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1095> - 『惠庵遺書』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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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1095> - 『惠庵遺書』②
  • 승인 2024.03.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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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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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인삼부터 석유까지, 조선명품 약재
◇『혜암유서』

국운이 날로 기울어가던 조선조 말엽으로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시기, 오랫동안 三醫司를 주축으로 한 조선왕조 의료체계의 근간이 세월이 갈수록 점차 유명무실해져 갔다. 이로 말미암아 의학의 주류는 관주도하에 있던 궁정의료체제로부터 민간의약으로 빠르게 이행되었으며, 이는 곧 황도연, 황필수 부자가 이룩한 『방약합편』체계가 민간의료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음을 뜻한다.

전호에서 살펴보았던 잡병제강과 약성강령, 수증용약례, 그리고 諸虛用藥例에 이어 각종 제제편이 등장한다. 제제편에는 곧, 汗劑, 吐劑, 下劑, 그리고 七方과 十劑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7방은 병에 원근이 있고 증에 중외가 있으며, 치법에 경중이 있어, 이에 따라 대방, 소방, 완방, 급방, 기방, 우방, 복방으로 나뉜다.

또 10제는 약제의 효용과 그 특성에 따라 宣劑, 通劑, 補劑, 洩劑, 輕劑, 重劑, 滑劑, 澁劑, 燥劑, 潤劑 등 10가지로 구분하는데, 방제용약에 있어서 기본적인 방향성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독자들은 학창시절 그저 알 듯 말 듯 한 내용을 시험을 치르고자 무조건 외우느라 곤욕을 치러야했던 추억이 떠오를 것이다.

그 다음 六陳良藥이 등장하는데, 낭독, 지실, 진피, 반하, 마황, 오수유 등 오래 묵혀 두었다가 사용하는 약재 6종을 말한다. 하지만 이밖에도 형개, 향유, 지각 같은 약재도 역시 신선품보다는 상당 기간 묵힌 약재를 써야 적절한 약효를 낸다고 알려져 있다. 아마도 약재마다 각기 오래 묵혀 써야 하는 이유가 다르겠지만, 무조건 陳腐한 약재를 써야 좋다는 의미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짧지만 매우 요긴한 구급방(방약합편에서는 구급법)을 정리해 두었는데, 중악, 시궐, 귀엄, 울모졸사, 자액사, 익수사, 동사, 아사, 압사, 입정총졸사, 뇌진사, 사입칠규, 제충입이, 오탄금은, 인훈욕사, 승선현훈, 시착구중 등 17종에 대한 것이다.

위와 같은 위급한 병증들은 지금도 여전히 응급질환에 해당하거나 구급조처를 펼쳐야 하는 것도 있지만 이제는 어지간해서는 마주하기 어려운 증상이거나 병증으로 취급하기 애매한 것까지도 모두 포함되어 있다. 오늘날 구급방이 필요한 병증의 범주와 대처법을 새로운 각도에서 재검토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 救飢捷方(방약합편에서는 구기첩법)이 이어지는데, 흉년에 기근이 들거나 전쟁이나 난리를 피해 피난길에 오른 백성들에게 굶주림을 면하고 생명을 보전할 방편을 제시한 것이다. 여기에는 송엽이나 측백엽, 백복령, 백면 같은 약식재료 뿐 만 아니라 타액을 모아 삼키는 嚥津法과 치아를 부딪치는 叩齒法까지 동원되는데, 아마도 이것들은 단식과 수양법에서 허기를 이겨내기 위해 쓰던 방법을 기아로 인해 죽을 지경에 이른 경우에 응용한 것이다.

지난 호에서도 지적했지만 사실 이것들은 『의방활투』에서는 없던 내용들로 이후 황필수가『방약합편』을 펴내면서 추가된 내용이다. 그렇지만 이 역시 황도연의 원작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하기에 『혜암유서』란 서명으로 수합해 놓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 다음으로는 속칭 ‘방약합편 약성가’라 부르는 약성부가 등장하는데, 山草, 芳草, 濕草, 毒草, 蔓草 등으로 분류한 것이 『방약합편』에 수록된 내용과 비교해 한가지이며 수록종수 또한 동일하다. 대개 이것이 『본초강목』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여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약성이나 기재내용 못지않게 편제와 배열방식, 한글 향약명에도 역시 창작성을 부여해야할 필요가 있다. 인삼이 첫머리에 등장하는 것부터가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이다. 각종 제조법 역시 고유경험과 전통이 반영된 것들이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안상우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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