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재의 임상8체질] 새로운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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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의 임상8체질] 새로운 주제
  • 승인 2024.01.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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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

이강재

mjmedi@mjmedi.com


속담과 체질_2

한국 출판역사에서 가장 큰 히트작이라고 할 수 있는 김홍신의 인간시장1)을 제작했던 행림서원의 이갑섭 사장이 내게 소설을 써보라고 권했던 적이 있다. 아마도 2017년이나 18년쯤이었을 것이다. 무엇이든지 쓰기만 하면 당신께서 출판하겠다고 하였다. 글쟁이로서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구라빨은 없다. 그러니 설사 소설을 쓴다고 해도 벽초 홍명희나 황석영2) 같은 작가는 결코 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이갑섭 사장의 응원을 받고 단편 하나 정도는 써보아도 좋겠다는 마음을 먹기는 했다. 만약에 소설을 쓰게 된다면 SF를 쓰고 싶다.

1991년에 좀 더 긴 군 생활을 마치고 경동시장3)에 들어갔다. 그 시대 한의업계의 오래된 관행4)이기도 했는데, 제기동에 있는 경동시장이나 영등포역 앞, 종로5가 일대의 한의원에는 면허번호가 비교적 젊은 원장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 일하는 원장들보다 훨씬 많은 수의 사장들이 있었다. 그들은 某某한의원 사장이라는 명함5)을 박아 다니면서 각계각층으로 다방면에서 활동했다.

 

추자도 젓갈

추자도 젓갈은 유명하다. 이경O과 백OO 두 사람은 본디 한 팀은 아니었다. 동종업계에 종사하면서 경동시장을 중심으로 오다가다 알게 된 사이였다. 1980년대의 어느날이다. 지방으로 다니다가 목포에서 만나게 되었다. 추자도 출신인 에게 젓갈을 사러 가자고 제안했다. 는 사근사근한 사람이고 은 풍채가 크고 근엄한 타입이다. 섬에 갔는데 으로서는 영 따분하기도 해서, 에게 젓갈 값이라도 벌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던졌다.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는 금방 알아먹었다. 형편이 좋아 보이는 마을을 골라 이장 집을 물어서 찾아갔다.

은 뒤편에 무게를 잡고 서 있고, 가 나섰다. ‘저기 저와 함께 온 분이 서울에 있는 유명한 대학병원의 교수님이신데, 전국에서 올라오는 환자를 보시느라 바쁘신 중에 잠시 짬을 내어 낚시도 할 겸 휴가를 오셨다. 어제 점심 때 식당에서 식사를 하시다가, 이곳에 의료시설이 부족해서 병 가진 분들의 고통이 심하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아주 안타까워 하셨다. 그러더니 추자도가 고향인 내게 이장 댁에 찾아가서, 환자들을 모아 주시면 봐주시겠다고 알리라고 하셨다.’ 그러고는 덧붙인다. ‘박사님 부친께서 고명한 한의사시라 부친께 배우셔서 보약 처방도 아주 잘 하신다.’ 마을 이장 집에는 마이크와 확성기가 있다.

시종일관 은 무게만 잡고 있으면 된다. 저녁에 모인 동네 사람들을 구워삶고 어르는 건 의 몫이다. 물론 나중에 이장에게는 섭섭하지 않게 챙겨 준다. 다음날 어판장에 들러 깡통에 든 젓갈을 잔뜩 사서 의 차 트렁크를 채웠다. 서울에 가지고 가면 동업자들에게 인심 쓰듯이 하면서 이문을 좀 얹어서 팔 수도 있다. 일석이조다. 근데 어판장에서 만난 의 지인이 알리기를, 지난밤에 파출소장이 박사님을 좀 뵙고 싶다며 어디에 묵는지 찾았다는 것이다. 두 사람으로서는 영문을 모르는 일인데, 그간의 경험을 통해서 직감적으로 이건 막배가 끊기기 전에 섬에서 탈출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느꼈다. 혹여 섬에 갇히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서둘러 여객선터미널로 차를 몰았다.

의료기관이 없는 시골로 다니면서 월부 한약을 파는 한약외판원6)을 흔히 보따리장수라고 불렀다. 그들이 파는 한약은 경옥고이거나, 십전대보환이나 자양강장환 등으로 불리는 환약이었다. 그들이 끊어온 월부 전표를 한꺼번에 할인하여 인수해서, 농수산물 수확기에 시골로 다니면서 수금을 전담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외판과 수금 일에도 종사한 적이 있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보따리장수 출신으로 1991년에는 석관동에서 건강원을 하던 가 잘 알고 지냈던 걸 보면 혹시 그럴지도 모른다.

 

새로운 주제

200911월에 출판된 학습 8체질의학을 대신할 책을 만들기 위해서, 8체질의학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7)를 주제로 20191010일자 1207를 시작으로 글을 써 왔다. 도중에 다른 쪽으로 관심이 쏠려서 애초의 생각보다는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새 책8)이 드디어 나온다. 그래서 이 주제에 대한 글은 지난 1409로 끝맺었다. 20182월부터 한 달에 두 번 글을 쓰고 있는데, 이번에는 새로운 주제로 두 가지를 정했다. 하나는 8체질의학 질문과 대답이고 다른 하나는 속담과 체질이다. 속담에 대한 맛보기로 1407에 글을 이미 실었다. 속담은 문학, 심리, 정치, 경제, 예술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연구되어 온 주제이다. 그런데 속담과 체질을 묶어서 과제로 삼은 것은 별로 보지 못했다. 아마도 본격적인 글쓰기로도 처음이 아닌가 싶다. 체질론과 체질의학으로 흘러온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될 것이다. 이 두 주제를 번갈아 한 달에 한 편씩 쓸 생각이다.

사실 속담과 체질을 함께 궁리해보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있었는데9), 글 쓸 마음을 먹고 나니 먼저 사전을 구해야겠기에 책을 마련했다. 한국의 속담 대사전10)이다. 2006년판이다. 책을 만든 분들께는 죄송스러운 일이지만, 중고서점의 서가에 하릴없이 누워 있던 녀석에게 제 구실을 하도록 구원한 셈이기도 하니, 가격도 착하고 아주 뿌듯했다. 이 큰사전에 정리한 속담이 5만 건 정도 된다고 하는데, 나는 이 중에서 8체질론과 어울리는 속담을 각각 10개씩 80개를 찾아내는 것을 우선의 목표로 삼았다.

이번에 쓸 글감은 비교적 쉽게 정해졌다. 저자인 정종진 선생이 사전에서 함께 소개한 한국의 속담 용례사전11) 서문에, ‘속담의 용례를 작품 속에서 찾아내지 못한 것이 있어 안타깝다.’고 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돌팔이 못 고치는 병이 없다.’라고 한다. 의료와 관련된 속담이기도 해서 이것을 골랐다.

 

돌팔이 못 고치는 병이 없다

정종진 선생은 이 속담을 어설픈 재능으로 모든 걸 하려고 덤비는 사람을 비꼬는 말이라고 풀었다.12) 용례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이시형 씨가 쓴 배짱으로 삽시다속의 한 부분이 인용되어 있다. “의사도 시원찮은 의사가 자신 있는 척한다. 돌팔이치고 만병통치 못하는 녀석 없다. 신문광고에 책임치료운운하는 의사치고 똑똑한 사람 없다.” 시원찮은 동료들을 향한 일갈이긴 한데,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속담도 있고, 남들에게 훌륭한 일 하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은 예외라 여기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13)

 

돌팔이 의원 입으로 먹고 산다

이 속담은 재능이 없는 사람일수록 교묘한 말로 사람을 현혹시켜 먹고 산다는 뜻으로 빗대는 말인데, 이시형 씨에게 욕먹은 부류들일 것이다.

사전의 이 항목에는 박경리의 토지한 대목이 인용되어 있다. “박 선생도 수가 늘었소이다.” “돌팔이 의원, 입으로 먹고 산다는 얘기도 못 들으셨소?” “아닌게 아니라 서울서 온 내 처제가 야부이샤라 하긴 하더구먼.”

 

돌팔이

돌팔이도 나오고 일본말인 야부이샤도 나왔다. 사실 1982년에 한의과대학생이 되기 전에 내가 돌팔이라는 말을 쓴 적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의업계의 일원이 된 후에는 아주 익숙한 말이 되었다. 돌팔이는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보면, “떠돌아다니며 기술, 물건 따위를 팔며 사는 사람이라고 먼저 나온다. ‘돌다팔이의 합성으로 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 사람의 생계 활동이다. 그 다음에 제대로 된 자격이나 실력이 없이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전문적인 일을 하려면 공인된 자격이나 면허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태로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또한 전문가이기는 한데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실력이 없는 사람을 속되게 욕하는 말이기도 하다고 되어 있다. 한의사인 처지에서 누군가를 돌팔이라고 지칭하는 경우라면, 그가 한의사면허가 없는데 한의사만이 할 수 있는 업무영역 속에서 활동하는 사람일 것이다.

 

요령의

예전의 기록을 보면 령의(鈴醫) 또는 요령의(搖鈴醫), 주방의(走方醫)라 불리던 치료사들이 있었다. 몸에 약 상자를 지니고, 손에 방울()을 쥐고 흔들면서, 경향 각지를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이렇게 다니면서 다양한 병을 다루다 보면 풍부한 치료경험을 쌓을 수도 있었다. 령의는 돌팔이 의사인 셈인데, 바이두(百度, baidu)에서는 그다지 나쁜 의미로 해설하지는 않았다.14)

 

야부이(藪醫)

일본에서는, 처음에는 야부(野巫, やぶ)라고 썼다.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치료법을 사용하는 시골의사를 말한다. 그러다 시골구석의 의사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藪醫(야부이)로 바꾸었다고 한다.15) 토지에 나온 것은 야부이샤(藪醫師)이다.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각주

1) 1976년에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후 단편집을 낸 적은 있으나 무명이었던 작가 김홍신은, 김종찬이 창립한 평민사에서 주간을 맡고 있었다. 소설 『인간시장』은, 1980년 12월에 『주간한국』을 통해서 〈22살의 자서전〉이란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그런 후에 『인간시장』은 1981년 9월부터 행림출판사에서 나왔고 2년 뒤에는 ‘밀리언셀러’라는 말을 유행시켰다. 『인간시장』은 정비석의 『자유부인』과 함께 20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라는 평가를 받는다.

2) 원재훈. 이들이 ‘조선 3대 구라’, 『조선일보』 2008. 9. 13. 

3) 경동시장 건너편에 형성되어 있던 서울약령시장을 한의약업계에서는 그저 경동시장이라고 불렀다. 

4) 초보 한의사들이 본격적으로 개업하기 전에 일정 기간 머무는, 비유로서는 명확하지 않지만 메이저리그 밑의 마이너리그 같은 곳이었다.

5) 자기 이름 앞에 ‘원장’이라고 새기는 배짱 있는 사람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는 편이 훨씬 잘 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화를 받아주는 곳에서 원장이라고 해주면 되지 않는가. 

6) 뚝심 경영인 광동제약 최수부 회장, 『신동아』 2004. 12.

7) 초판 1쇄로 2천부를 발행하였으나 절판된 상태이다.

8) 『8체질의학 Eight-Constitution Medicine』 행림서원 / 46배판 반양장 404쪽

9) 이강재, 『학습 8체질의학』 행림서원 2009. 11. 20. p.356~360

10) 정종진, 『한국의 속담 대사전』 태학사 2006. 10. 30. 

11) 정종진, 『한국의 속담 용례사전』 태학사 1993.

12) 정종진, 『한국의 속담 대사전』 태학사 2006. 10. 30. p.578

13) 물론 이시형 박사가 그렇다고 콕 집어 말하는 건 아니다.

14)百度百科 https://baike.baidu.com/ 
   古时行医之时,郎中身负药箱、手摇串铃,成年累月地于村市街巷往来奔走,为百姓除灾治病,他们有着丰富的治疗经验。

15) 진해에 있는 박병희 원장이 검색해서 알려준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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