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전우치도, 검은사제들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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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전우치도, 검은사제들도 아니다
  • 승인 2023.10.06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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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 기자

박숙현 기자

sh8789@mjmedi.com


영화읽기┃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감독: 김성식출연: 강동원, 허준호, 이동휘, 이솜 등
감독: 김성식
출연: 강동원, 허준호, 이동휘, 이솜 등

올해 한국영화는 초상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수많은 기대작이 쏟아져 나왔지만 대부분 흥행참패를 맛보며 비상이 걸렸다. 그런 와중에 추석을 노리고 나온 한국영화의 마지막 기대작 중 하나가 바로 ‘천박사 퇴마 연구소’라 할 것이다. 일단 강동원이 나오고, 퇴마라는 장르적인 호기심도 솟구치는데다가, 퇴마 일을 하는 천박사가 실은 퇴마라기보다는 퇴마를 하는 척 하는 사기꾼이라는 유머러스한 소재가 흥미를 자아냈다. 그 덕분인지 천박사는 아직 손익분기점에는 다다르지 못했지만 개봉 일주일째에 이미 100만 관객을 돌파하기는 했다. 올해 CJ 배급 영화 최초의 100만 돌파 영화다.

이를 ‘우수한 성적’으로 흥행했다고 판단하기는 섣부르지만, 적어도 내용에 있어서만큼은 확실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천박사는 ‘전우치’도 아니고, ‘검은사제들’도 아니다. ‘검은사제들’처럼 강동원의 뒤에 드라이아이스 특수효과를 주었다고 착각할 법한 영상미와 밀도 높은 퇴마 장면, 무속신앙 등에 대한 깊은 배경지식이나 관심은 보이지 않는다. 영상미에 강동원의 비주얼을 포함한다면 점수가 살짝 올라갈 수는 있겠지만. 당주무당인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범천을 설경으로 봉인하고자 하는 천박사의 퇴마는 사실 퇴마라기보다는 액션에 가깝다. 그렇다면 도술을 부리며 호쾌한 액션을 선보이는 전우치에 가까운가 싶은데, 액션영화의 정체성을 지닌 수준 높은 액션은 아니다. 등장인물 각자의 캐릭터성은 강렬한데, 이를 영화의 짧은 러닝타임에 녹여내기에는 자연스럽지 못하고 임팩트가 부족했다. 주구장창 세계관을 대사로 주입시키느라 러닝타임을 할애하는 것이 급해보였달까. 그래서 차라리 호흡이 긴 웹툰이면 천천히 세계관을 이야기에 녹여내기에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웹툰 원작인 것을 보고 아, 모든 것을 이해했다.

연이은 혹평에 천박사에게 얼마나 대단한 것을 기대한 것이냐며, 그냥 한 번 웃으면서 대충 시원시원하게 칼 질 좀 하는 편안한 오락영화이면 충분하지 않겠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여기서 항변을 하자면 나 역시 천박사에게 대단한 작품을 기대한 것은 아니다. 그럭저럭 시간을 때워 볼 만 한 유머러스한 영화를 기대했다. 정확히 어떤 것을 기대했냐고 묻는다면 실은 다른 사람들이 많이 언급하는 검은사제들이나 전우치가 아니라, 일본 만화 ‘모브사이코100’의 레이겐 아라가타를 기대했다. 그는 귀신은 볼 줄도 모르고, 퇴마능력은 더더욱 없지만, ‘퇴마’를 한다고 주장하며 화려한 개소리와 다양한 잔재주(뛰어난 안마스킬로 무거운 어깨에 앉아있는 영을 퇴마한다던지)를 선보이는 사기꾼이다.

다만 천박사에게 실망이 컸던 이유는, 이 영화가 그리 유머러스하지 않다는 점이다. 실은 웃긴 콘텐츠는, 촘촘한 빌드업을 기반으로 한 구조가 잘 만들어져야 큰 웃음이 나오기 때문에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천박사는 그저 이동휘라는 배우의 개인기에 거의 모든 웃음을 일임하고 있다. 대본자체의 웃음이라기보다는 이동휘가 그 ‘맛’을 잘 살렸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웃음이 나오지 않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영화를 본 뒤에 웃긴 장면을 떠올려보라면 딱히 기억나는 것이 없다. 그렇다고 보기 편안한 영화인가 하면 의외로 우중충한 장면이 주를 이룬다. 그 와중에 엉성한 CG를 보고 있자니, 현대인은 이미 ‘마블’을 봤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여러모로 재미있을 만한 요소가 많았는데, 죄다 이도저도 아니라 실망스러운 작품이었다. 물을 많이 넣고 끓인 따뜻한 비빔면 같은 영화였다.

생각해보면 그리 놀라운 결과는 아니다. 원래 코로나19 이전에는 이런 식의 킬링타임 영화를 만들면 대충 흥행했다. 어쩌면 이 글의 혹평과 별개로, 별 생각 없이 유쾌한 영화를 보고 오겠다고 생각하면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제작자라면 이런 식의 엉성한 영화로 흥행을 노려보겠다는 안일한 마음을 버릴 때가 됐다. 이제는 생각을 해도 유쾌한 영화를 만들어볼 때다.

 

박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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