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1087> - 『神仙太乙紫金丹』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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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1087> - 『神仙太乙紫金丹』① 
  • 승인 2024.01.0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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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answer@kiom.re.kr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실증의학의 홀씨를 뿌린 선비

 갑진년 아침이 밝았다. 매년 새해를 맞이하기에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데도, 굳이 새해 첫날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재생 혹은 환생을 희구하는 인간의 염원이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해서 고서더미 속 좀 더 신선한 책을 찾다 보니 오래 동안 미뤄왔던 아니 아껴왔단 말이 어울릴 이 책을 손에 골라들게 되었다.

 ◇ 『신선태을자금단』
 ◇ 『신선태을자금단』

  원작자는 연산조에 무오사화로 희생된 慵齋 李宗準(?~1499)이 다. 그는 김종직의 문인으로 성종때 등과하여 三司를 두루 거쳤으며, 의성현령시 경상도지도를 제작하였고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멸문지화를 당했기에 그의 저작도 살아남기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다행이 『산림경제』한 구석에 실려 보전할 수 있었다.

  한편 원저자인 이종준에 대해서는 아주 오래 전이지만 이 자리를 통해 간략하게 소개한 바가 있으니 참조해 볼 필요가 있다.(24회 史禍에 스러진 실증의학자, 이종준 - 『神仙太乙紫金丹方』, 2000.2.14일자), 또 이 책을 조선전기 향약재의 개발이란 측면에서 부감한 내용의 글이 실린 적이 있으니 살펴볼 만하다.(479회 이산저산 꽃이 피니, 향약초의 봄 - 『紫金丹方』, 2011.3.10일자)

 『동의보감』에서는 전문을 직접 인용하지 않고 ‘태을자금단’(일명 紫金錠, 혹은 萬病解毒丹)이란 이름으로 내용 중 일부만을 간추려 수재하였다. 한때 일본에 전해진 필사전본과 내의원 간행 『납약증치방』, 『제중신편』, 『의종손익』등에 인용된 것 이외에 인본은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다가 1991년 성암고서박물관에 간본이 수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학계에 보고되었으며, 관련 학회지를 통해 영인되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전문은 7~8쪽에 불과한 불분권 1책의 소책자로 국내 유일본은 목판본이다. 책의 말미에 1497년(연산군 3) 단오(端陽節)에 저자 스스로 그 전말을 적고 그림을 그려 간행한다는 취지의 발문을 적었다. 사화에 얽매여 목숨을 잃기 불과 2년 전인 시점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단지 그가 사대부로서 의서를 발간한 사실보다는 다음의 몇 가지 측면에서 훨씬 더 중차대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

  첫째, 산자고를 비롯한 속수자, 오배자, 홍아대극 등 토산약재에 대한 세밀한 생태 관찰, 그리고 약성 및 채취에 관한 분석과 변위에 관한 고증이다. 둘째, 주재료인 산자고에 대해 長苗, 開花, 殘花, 結子, 葉枯 등 원식물의 주기별 변화에 따른 성상과 특징을 그림으로 그려서 남긴 것이 다른 책에서 볼 수 없는 특이점이다.

  또 셋째, 여기 등장하는 개별 약재에 대한 채취간정법과 자금단을 합제하는 제약법에 대한 실천적 경험을 기재했다는 점이다. 넷째, 다양한 적응증과 사용방법, 그리고 자신이 직접 목도한 경험을 의안으로 세밀하게 기록함으로써 훗날 오용에 대비한 점이다.

  특히 이 책에는 단 한 가지 방제(자금단)에 대해서만 치밀하게 연구한 결과를 담고 있다는 것 또한 여느 책에서 찾아볼 수 없는 눈에 띄는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입론에 있어서는 대부분 역대 명현의 고금의서에 근거하였으나, 이와 별개로 책의 말미에 저자 자신이 스스로 지득하고 경험한 내용을 ‘今按’이라고 구분하여 붙여놓았기에 매우 독창적이며, 실질적인 내용에 기반하였다.

  따라서 이 책에는 500여 년 전 시대를 앞선 저자의 실증적인 탐구정신과 정밀하게 관찰한 의학지식이 담겨져 있다. 나아가 조선 전기 사대부 지식계층의 중심에 속해 있던 저자가 권위의식과 신분관념에서 벗어나 지식인으로서 실용적인 의약지식을 탐구하고 몸소 스스로 경험하는 실천적인 삶을 살았던 실증자료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의학사 연구에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안상우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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