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1081> - 『農家雜說』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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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1081> - 『農家雜說』②
  • 승인 2023.11.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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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answer@kiom.re.kr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책속에서 살아남은 토종볍씨

 어느 시골 독농가의 손에 의해 사라져가는 우리 토종 쌀 450여 종이 복원되었다는 소식이다. 3년간 시험 재배한 끝에 대표 품종 8종을 선정하여 공급하기에 이르렀으나 소농가에서 판로가 막연하여 토종 쌀 직거래를 요망한다고 한다. 마침 이 책 안에 들어있는 『농가집성』 내용 가운데 오래 전 이 땅에서 자라던 토종 벼 품종이 기재되었던 것이 기억나서 다시금 되새겨 보기로 하였다.

◇ 『농가잡설』

  벼와 곡물의 품종이 기재된 내역은 세종대 지어진 것으로 간주되는 이른바 『農事直說』부분에 들어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東品’ 즉 동국의 품종이란 소제목 아래 여러 종류의 벼 품종이 등장하는데, 크게 早稻와 中稻, 晩稻로 나누어져 있다. 조도는 일찍 심고 일찍 거두는 조생종, 만도는 늦봄에 심는 대신 서리가 내리기 직전에야 추수하는 이른바 늦벼라 이르는 만생종을 지칭한다.

  조생종 볍씨로서 처음 등장하는 것은 구황되쇼리(救荒狄所里)가 있는데, 이른 봄 얼음이 녹기 시작할 때 파종하기 때문에 일명 氷折稻(어름것기)라고 부른다. 봄에 심고 가을에 걷는 中稻(일반미)로는 에우지(於伊仇智), 소로되쇼리(小老狄所里)라는 품종이 있다.

  늦벼(晩稻) 품종으로는 사로리(沙老里), 쇠되쇼리(牛狄所里), 거문사노리(黑沙老里), 쇼노리(所伊老里), 놋왜자(晩倭子), 동아노리(東謁老里), 두아라(牛明山稻), 흰검부지(白黔夫只), 동숏가리(東鼎艮口), 고눈검이(高沙眼檢里), 보리산도(牟山稻) 등 여러 가지다.

만생종 품종이 유달리 많이 기재된 것은 아무래도 따뜻한 남녘지방에서 보다 더 다양한 품종을 재배하였던 탓인 것으로 생각된다.

  품종에 따라 볍씨 모양이나 싹이 틔는 형상과 색깔, 이삭이 팰 때의 색깔과 형태, 또 벼가 무르익었을 때 형색, 수확한 뒤 밥을 지었을 때의 미질이나 무른 정도 등이 아주 상세하게 기재되어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필자가 농사일에 경험이 많지 않고 관련 지식이 어두운 편이라 더 이상 실감나게 표현할 재간이 부족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 볍씨가 어떠한 토질에 잘 자라는지를 적어놓은 점이다. 예컨대 바람이나 한기에 내성이 강한 품종을 적시하였다. 특히 무르고 서늘한 토양이나 혹은 부석부석한 토질, 기름지고 습한 땅이나 마르지 않는 밭이 적합하다든지, 품종에 따라 잘 자랄 수 있는 땅을 가려 ‘土宜’라고 구분해서 항목마다 일일이 기재해 두었기에 품종을 선택할 때 매우 유용하게 쓰인다.

  볍씨 이외에 다른 곡물의 품종도 기재되어 있다. 콩(太) 품종으로는 黑太, 吾海波只太, 黃太, 百升太(왼되콩), 불콩(小太), 乽外太(자로콩), 臥大太(왁콩), 春小豆(봄가리콩), 根小豆, 山達小豆, 山太(콩) 등 여럿이다. 팥 종류로는 早小豆(올팟), 伊應同豆(이응팟) 등이 있고 녹두 조에는 沒衣菉豆라는 품종이 기재되어 있다.

  이밖에도 잡기조에 여러 잡곡들이 등장하는데, 예컨대, 기장(黍)에 4종, 피(稷)에 5종, 조(粟)에 15종, 수슈(粱)에 3종, 麰麥(밀보리)에 6종이 있다고 하였는데, 일일이 품종을 나누어 조사해 놓진 않았지만 역시 잡곡의 종류에 따라 적합한 토질을 기재해 놓았다.

  특별히 ‘버어지나락’(㐊語只租)이라는 것이 등장하는데, 색이 희고 쌀처럼 몹시 작은 단립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깊은 물속에서 잘 자라는데, 비록 수심이 깊어도 단단하고 튼튼해서 씨를 잘 맺고 꽃피운다고 한다. 그래서 전주와 임피, 옥구 등 물이 흔한 곳에서 키우는데, 너무 늦지도 이르지도 않게 심어야 한다고 했다.

  자주 쓰이는 한약재도 이제 산채는 거의 드물고 대부분 재배품이거나 수입에 의존하는 형편이다. 진위감별이나 기원규명 못지않게 자원식물 보전이나 품종관리에도 노력해야할 때라는 생각이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안상우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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