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영의 제주한 이야기](17) 한의원 운영축의 하나 - 집단지성의 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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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영의 제주한 이야기](17) 한의원 운영축의 하나 - 집단지성의 힘 (4)
  • 승인 2024.02.23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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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영

남지영

mjmedi@mjmedi.com


“3평 원장실“이라는 단어는 섬세한 치료자이며 분주한 사장님인 개원의의 고독한 입장을 함축적으로 잘 대변해 주고 있다.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위치는 상당히 외롭고 버겁다. 특히나 진료와 운영을 함께 해야 하는 개원의의 생활은 더더욱 그러하다.

수많은 개원의들이 "진료만 하면 좋겠다"라고 외친다. 3평 원장실 기지에 갇혀 있다가 AT콜이 오면 치료실, 컴플환자가 발생하면 접수실, 전구가 나갔다고 하면 사다리타고 천정으로 출동했다 다시 기지로 귀환하는 분주한 일상이다. 환자만 보면 참 좋으련만 침 주문부터 화장실 수리까지 원장 손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 그리고 보통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중 2/3 가량의 시간을 한의원에서 보내게 된다. 좁고 외로운 공간이지만 "3평 원장실"이라는 나만의 공간이 참 소중하고,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욱더 가깝게 느껴지게 될 수 밖에 없다. 봉직의는 물론 특히 개원의들에게 동료들과의 동지애가 각별한 이유이다.

나는 여러 한의원이 모여 이름을 똑같이 쓰는 한의원을 하고 있다. 이름만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치료방향, 직원채용 및 근무환경 등을 비슷하게 하고 있는 일종의 브랜드 공유이다. 2007년 5개 지점이 공동으로 출발한 이후 현재는 지점이 전국에 11개가 있고 의사결정에 있어 각 지점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본점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구심점 역할을 하며 공동마케팅을 진행하는 경우가 아니면 공동브랜딩이 오래 가는 경우가 드물다고 하는데 우리는 벌써 17년이 된 공동체이며 꾸준히 지점갯수가 증가하고 있다. 2007년 당시 이미 개원연차가 좀 되신 원장님들도 한의원 이름을 바꾸며 함께 시작하신 관계로 역사가 20년 이상 된 한의원도 포함이 되어 있고 오픈한 지 1-2년 남짓인 지점들도 있다. 함께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나만의 관점에 매몰되지 않고 다양한 시각에서 주제를 바라볼 수 있어 균형감각을 유지하고 세계관을 넓혀나는데 도움이 된다.

자그마한 한의원일지언정 하나의 사업체이기 때문에 노무, 세무, 의무, 환경, 홍보, 기술 등의 다양한 업무분야가 있고 매일매일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그것들을 해결하는 것이 일상이다. 개원의는 모든 것을 직접 처리해야 한다. 사장이라면 당연히 내 회사의 모든 것을 잘해야겠지만 어떤 회사도 만능인 사장은 없다. 이럴 때 공동체가 정말 커다란 힘이 된다. 고민이 되고 막막할 때 물으면 누군가가 답을 해 주고 해결점에 대한 방향을 보여주고 매우 디테일한 대책까지 말해줄 때가 많다. 그리고 누군가가 다른 부분을 고민할 때 나 역시 그런 도움을 줄 수 있고, 여럿이 그런 문제해결과정을 함께 주시하고 경청하다보니 좋은 간접경험도 이루어져 혼자서는 쌓을 수 없는 경험치와 연륜들이 쌓이는 것 같다.

그리고 나에게는 브랜드공동체 이외에 한의사공동체그룹이 4-5개 정도 더 있는데, 경제와 학술분야를 집중 주제로 하여 의견교환을 하고 하루 종일 메신저로 대화와 토론을 나누고 있는 활발한 모임이다. 누군가 “이 부분 근거자료 있을까요?”하고 물으면 순식간에 해당 논문들이 올라오기도 하고 그에 관련된 확장분야의 이야기들이 덧붙여지기도 하며, 경제적 자유를 이룬 사람이 자신의 경험담과 실현방법들을 차근차근 그리고 꾸준히 알려주기도 한다.

이런 모든 모임들이 최소 5년, 10년, 길게는 20년 가까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비결은 “가치공유”라고 생각한다. 경영, 학술, 경제, 자기관리 등 어떤 분야이든 그 주제 안에서 방향성은 다채로운 색깔로 펼쳐질 수 있기 때문에 한 주제로 모였다고 해서 모두 편안한 대화를 나누거나 생산적인 내용을 쉽게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지향하는 가치가 동일한 것이 매우 중요한데 필자의 경우 지향점이 비슷한 모임을 여러 분야에서 만나게 되어 참 다행이다.

가치관을 공유하는 공동체의 도움이 있다면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 내가 아직 경험하지 않은 부분, 내가 경험하지 않고 싶은 것에 대한 주의사항, 내가 잘 못하는 부분인데 꼭 해야 하는 것들 등을 배우고 도전할 수 있게 된다. 한편으로는 내가 할 수 있는 부분, 내가 했던 부분, 내가 잘 하는 부분, 내가 잘 아는 부분, 내가 실패했던 이유, 내가 성공했던 이유들에 대해 누군가에게 알려주기 위해 정리를 하면서 얻는 것도 꽤 많다. 이것이 여러 사람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함께 하는 “집단지성의 힘”이 아닐까 한다. 특히나 좁은 공간에 갇혀 매일 비슷한 일상을 보내며 내적세계가 좁아지기 쉬운 직업적 특성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긍정적이며 현실적인 가치관을 가진 다양한 다른 사람들과 네트워킹을 하는 것이 더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우리 한의사들이 각 분야에서 뭉쳐야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남지영 / 경희미르애한의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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