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60, 창간 16주년 특집] 청산돼야 할 의료의 불평등(2)
상태바
[광복 60, 창간 16주년 특집] 청산돼야 할 의료의 불평등(2)
  • 승인 2005.08.12 15: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bmaster@http://


사용하지 말라는 법조항은 없는데…
최방섭 한의협 이사 “법률의 적용 잘못 시정부터”
이종수 교수 “한의학 진단 근거 확립이 우선”


□ 꽉 막힌 현대의료장비 사용 □

한의사가 현대의료장비를 사용한다면 법률적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가?
결론적으로 위법의 소지가 있어 고발의 대상이 되며 최악의 경우에는 처벌까지도 감수해야 한다. 현재는 연구용으로 사용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물론 법률적으로 모호한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의료법 제2조에는 ‘韓醫師는 韓方醫療와 韓方保健指導에 종사함을 任務로 한다’고 돼 있고 25조에는 ‘의료인도 면허된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 지점에서 ‘한방의료’의 범위가 어디까지냐 하는 문제에 부딪힌다.

이렇듯 모호한 가운데 한의사는 자신의 치료행위의 진단근거를 객관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望·問·聞·切의 연장선상에서 전통적으로 양의사의 영역처럼 비춰지던 현대 진단장비를 사용하고, 양의사는 한의사의 고유영역이라고 일컬어지던 침과 한약제제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한의계는 의료법과 의료기사법이 한의사의 현대진단기기의 사용을 실질적으로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한다. CT는 물론 골절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X-Ray도 사용하지 못하고, 초음파기기와 내시경, 임상병리검사 장비를 사용하지 못해 진단의 정확성을 확보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한다.

■ 법률 개정론과 교육선행론 혼재

한의협의 최방섭 법제이사는 “모법에는 한방의료행위라 하여 애매모호하게 규정함으로써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이 보이지만 하위법과 유권해석에서는 사용할 수 없게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령 의료법상으로 한의사에게 상해진단서를 발급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했으면서도 상해진단서를 끊기 위한 후속조치인 진단기기 사용에 대해서는 하위법에서 보장하고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를 테면 하위법이 상위법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현상을 한 마디로 ‘법률 자체의 권리침해보다 법률의 적용이 잘못되고 있다’고 규정했다.

이에 대해 이종수(경희대한의대) 교수는 하위법의 어떤 조항이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막고 있느냐고 물으면서 반론을 펼쳤다. 그는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제한하는 법률적 근거는 의료법이나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거나 하위법이 개정된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주장, 기존 한의계의 상식과 커다란 차이를 보였다.

이 교수에 따르면 “(한의사의 법적 권리는) 법률과 각 법률의 시행규칙, 각 기관의 고시, 유권해석 및 위임사항 등을 입법취지에 따라 상호연계적으로 적용하고 해석할 때 정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의 해결책이 마련될 수 있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그가 말하는 한의사관련 법률은 의료법, 약사법, 건강보험법, 산업재해보상보장보험법, 손해배상보장보험법, 마약법, 의료기기법,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 화장품법, 건강식품법 등이다.

이는 곧 의료법이나 의료기사법 등 몇 개 법률의 몇 조항이 개정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실증이다. 가령 ‘의료의 적정성을 기하여 국민의 건강을 보호증진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한 의료법 제1조가 환자유인, 치료기간 연장, 투약과다, 시술과다 등의 과잉진료 여부를 평가하는 근거가 됨을 고려할 때 한의사의 진단기기 사용이 이런 취지에 부응하는지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한의사는 한방의료와 한방보건지도업무에 종사한다’는 의료법 제2조에 이르면 ‘한방의료’가 과연 무엇이냐는 문제에 이르게 된다고 말한다. 이종수 교수는 “한방의료란 한의학이론에 기초를 두고 국가고시를 통해 검증된 내용의, 한의사가 시행하는 안전성 유효성이 확보된 의료행위를 규정한 것이므로 한의학의 정의가 무엇이냐에 따라 범위가 규정된다”고 주장한다.

더우기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의료기사는 ‘진료 또는 의화학적 검사에 종사하는 자’를 의료기사(제1조)라 하여 의료기사의 종류를 임상병리사·방사선사·물리치료사·작업치료사·치과기공사 및 치과위생사로 한정하고 있어 한의사는 이들 기사를 지도할 수 없다. 다만 한방이학요법, 추나요법, 침구요법, 한방검사, 한방진찰, 변증행위를 한방의료행위로 인정받고 있다.

따라서 한의사가 보조인력의 도움을 받으려면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에 한의사를 삽입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한방물리요법관련 학과를 졸업한 한방요법사를 새로운 의료기사로 신설할 때 가능하며, 방사선사나 임상병리사를 활용하고자 할 경우에는 방사선검사나 임상병리검사가 한방의료행위임을 먼저 교육하고 국가고시를 통해 검증받아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할 때 가능하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최방섭 이사는 “방사선학 실습 1학점만 빠질 뿐 한의대에서 양방의대와 똑같이 방사선학 기초를 1학점 배우고, 또 보수교육에서도 배우는데 한의사만 차별하는 것은 권리 침해 아니냐”고 반문, 법률 개선 차원에서 접근을 시도했다. 물론 최 이사는 한의대 교육의 개선도 병행돼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했지만 법률 개선에 무게를 둔다는 느낌을 주어 향후 움직임이 주목된다.

■ “진단교육과 국시 반영이 급선무”

의료기기 사용과 관련해서 한의계 내에는 교육 후 국가고시에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과 법률적 개선론, 혹은 양자의 동시병행론이 나오는 가운데 여전히 학문적 백그라운드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의료가 진단과 진단의 결과인 치료로 나뉜다면 후자의 비중이 강한 한의학은 진단분야에 보다 많은 관심과 연구,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주장의 핵심요지다.

검사를 위한 진단교육의 강화가 나오는 배경이다. 관계전문가들은 또한 같은 진단교육이라 하더라도 한의학의 정체성이 깃든 이론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X-Ray로 골절만 진단할 것이 아니라 혈허를 진단할 수 있는 좌표를 만드는 등 부분적인 목적에 국한하기보다 보편적인 목적에 부합하는 진단기준을 수립할 때 의학계와 시민단체, 정부, 입법부 등으로부터 한의사의 진단기기로 인정받을 수 있고 한의협이 추진하는 법률 개정작업도 힘을 받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와 같이 한의계 내부의 다양한 논의에 비추어 볼 때 100여 년 동안 현대의료장비의 활용에서 차별받고 소외를 겪은 한의학이 최종적으로 법적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한의협과 한의대, 학회 등 한의계 내부의 의견조율이 선행돼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계속>

김승진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