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박히준의 도서비평] 생체시계의 흐름, 그러나 달리기는 멈추지 않는다
상태바
[한의사 박히준의 도서비평] 생체시계의 흐름, 그러나 달리기는 멈추지 않는다
  • 승인 2023.11.03 06: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히준

박히준

mjmedi@mjmedi.com


도서비평┃뛰는 사람

생애 최초 풀코스 마라톤 완주에 성공했습니다. 춘천 의암호를 둘러싼 삼악산의 단풍과 푸른 물빛, 그리고 가을의 청명한 하늘을 벗삼아 달리다보니 어느덧 골인지점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점점 생체시계가 더 바삐 돌아가는 것을 자주 실감하게 되면서, 이번이 아니면 평생 도전하기 힘들 것 같은 절박함이 있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1분도 못 달리던 사람이었으니, 반만 가더라도 인생기록인 셈이라 완주하지 못해도 손해될 일은 없는거였지요.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윌북 펴냄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윌북 펴냄

이번 여름에 동네 마라톤 클럽에 가입하여, 선배님들께 정말 많은 조언과 도움을 받았습니다. 마라톤은 인생과 같다고 하시더군요. 욕심을 내서 과속을 하면 완주 할 수 없는 것이 마라톤이랍니다. 달리다보면 누구나 35km 정도에서 아주 힘든 시기가 오는데, 속도를 조금 줄이고 욕심을 내려놔야 잘 넘길 수 있답니다. 또 한 가지, 연습한 만큼, 노력한 만큼...딱 그만큼만 얻을 수 있는 게 마라톤이라고 하니...어떤가요? 마라톤, 딱 인생스토리 아니겠어요?

제게는 나이 들어서도 달릴 수 있는 할머니가 되는 꿈이 있습니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달리고 있다는 것은, 적어도 멈추지 않고 앞으로 조금씩이라도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테지요. 이번 기회에 이것이 실현가능한 꿈임을 증명해주시는 롤모델 선배님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번 춘천마라톤에 일흔둘의 선배님께서 같이 완주를 하셨고, 이미 명예의 전당에 오르신 선배님께서 페이스메이커를 자청해서 해주셨을 뿐 아니라, 울트라마라톤도 완주하신 여든 넘으신 선배님께서 늘 10킬로이상 달리고 계십니다.

어느 때이든, 이런 롤 모델을 찾게 되면 그리 반가울 수가 없는데요, 이번에는 책을 통해 또 한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바로 세계적인 생물학자인 베른트 하인리히 선생님이신데, “뛰는 사람”이라는 책을 통해 롤모델의 인생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원제는 “Racing the clock: A running life with nature (시간과의 레이스: 자연에서의 달리는 삶)”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시간과의 레이스를 외면할 수 없지만, 생체 시계의 흐름에만 인생을 맡기지 않고 살아갈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는 분명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평생 주변 자연을 관찰하고 질문하고 실험하며 살아 온 생물학자로서, 또한 평생 달리기에 꾸준히 도전해 온 저자의 인생 기록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저자는 샌프란시스코 마라톤 우승, 보스턴 마라톤 장년부 우승, 시카고 100km 마라톤 우승 등 달리기와 관련된 기록도 감히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대단한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전 세계를 다니며 자연을 관찰하고 실험하며 도출한 연구논문들을 네이처, 사이언스 저널에 게재할 만큼의 세계적인 수준의 생물학연구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이 매력적인 것은, 자연 속에서의 삶과, 달리기와, 연구가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 속에 모두 하나의 스토리로 녹아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하인리히 선생의 벌과 같은 곤충과 동물들에서의 중요 발견이 달리기 과정에서의 체험과 맞닿아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때론 생물학자로서, 때론 러너로서의 삶 그 자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생체시계의 신비로움과, 수명∙노화에 대한 비밀을 밝혀내는 과정이 인상적입니다. 그래서 독자들은 뒤영벌과 연어, 뱀장어 등과 관련된 이야기에 빠져 책을 읽다가, 어느 순간 러너로서의 끊임없는 도전기에 놀라게 되고, 결국 한 사람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인생에 공감하게 됩니다.

달리기는 인생의 또 다른 표현인 것 같습니다. 단순히 달리기라는 움직임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분들의 인생이 달리기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생물학자의 80년 러닝일지’를 통해서, 앞으로 각자에게 주어진 생체시계의 흐름을 어떻게 마주하면 좋을지 성찰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기원해봅니다.

 

박히준 / 경희대 한의대 교수, 침구경락융합연구센터 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