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김린애의 도서비평] 앞으로 살날이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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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린애의 도서비평] 앞으로 살날이 많아서
  • 승인 2023.10.13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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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린애

김린애

mjmedi@mjmedi.com


도서비평┃비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는 AI지식, 박상길 지음, 반니 펴냄

세상이 바뀌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요새 나오는 차는 내비게이션과 연결되어 있어서 터널 안을 지날 때는 바깥의 공기가 유입되지 않도록 공조시스템을 조정한다. 분명 몇 해 전만 해도 어색한 단어 나열밖에 못 하던 번역 서비스는 이제 사진만 찍어서 올려도 어떤 언어인지 인식해서 사진 위에 제법 자연스러운 번역 결과를 겹쳐준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을 쓰는 데는 지식이 필요 없다. 모든 기술은 더 쉽게 ‘떠먹여 주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기능의 존재를 알고, 익숙해지기만 하면 된다. 초등학생이 부모님 돈을 계좌이체 하거나 핸드폰에 손가락 하나를 쓱 밀어서 물건을 구매하는 사태들을 생각하면 너무 쉬워서 큰일인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동적으로 있을 수만은 없다. 첫째, 우리가 언제나 떠먹임을 받는 입장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녀의 계좌이체나 구매는 막아야 하고, 진입장벽이 어마어마하게 낮아진 세상에서 홍보나 판매를 해야 하는 입장에 설 수도 있다. 둘째, 모르고 살기에는 앞으로 살날이 너무 길다.

<비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는 AI지식>은 이런 지식을 “활용하는데” 필요한 배경지식을 주는 책이다. 당장 쓸 지식이라면 빅데이터 분석 기사 시험교재나 <Do it! 첫 파이썬>같은 책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인공지능, 알파고, 자율주행, 검색엔진, 스마트 스피커, 기계번역, 챗봇, 내비게이션, 추천 알고리즘 같은 우리 주위에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술과 앞으로의 기술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어떻게 활용하고 어떤 점을 경계할 지에 대해 전반적인 지식을 준다.

자율주행 – 테슬라가 꿈꾸는 기계

초기 자율 운전 차량들은 2004년 있었던 <다르파 그랜드 챌린지>에서 무참하게 실패한다. 240km를 자율주행하는 이 대회에서 선두를 달린 차는 11km를 달리고 장렬하게 산화했다. 장렬한 실패를 맛본 후 1년 동안 연구자들은 GPS를 통한 경로의 인식에 집중하고 지형지물에 대해서는 규칙을 입력했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영상인식과 머신러닝을 기반으로 안전한 지형을 파악하게 하는 방식으로 전환하였다. 이렇게 해서 바로 다음 해는 완주하는 차량이 속출했다. 하지만 자율주행이 나갈 길은 아직도 멀다. 자율주행 차량은 생명이 걸린 만큼 높은 정확도와 윤리적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자율주행 차량에 대한 문제는 영상의학과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수준의 정확도가 필요하고, 사람의 생명이 달려있으며 막중한 책임이 주어진다. 주차 무서워서 큰 차는 엄두도 못 내는 내가 큰 차를 모는 것과 영상의학 AI를 쓰게 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빨리 올까? 순서의 문제일 뿐 오긴 올 것이다.

 

검색엔진 – 구글이 세상을 검색하는 법

구글은 ‘크롤러’를 활용해서 수많은 문서를 수집한다. 이렇게 수집된 문서는 색인으로 분류된다. 이 과정에서 적절한 주기로 문서를 수집하고, 정교하게 색인을 구성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제 다음 단계인 ‘랭킹’이야말로 홍보 글을 쓰거나 쓰게 하는 입장에서 솔깃한 단락이다. 제목에 쿼리(검색어)가 들어있는가, 문서 길이는 어떤가, 문서 내에 쿼리가 많이 나오는가, 욕설이 들어있는가? 저작권이 표기 되어있는가, 복사해온 글은 아닌가 등 다양한 요건이 랭킹에 고려된다. 왜 내가 정성껏 을지로 직장인의 건강에 대해 쓴 글이 “을지로 족발”이 염불마냥 반복되는 글보다 못한 조회수를 보이는가에 대해 생각을 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을지로의 족발 맛집도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언제까지나 질 수는 없기에 AI와 나는 서로의 거리를 좁히기로 한다. 나는 랭킹의 조건을 좀 더 맞춰 나가고, AI는 A/B 테스트라는 일종의 Randomized Controlled Trial을 통해 좀 더 사람들이 선호할 결과를 찾아나갈 것이다. 그럼 이제 시처럼 아름다운 을지로 족발 글에게 순위를 뺏길 수도 있겠지만 읽는 재미가 있겠지.

이 외 기계 번역이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대한 내용도 실용적이고 즐겁다. 알고리즘은 내가 보고 사는 세상을 바꿀 수 있기에, 알고리즘을 이해하는 것은 내가 왜 이 세상에 앉아있는지를 한 번씩 돌아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AI 세상에 내던져지지 않고 원하는 대로 살기 위해 읽는 총론의 역할을 하는 책을 읽었다.

 

김린애 /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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