사이, 지소와 보건소 사이, 지역기관 사이, 직원과 주민사이의 유대와 화합을 이끌어가는 위치에 있습니다. 보건소와 산내지소에서 2년간 경험을 쌓은 제가 직원 및 주민들과 지역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신규로 배치받을 1년차 의과 선생님보다 더 원활하게 지소장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 한의과 보건소장이 되기 위해서

전남 신안군과 경남 통영에서 한의사 지소장이 임명되었다는 신문기사를 접했던 것은 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원활한 추진을 위해 이태종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이하 ‘대공협’) 한의과 대표와 통화를 했고, 당시 신안군 도초면 보건지소장 장호선 선생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신안군의 사례를 들어보니 제일 중요한 것은 임명권을 갖고 있는 ‘보건소장의 의지’였고, 그 다음이 ‘다른 한의과 공중보건의의 협조’였습니다.

보건소장(이하 ‘소장’)님과 지소장 건으로 3월 중순에 면담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행정은 법령과 지침에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나 혼자 결정하긴 어렵다. 알아보겠다”는 지극히 원론적인 답변을 들었습니다. 대공협 한의과를 통해 그와 관련되는 질의·회신 공문을 팩스로 받아 재차(4/21) 면담을 가졌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에 보면 법을 어긴 게 아니라고만 되어 있지, 임용하라고는 되어 있지 않다”면서 “어떤 지침엔가 의과를 먼저 임용해야 된다는 사항이 있다”며 마치 해주고 싶은데 지침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것처럼 얘기했습니다. 이후에 서로 사정이 여의치 않아 소장님과 직접 면담은 하지 못하고 담당 계장 및 직원을 통하여 지속적으로(4/25, 4/28, 5/3) 의견을 전달했으나 보건소 측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신규 공중보건의 배치가 끝났고, 1년차 의과 선생님이 자동적으로 보건지소장을 맡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렇지만 남원시에서는 지소장의 ‘임명’이라는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그 이후에도 계속 담당 직원과 접촉을 했지만 교육가신 과장님이 돌아오시면 얘기해보겠다 했고, 복귀하신 과장님과 통화해 긍정적인 답변을 얻기도 했습니다(5/8).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 보건소에 다시 찾아가니 과장님이 “먼저 의과 대표와 의논해보는 게 좋겠다”고 하여 의과 대표와 대화를 하면서 의문이 풀렸습니다(5/12).

3월 중순 면담 이틀 후 소장님이 의과 대표에게 저와 지소장 건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대표가 의과 선생님들 모임에서 이 건에 대해 얘기를 꺼내자 “일고의 논의할 가치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의과 대표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부분은 인정했으나, 지소장 건이 ‘의사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문제라고 했습니다. 의과 대표는 현재 의과가 보건의료를 주도하고 있고 모든 일이 의과 위주로 돌아가는 상황에서 의료와 행정을 모두 커버할 수 있는 의사가 지소장을 해야 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일을 더 크게 만들어서 분란을 일으키지 말라고 충고했습니다.

■ 보건지소장의 포기와 감회

의과 대표와 대화하면서 현재 소장에게는 한의사 보건지소장을 임명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소장이 의과의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에서 ‘임명권자의 의지’라는 필수 조건이 성립되기 어려우므로 포기를 해야 했습니다. 단순히 머릿수로 계산해 볼 때 한의과(9명)와 치과(11명)가 확실히 연합하여 의과(18명)와 힘 싸움으로 가면 어떻게든 뒤집어 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제가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서로간의 유대와 화합을 보다 잘 이루어 지역 주민을 위해 봉사하고자 시작한 것이었기에, 이전투구를 해서까지 지소장직을 얻어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남원에 처음 왔을 때 시장님과 소장님으로부터 들은 얘기는 “사명감을 갖고 주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달라”였습니다. 전부터 대다수 한의사들이 사명감을 갖고 성심껏 진료와 보건사업을 꾸준히 수행해왔습니다. 그러나 공중보건의 제도에 나중에 편입되어 들어온 한의사라는 이유만으로 지금까지 쌓아온 노력과 결과를 인정받지 못한 채 진료보조인력도 없이 진료를 보는 것이 당연시되고, 경험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지소장직을 맡지 못하는 등의 차별을 받아야 한다는 것에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 고민의 말과 당부

중3 때부터 한의사를 꿈꿨던 저는 여태까지 한 번도 한의사의 길을 선택한 것에 후회를 한 적이 없었지만, 지소장을 포기하기로 결정하면서 옆구리가 쓰라릴 정도의 괴로움과 함께 후회를 처음으로 느껴봤습니다.
올해는 저 하나의 아픔으로 넘어가겠지만, 별다른 문제제기 없이 넘어간다면 이 일은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누군가의 아픔과 상처가 될 것입니다. ‘周易’ 坤괘의 爻辭에 “履霜하면 堅빙이 至하나니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리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에 이르게 되는 것처럼, 작은 관심과 노력들이 하나씩 모이고 다져져 그 아픔이 다시는 후배들에게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필자약력 : ▲대전대 한의대 졸(04) ▲전북 남원시 보건소 근무(04) ▲전북 남원시 산내면보건지소 근무(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