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강솔의 도서비평] 역사속에서 연결되는 우리 모두의 해방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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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강솔의 도서비평] 역사속에서 연결되는 우리 모두의 해방일지
  • 승인 2024.01.05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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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솔

강솔

mjmedi@mjmedi.com


도서비평┃아버지의 해방일지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작년부터 종종 읽어보라고 들었다. 올해 초 친구가 생일때까지 읽지 말고 기다리라고 말했다. 생일에 이 책이 왔고 요즘의 처참한 독서력으로도 순식간에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웃으면서 울었는데.

정지아 지음, 창비 펴냄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는 육이오때 좌익이었고 집 뒤의 짚더미같은데 숨어 계시다가 잡혀가셨다 들었다. 인천의 감옥에 있다가, 하필이면 인천 감옥 안에서 아파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 때 할아버지와 함께 감옥에 갔다가, 할아버지의 유골을 품고 집으로 돌아왔던 동네 아재들은 나의 증조할머니께 딸만 줄줄 낳고 맨 마지막에 낳았던 독자 아들의 마지막을, 핏덩이 손자 둘만 남기고 떠난 아들의 유골을(그때 작은 아버지는 할머니 뱃속에 있어서 유복자였다) 전해주며 그랬다고 한다.

보리밭에다 유골함을 놔 뒀는디 이것이 없어져부렀어. 아니 어디 갔냐 어디 갔냐 너 어매 기다리신다 집에 가자 집에 가자 했더니 유골함이 떡 나타나는거 아니어요?

나는 어렸을 때도 그 얘기를 들으며 코웃음쳤다. 이 아재들이 술마시고 취한김에 어디다 유골함 놔두고 밭이랑을 못 찾고 해매다가 나중에 찾았겄지..... 그러고서는 울 증조할매한테 저런 신파를 지껄이는구나....하고. 열살쯤 되었을까. 어린 애기였는데도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혀를 찼다. 그 덕분에 울 아버지는 연좌제에 걸려서 가고 싶었던 육사를 못 갔다. 육사를 겁나 가고 싶었다기보다, 찢어지게 가난한 시골에서 도시로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던 아버지에게 출세와 성공의 길은 그때 당시에 육사를 가는 길이었던 것. 아버지는 고3 가을에. 한번도 살아서 아버지 노릇을 못했던 아버지가 죽어서도 자기 앞길을 막는다며 억울해서 울었고, 술에 잔뜩 취했고 절망했다고 했다. 나도 아버지의 주사를 받아내며 자랐는데 아버지는 주사의 끝에 꼭 그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그래도 아비가 이렇게 살아 있잖아. 하고. 아버지가 마흔살이 되었을 때 너는 그래도 마흔살 넘은 아비가 이렇게 살아 있잖아 라는 주사를 들으면서 문득 어려서 돌아가셔서 아버지가 안 계신거랑 이렇게 주사를 부리는 아버지랑 사는거랑 어떤게 더 불행한건가 생각하고, 불행해했다. 할아버지는 대체 왜 그때 돌아가셔가지구 그때 왜 대체 글자를 배우고 공부를 하고 책상과 연필을 유품으로 남기고, 동네 사람들에게 축음기를 가져와서 마당에 모아 놓고 음악을 들려주고 대체 키도 크고 잘생겨서 울 아버지한테 너는 니 아비만 못하다는 말을 듣게 하고, 대체 왜 좌익따위를 해가지고 이렇게 아버지 앞길을 막았던 것이며, 대체 왜 나는 그 할아버지의 아들의 딸로 태어 났다는 이유로 이렇게 밤새워 괴로워야하는가. 열다섯 열여섯의 나는 대체로 이해할 수도 없었고 그래서 대체로 불행 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곳곳에서 아버지를 만났고, 어쩌면 살아계셨으면 내 할아버지였을지도 모를 마음이 따뜻하고 꼬장 꼬장한 좌익 할배와 그 할배의 인생의 사이 사이 같이 했던 동지,

생각이 달랐으나 친구였던 누구, 할배의 인간에 대한 배려로 함께 담배를 피웠던 미용사가 될지도 모르는 소녀들을 드러내는 작가에 빙의하며, 위로 받았다. 왜 이리 울컥하는거냐, 오십살 넘으니 나에게 남는 것 신파밖에 없구나 하면서 눈물 찍으며 읽었다. 읽을 때는 위로인 줄 몰랐는데 이 작가님이 빨치산의 딸로 살면서 결혼을 파토내는 부분을 읽으며 아버지가 좌익인게 문제인가 그걸 문제 삼는 사회가 문제였지 라고 진심으로 말해주고 싶었는데 그게 우리 아버지에게 해 드릴 말이었고 불행해했던 열다섯살의 나에게 해 줄 말이었다. 작가가 담담하게 써내려간 아버지의 삶이 그 시대를 살았던 또 다른 아버지의 삶이었고 그 할아버지의 손녀였던 나에게도 곧 나의 이야기였다.

육사를 못가서 인생을 마치 망친 것처럼 생각했던 나의 아버지 은퇴하시고 자식들 잘 키웠다며 나 이만하면 성공한 인생 아니냐며 친구들과 놀러 다니시는 아버지. 열다섯살엔 아버지의 주사덕분에 울면서 잠들었지만 팔순 되어가는 아버지한테 미운 마음보다 짠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더 드는 쉰 살의 나. 결과적으로 어려서 돌아가셔서 다시 기억을 쌓을 시간이 없었던 아버지의 아버지보다 마흔 살 넘고 칠순이 넘어 아버지가 살아 계신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 세월이 흐르니 아버지 말씀이 이해가 된다. 세월이 흘러봐야 아는 게 있다.

그 와중에 읽은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한편으론 나의 아버지의 이야기였고 한편으론 내 이야기였고 그 시절을 겪어서 작가님이 되신 이 작가님의 삶이 불행했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래서 이래 풍부한 마음을 품을 수 있는 작가님이 되셨구나 하면서 그 분의 등도 도닥여주고 싶기도 했던 그런 이야기였다.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 , 나의 어머니의 어머니 , 나의 아들의 아들 이렇게나 연결되고 연결되는 개인들. 역사 속에서 개인들이 만드는 매듭들. 그런 것들을 기록하는 글들이 좋다.

 

강솔 / 소나무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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