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재의 임상8체질] 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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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의 임상8체질] 외길
  • 승인 2023.09.23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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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

이강재

mjmedi@mjmedi.com


8체질의학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_82

삶은 외길1)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지금 이 삶에서 다른 길, 다른 선택, 다른 기회란 없다.

 

()과 명()

() 자는 군()과 착()의 조합이다. 군이란 전차(戰車)가 포함된 규모가 큰 군대를 말하고, 흔히 책받침()이라고 표현하는 착()의 훈()쉬엄쉬엄 간다이다. 그러므로 글자가 구성된 모습으로 보면 운이란 규모가 큰 군대가 느리게 움직이는 모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움직인다’, ‘운전한다는 뜻이 나왔다.2)

()은 구()와 령()의 조합이다. 령은 전령(傳令)을 뜻하므로 령에는 명령(命令)의 의미가 이미 들어있으나, 입 구를 추가함으로써 명령의 주체와 뜻을 선명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리하여 명이 목숨이라는 뜻을 갖게 된 원천에는 목숨 또한 명령3)이라는 근원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레이싱 필드

()이란 글자의 뜻은 움직이거나 운전하는 것이다. 운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자동차 경기가 열리는 경주장(racing field)을 떠올려보았다. 그런 후에 내 마음대로 정한 경기규칙에 따라 두 가지의 자동차 경주 대회를 열어보겠다.

레이스에 참가하는 차는 모두 열 대로 정한다. 뭐 몇 대인 것이 중요한 건 아니다. 물론 대회에 참가하는 레이서나 자동차 회사(혹은 팀)는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개인 레이스

열 대의 차가 미리 정해진 순서에 따라, 혼자서 코스를 완주하고 나서 각자의 기록을 비교하여 우승자를 정하는 방식이다. 다른 차와 직접적인 경쟁 없이 혼자서만 달리는 것이므로 코스를 빠른 시간에 완주하기만 하면 된다.

단체 레이스

이 방식은 한 번의 레이스에서 몇 대의 차량이 함께 달리느냐에 따라 세부적으로 다양한 조건이 주어질 수 있으나, 일단은 열 대가 모두 함께 달리는 것으로 정한다. 출발 방식은 일렬종대로 할 수도 있고, 횡대와 종대가 섞인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런 후에 레이스를 마치고 결승선을 제일 먼저 통과하는 차량을 우승자로 정한다.

특정한 한 명의 레이서나 자동차가 정해진 대회 기간 중에 오로지 한 번만 경주에 나서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개인 레이스

시즌 랭킹 1위인 레이서 갑운(甲運)은 컨디션이 매우 좋았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컨디션에 맞춰진 듯 차()도 최상의 기계조건을 보여주면서 연습 때보다 훨씬 좋은 랩타임(lap time)을 기록하며 코스를 완주했다. 랭킹 2위 정운(丁運)은 레이스 도중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미끄러지며 주로를 이탈해서 결국 레이스를 포기했다. 랭킹 3위 무운(戊運)은 갑운의 기록에 육박하며 잘 달리다가 자동차의 사소한 결함으로 순간적으로 페이스를 잃었다. 랭킹 4위 기운(己運)은 지난 밤 함께 지냈던 여성의 얼굴이 별안간 떠오르는 바람에 균형을 잃어 곡선주로의 방호벽을 박아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시즌 내내 랭킹 5위권 밖인 레이서 을운(乙運)과 병운(丙運)이 갑운의 기록을 연달아 깨버린 것이다. 갑운은 망연자실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것이 이 대회에 갑운의 운()이다.

 

단체 레이스

레이서 경운(庚運)은 같은 팀 동료인 신운(辛運)이 경기 전날 사고를 쳐서 다치는 바람에 대신 경주에 나왔다. 자운(子運)의 위치는 대열에서 맨 뒤다. 그런데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앞에서 두 번째 줄인 임운(壬運)이 자리를 서로 바꾸자고 제안했고, 감독관의 승인을 받아 자리를 바꾸었다. 임운은 자기 앞에 서는 계운(癸運)과 평소 자주 충돌한 경험이 있어서 영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레이스가 시작되고 인운(寅運)이 일단 선두로 나섰다. 맨 뒤에서 출발한 임운이 속도를 내다가 오운(午運)을 먼저 박고 연이어 묘운(卯運)과 엉겼다. 계운이 인운을 바짝 뒤쫓는데 뒤따라오는 진운(辰運)을 견제하다가 자신을 추월하는 자운을 순간적으로 놓쳤다. 경운은 뒤 차 세 대가 한꺼번에 사라지자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안정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사운(巳運)과 축운(丑運)을 가볍게 추월해서 5위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자운은 평소 랭킹이 별로 높지 않은데 선두권에 서게 되니 은근히 욕심이 발동했다. 곡선주로에서 외곽으로 돌면서 인운의 차 옆으로 바짝 붙이려는데 그 사이를 계운이 비집고 들어오는 거다. 순간 핸들이 흔들리면서 차가 기울더니 온 세상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뒤이어 인운의 차가 그의 차를 피하지 못하고 들이박고 말았지만 자운은 그것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계운은 가까스로 두 차를 피해 빠져나왔다.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그는 어리둥절했고, 부딪힌 차들이 주로에서 이탈하여 사라진 공간 속으로 경운의 차가 화살처럼 슥 스쳐 지나간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이 날의 사고로 레이서 몇 명은 회복하기 어려운 중상을 입었고, 우승자는 경운이었다. 이것이 이 대회에 경운의 운()이다.

 

()

운이란 이와 같다. 자기의 차()를 스스로 모는(운전하는) 일이며 자기의 차가 움직여가는 일이다. 꼭 남과의 경쟁을 떠올릴 필요는 없고 우승이 절대적인 선()은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 시간과 공간에서 지났던 바로 그 주로(走路)의 상황으로 다시 되돌아 갈 수는 없다. 자기 차 자체의 조건이나 외부적인 여러 조건을 논하기에 앞서, 그 차는 바로 그 자신의 차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런 움직임, 운의 궤적(軌跡)이 삶이다. 그리고 삶에서 얻어 내는 그의 길()은 오로지 하나이다.

 

등가(等價)의 원리

우주 안의 모든 생명체는 생명을 지니고 있음으로 동등하다. 입이 없어서 먹지를 못해 하루를 넘기기가 힘든 하루살이의 삶과 나의 삶이 동등하고, 저 광활한 우주 속 태양보다 훨씬 더 큰 항성의 삶과도 동등하다. 고등생물, 하등생물이란 구분은 인간의 처지에서 본 기준일 뿐이다. 이렇게 생명체는 동등하고, 생명체의 삶은 등가(等價)의 원리를 지닌다. 아래의 식()과 같다.

||=|不好|

이 식은 서로에게도 통하고 홀로인 경우에도 통한다. 이 식은 간단하고 쉽다.

예를 들면, 연인들이 깊이 사랑하다가 헤어지게 되었다. 만약 이별 전후의 상황이 기쁨과 슬픔이라면 이 두 감정은 등가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 쪽은 아픔인데 다른 한 쪽은 시원함이라면 이때도 역시 등가의 원리가 적용된다.

|기쁨|=|슬픔|

|아픔|=|시원함|

거리의 노숙자가 가진 단돈 만원과 재벌 총수가 지닌 천억 원도 등가다. 노숙자의 만원은 충족인데 재벌 총수의 천억이 골칫거리라도 마찬가지다.

|노숙자의 만원|=|재벌 총수의 천억|

|만원의 충족|=|천억의 골칫거리|

한 순간 쾌락의 대가로 평생의 고통을 지불해야 한다면 그 쾌락과 고통도 등가다.

|한 순간의 쾌락|=|평생의 고통|

이 식이 지닌 뜻은 이와 같다.

 

()

()이 나의 의지라면 명()은 바로 주재자의 의지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의 처지에 설 수 없으므로 그의 의지가 어떤지 쉽게 알지 못한다. 그런데 그 단서가 내 안에 있다. 바로 체질이다. 체질에 명령의 정보가 담겨 있다. 체질은 태어나는 순간 결정되고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운 이전에 명이 선행한다. 운명(運命)이 아니라 명운(命運)인 것이다.

이것이 권도원 선생이 자신의 체질을 알면 자신에게 내려진 명령을 알 수 있다(知體質而知天命).”고 말한 뜻이다. 그 명령은 체질을 가진 생명체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것이며 근본적인 것이다.

 

천국과 지옥

천국과 지옥은 내 삶의 끝(죽음) 이후에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에 그런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엄연히 내 삶 속에 있다. 천국과 지옥은 현세에서 부당함과 억울함과 아픔과 아쉬움과 불안과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보상하거나 위협하려고 만든 가상의 세계다. 그런데 그것이 현세가 아닌 내세에 자리 잡게 된 것은 역사 속에서 종교적 정치적 권세를 누렸던 극소수 지배층의 의도가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죽어서 이미 소멸한 자를 현세로 소환하여 그것에 관해 증언하게 할 도리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저기 위에 나온 레이싱에서 경운(庚運)은 천국을 경험했고, 여러 다른 레이서는 지옥을 떠올렸을 것이다.

역사책 속에, 종묘(宗廟) 안에, 족보 속에, 오래된 무덤 안에 있는 조상(祖上)들은 이미 소멸되었다. 귀신은 없다. 다만 후손들의 마음속에 존재할 뿐이다. 내가 오늘 낫을 들고 조상이 잠든 산에 오르는 것은, 내 기억창고 속에 웃자란 풀을 자르려는 것과 같은 행위다. 그분들이 내 마음 속의 천국에 머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내 운() 위에 현재의 내 삶에 충실하라. 다른 선택, 다른 기회란 없다. 체질론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이다.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각주
 

1)  Only One Path

2)  운(運)은 돌릴 운이면서 움직일 운인데, 이것은 운 자(字)가 수레(車)에서 기원한 것임을 나타내 준다. 즉 바퀴가 돌면서 그에 따라 수레가 이동하듯이 운 자에는 순환하는 우주와 전진이라는 의미도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3) 우주의 질서를 주재하는 주재자의 명령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종교에서 말하는 인간과 쌍방으로 소통하는 신(神)의 의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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