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강솔의 도서비평] “그냥 힘들다고 하면 이해가 안 되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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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강솔의 도서비평] “그냥 힘들다고 하면 이해가 안 되는 거잖아”
  • 승인 2023.10.20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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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솔

강솔

mjmedi@mjmedi.com


도서비평┃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김현아 지음, 창비 펴냄

요즘 의사들로부터 한의학을 무시 또는 폄훼하는 관점을 접하고 살면서 의사라는 직업군에 대해 너무 편파적이었나 싶은 마음이,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다. 책 속에서 드러나는 저자의 담담하고 명확한 서술방식, 영화와 책들을 인용하는 데서 묻어나는 감수성, 의사인 엄마로써 딸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는 태도, 본인의 딸로부터 시작해서 정신질환을 앓는 타인과 국가의 제도로 뻗어가는 관심까지 포괄하는 책의 내용이 놀라왔다. 의사라는 이유로 이런 합리적이고 인격적으로 성숙한 모습을 기대하지 않고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이 저자에게 좀 미안하였다. 그렇게 기대 이상으로 좋았던 책이다.

김현아 지음
창비 펴냄

이 책은 밝게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던 딸이 양극성장애를 앓고 있으며, 자해를 되풀이하는 것을 알게 된 의사 엄마의 7년간의 삶의 기록이다. 자해한 팔을 드러내 보이며 저자의 딸이 ‘왜 힘든지 묻지 마. 우리 집 같은 환경에서 뭐가 우울하냐고 할 거잖아. 그냥 힘들다고 하면 이해가 안 되는 거잖아’라고 말하는 것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부모가 모두 의사였더라도, 어떤 질환인지 알기 어려웠고, 양극성장애로 진단받고 처방받는 과정 중에도 나빠지는 상황들에서 약을 먹을까 말까 고민한다. 자해하는 딸이 팔을 그을 때 영구적 손상이 오는 인대가 어디인지 알려주고 거기는 피하라고 말했다는 구절은 마음이 먹먹했다. 좋아졌나 싶다가도 자해를 하고 응급실에 가고 병동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과정 중에, 가슴 졸이며 아이와 함께 삶을 살아내는 힘겨운 기록들이 담겨 있다. 의사이기 때문에 진지하게 의학적으로 접근하는 내용들이, 자신의 일을 조절해야 했다는 말이, 아이 생활비와 치료비를 위해 일을 계속하기로 했다는 말이, 담담했지만 슬펐다. 사이사이 반 고흐, 뭉크, 비비안 리, 헤밍웨이, 커트 코베인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유명인들의 삶이 교차되어 기록되면서 정신질환을 앓는 삶을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하게 한다. 환경과 유전이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맞지만 그로 인해 부모가 갖게 되는 죄책감과 고통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였다.

책을 읽으며 인상적인 구절이 많았다. 90년대 출생한 여성의 자살률이 우리나라에서 매우 높아졌다는 사실은 첫 번째로 인상적이었다. 오늘날 한국 20대 여성에게 자살의 코호트 효과가 관찰된다는 구절이 있었는데(p66) 부정적 시대 요인이 자살률에 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이다. 실제로 진료실에서 향정신성의약품을 복용하는 젊은 여성이 유독 다른 연령층에 비해 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 그것이 사회적 관련성이 있다는 구절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정신질환이 있는 가족을 둔 삶에 대해서 ‘그것이 죄도 벌도 아닌 바로 인생’(222P) 라고 생각한다는 구절에도, 아이가 아프면서 겪게 되는 삶의 시간을 통해, ‘그나마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는 그의 고백도 마음속 깊이 공감하게 된다. 이런 일을 겪지 않았다면, 스스로는 어쩌면 삶의 깊이와 넓이를 잘 모르고 살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는 말도. 담담히 기술한 기록들 하나하나가 내 마음을 대신 적어준 것 같았다. 얄팍한 글이 아니었다.

책의 맨 마지막 장에서는 사회에서 갖고 있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 정신질환을 둔 딸을 장애로 등록하고 국가의 부조를 받으려고 했던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기록하였다. 정신질환을 앓는 가족을 돌보는 가족의 경제적, 정신적 부담에 대해서, 부모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국가의 역할에 대해서, 서술하였다. 정상이라는 말이 ‘오랫동안 사회가 누구를 받아들이고 누구를 거절할지 결정하기 위해 쓴 개념이며 유해한 허구라는 것’(p278), 사람을 정상과 장애로 구분하지 않고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으로 인간을 이해하자는 관점, 지금 아프고 힘든 청춘들이 결국은 이 사회의 결과물이라는 시각을 기록하며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였다.

한의사로써 이 책을 읽으며 不治已病 治未病 이라는 말을 오랜만에 떠올렸다. 사람들의 영혼은 각자 영혼의 발 밑에 어떤 사람은 단단한 돌길을, 어떤 사람은 흔들다리를, 외줄을 딛고 있기도 하고, 어떤 외줄은 너무 가느다랗기도 한 것 같다. 부모로써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다리 밑에 그물망을 치는 것뿐. 아이가 자기의 외줄 위에서 균형을 잡는 방법을 터득하도록, 외줄의 두께를 조금 두껍게 만들도록 도와주는 것뿐, 아이의 외줄을 돌담으로 바꾸어 줄 수는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요즈음 조용히 무너져 있는 딸이, 딸들이, 아들들도, 너무나 많다. 정신질환이라는 말이 주는 어둡고 병명을 속삭이며 말하게 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기를, 治未病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을 놓치지 않기를, 아픈 청춘들을 도울 수 있는 기성세대가 되기를, 개인과 가족의 책임뿐만 아니라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도울 수 있기를, 이 책을 통해서 선명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밀도가 높은 책이었다.

 

강솔 / 소나무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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