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평양 방문기 - 박재만(경기 의정부 허준한의원)
상태바
북한 평양 방문기 - 박재만(경기 의정부 허준한의원)
  • 승인 2005.10.14 14: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bmaster@http://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유기덕(서울 양천구 유한의원) 이사장 일행은 지난 9월 21~24일 지원내용을 협의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다. 다음은 함께 방북했던 한의사 박재만(경기 의정부 허준한의원) 씨가 평양을 둘러본 소감을 보내온 것이다. <편집자 주>


지난 9월 21일(수)부터 24일(토)까지 나흘간 평양을 방문하였습니다. 이번 방북은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이하 지원본부)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유기덕 이사장을 단장으로 해서 방북하였습니다. 단장을 비롯해 유성기 한의사, 의사 3명, 현우메디칼 대표 등 총 9명이었습니다.

지난 7월말 방북 계획이 연기되면서 못내 아쉬움이 있던 차에 북측 민화협으로부터 갑작스럽게 초청장이 와서 다급하게 평양행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난항을 걷던 6자회담에서 방북 전날 6개국 공동성명이 채택되면서 앞으로 남북관계가 긍정적으로 변해갈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고 평양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비행기로 간다면 서울서 평양까지 20분도 안 걸릴 거리를 중국을 통해 가는게 아쉬웠지만 평양도 표를 끊고 간다는 게 마냥 신기했습니다. 금단의 땅, 평양이 여느 평범한 도시처럼 다가오는 것이 통일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제일 먼저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필자는 따로 직책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청한 연대사업국장으로서 북의 고려의사와 만나 앞으로 한방 관련 지원사업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지 알아보기 위해 동행하게 됐습니다.
이번 평양방문은 북녘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98년부터 북에 의약품 지원사업을 해온 민간단체입니다.

이번 방북은 그동안 보낸 물자들이 제대로 도착했는지, 어떻게 사용되는지 살펴보기 위해 간 것이고 그동안 북 구역병원(남한으로 보면 서울의 구 단위 병원) 현대화사업에서 철도성병원으로 방향 전환이 예상되어 논의할 겸 해서 방북하게 된 것 입니다.
실상 북측 의료기기, 약품 공급 실태는 북 동포들의 생활이 어려운 만큼이나 부족함이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원본부 차원의 의약품 지원이 북 동포들에게는 질병치료의 측면이나 남북간 화해, 협력에 실질적이고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 의심치 않습니다.

철도성병원 지원사업은 북측이 이번 지원본부 단독 방문을 추진할 정도로 북측이나 지원본부 모두 각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남북 협력사업 중 남북 철도 연결 사업이 경의선 개통이라는 상징만큼이나 중요한 의미가 있고 또 지원본부도 철도성이라는 독자적인 국가 부서와 지원사업을 하게 되어 그 위상이 한껏 높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논의한 것은 그동안 대동강구역 병원, 모란봉구역 병원 지원 사업을 일단락하고 앞으로 철도성병원 지원사업에 집중하기로 하였습니다.

구체적 지원사업 내용은 기본 수술장비, 내시경, 초음파 진단기 등 철도성병원에서 필요로 하는 물자들을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또 철도가 가지는 위생방역업무에 맞게 방역 관련한 장비와 물자를 보내는 것에 대해 검토해보기로 하였습니다.
한방관련해서는 북측에 침, 부항기, 뜸을 보내줄 것을 논의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물량, 시기 등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조만간 한의계 차원에서 다량의 침, 부항기, 뜸, 제환기 등의 지원사업을 벌일 계획입니다.

보통강려관, 혁명역사박물관, 만경대 생가, 옥류관, 만경대 학생소년궁전, 5월1일 경기장에서의 아리랑 관람,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 금강굴, 서산대사 암자, 대동강구역 병원, 어린이영양관리연구소, 주체탑, 개선문, 김정숙탁아소…
이번 평양방문에서 철도성병원, 대동강구역 병원 방문 이외에도 일정은 아주 빡빡했지만 이전에 평양하면 떠올렸던 것들은 다 들렀던 것 같습니다. 의례 평양방문하면 들른다고는 하지만 북측 민화협에서 각별히 신경썼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조국광복 60년, 조선노동당 창건 60돌을 맞아 평양시민들은 분주했습니다. 묘향산가는 길에서 보았던 평안남도, 평안북도 들녘에서 올 곡식 작황이 풍년임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북쪽에서 전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수력발전소 건설이 한창이라고 합니다.
6자회담이 일정 진전이 있으면서 6자회담 미국측 대표였던 크리스토퍼 미 국무부 차관보가 조만간 입북할 것임을 비쳤습니다. 한반도에 평화체계를 세우기 위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여집니다. 만찬에서 북측 한 관계자가 그동안 어려웠던 식량난, 전력난이 일정정도 해소되면서 3년내 한반도에 획기적인 조치들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90년대 초반 황석영 작가가 방북한 소감을 담은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책이 북 사회을 새롭게 보는 차원에서 많이 읽혔었습니다. 반공, 반북 이데올로기가 만연했던 당시 상황에서는 평범함을 부각시키고 싶어 그런 제목을 달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번 방북 소감을 제가 책을 낸다면 저는 최근 영화로 상영되고 있는 ‘어떤 나라’가 아니라 ‘사람의 나라’라는 제목을 달고 싶습니다.

북은 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소련, 동구권이 몰락해가면서 경제봉쇄를 타개해 가기엔 심각한 물자 부족으로 허덕였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건물과 설비들이 그 시절 이후 개보수되지 못한 채 지금에 이르고 있었습니다.
눈먼 장님이 볼 수 없기 때문에 귀가 발달되듯 북 동포들은 부족한 물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당장 물자를 더 생산하는 것만큼이나 다른 능력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람의 능력’이었습니다. 의약품이 부족하다 보니 의료인들의 정성을 더 키우고, 사회 전반적인 물자 부족을 사람들의 의지와 재능으로 채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5월 1일 경기장에서의 아리랑 공연은 그 결정체였습니다. 어떻게 인간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1시간 30분 동안 2만명의 그 화려한 카드섹션 중 단 한번의 오차를 보았을 뿐이었습니다. 고도로 발달된 집단주의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북 동포들은 개개인의 능력을 키우기보다 집단의 힘을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기보다 집단이라는 사람의 능력이 발달되고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내 조국 한 쪽의 모습이었습니다.

옥류관 평양냉면에 조미료가 없듯 북 사람들은 마치 조미료가 가미되지 않은 사람 같았습니다. 딱딱하면서도 차창 너머 우리들에게 손 흔들어 주는 소박한 북녘 동포들의 눈빛이 지금도 선합니다. 북녘 동포들이 물자의 허덕임에서 어서 빨리 벗어나야 남과 북이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