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미정이던 잼버리…플랜D까지 준비해 밥 먹을 틈 없이 진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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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미정이던 잼버리…플랜D까지 준비해 밥 먹을 틈 없이 진료했다”
  • 승인 2023.09.07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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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 기자

박숙현 기자

sh8789@mjmedi.com


▶인터뷰: 잼버리 한의진료센터 황건순 공동센터장

77개국 1093명 환자 한의진료센터 방문…온열질환자 ‘허브 주스’ 요청 이어져

전력 공급 불안정한 야전병원 수준 진료 환경…향후 국제행사 대비한 여의사 육성 강조

 

[민족의학신문=박숙현 기자] 한의협은 지난달 1일부터 8일까지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에서 진료센터를 운영하며 의료봉사에 나섰다. 계속해서 변동되는 상황, 연일 이어지는 고온과 전력공급도 원활하지 않던 잼버리 현장에서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진료에 나선 한의사들의 뜨거웠던 여름 현장을 황건순 한의협 총무이사에게 들어봤다.

 

▶잼버리 대회에서 한의계도 의무지원에 나섰다. 잼버리 한의진료센터는 어떤 식으로 운영됐는지, 인력 배치는 어떻게 이뤄졌는지 궁금하다.

잼버리 현장에는 6명의 공동센터장 중 양선호 전북한의사회장과 내가 상주하고 있었다. 한의협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한방 체험과 한의 진료를 모두 준비했으며, 지난달 1일 첫날 아침 7시부터 대원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첫날부터 방문자들이 온열질환, 근골결계질환(어깨, 허리 통증 등), 피부질환(화상, 벌레물림 등) 등을 호소해서 첫날 아침부터 그에 대한 침, 부항, 한약 투약 등 진료가 시작되었다.

한의진료센터는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됐고, 봉사인력은 오전팀 (오전 7시~오후 2시 30분)과 오후팀(오후 2시 30분~오후 10시)로 나누어 활동했다. 오전, 오후 각각 한의사 4명과 한의대생 10명으로 팀을 구성했다. 한의협은 한의사 82명과 한의대생 79명을 사전교육을 하고 준비해두었다. 이 과정에서 예산은 전액 협회 예산으로 운영되었으며, 이번 의료 봉사를 위해 발전기, 텐트 대여비 등에 1억 원이 넘는 협회 예산을 투입했다.

당초 잼버리 폐영식이 진행되는 지난달 11일 저녁까지 센터를 운영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태풍 카눈의 북상으로 전체 잼버리 참가자들이 조기 퇴영하면서 우리 진료실도 지난 8일 오전까지만 운영됐다.

 

▶지난 2021년 한의협과 스카우트연맹이 MOU를 체결하며 잼버리 한의진료센터를 준비해왔는데, 잼버리대회 진행 직전까지의 준비과정이 궁금하다.

한의협은 지난 2021년 8월 한국스카우트연맹과의 업무 협약 이후 지속적으로 잼버리대회를 준비했다. 그리고 올해 3월과 4월, 6월 잼버리조직위에 행사장 내 ‘한의진료센터’ 운영을 제안했다. 연맹 내부에서 잼버리 행사장 내 한의진료는 세계 연맹 규정 위반이라는 일부 주장으로 한의진료센터 개설에도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난 7월 ‘새만금 잼버리대회의 의료진 구성은 평창 동계올림픽의 사례와 같이 준비하면 된다’는 세계 스카우트 연맹의 이메일을 확보하는 등 그러한 주장에 대한 대비도 하였다.

주최측과 소통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미리 확정되는 것이 없고 마지막까지 불확정적인 것이 많았다. 우리는 여러 가지 가능성(플랜B, 플랜C, 플랜D)에 대해서 모두 대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한의약에 대한 체험 외에 일상적인 진료, 비상상황에도 대비했다.

한의협은 자체적으로 잼버리 진료지침을 준비했고, 지난 6월부터 7월까지 3차에 걸쳐 의료진 사전 교육을 진행했다. 사전 교육은 ▲한의진료센터 개요 및 주의사항 ▲기초 진료 영어 및 스포츠 테이핑 ▲응급처치 및 야생의학 ▲예진 및 활력징후 측정 ▲기초 근육학 및 진료실 영어 ▲소독 및 드레싱 ▲심폐소생술 등으로 구성했다. 이번에 언론에 나왔던 화상벌레도 우리 사전교육의 야생의학 강연 중 강조되었던 부분이다. 아울러 새만금 현장 답사도 작년부터 올해까지 5차례 이상 진행했다.

그럼에도 위기가 있었다. 당초 잼버리 대회의 메인 참가자인 중학생 연령대가 주 대상층일 것으로 예상되어 체험 프로그램을 메인으로 준비했으나, 주최측과 협의 과정에서 중학생 연령보다 대학생 연령 이상인 운영요원만 관리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그래서 간단한 체험을 준비하되 일상 진료(온열질환, 근골격계 질환, 벌레물림 등 피부질환 등)를 중점으로 준비하게 되었다.

또한 주최측에서는 의료 봉사를 포함하여 모든 봉사자도 스카우트 활동 경력이 있는 사람만 참여 가능한 것이 원칙이라고 안내했다. 그래서 우리도 급하게 한의사와 한의대생 중 희망자를 선발하여 스카우트 지도자 과정을 이수했다.

 

 

▶당시 잼버리대회 현장은 연일 고온이 지속되었다. 잼버리 대원 뿐 아니라 한의진료센터에서 활동하는 한의사들도 무더위로 고생이 많았을 것 같은데, 진료센터 현장의 환경은 어땠나.

협회 자체적으로 발전기, 에어컨, 냉장고, 몽골 천막 등을 준비했지만 전반적인 폭염 상황에서 야전 병원과 유사한 시설이라 진료에 참여한 한의사와 진료 보조에 참여한 한의대생들이 고생을 많이했다. 밀려드는 환자로 휴식이나 식사를 할 잠시의 짬을 내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과열된 발전기가 수시로 고장이 나서 중간 중간 에어컨 및 의료기기가 가동을 멈추는 상황도 이어졌다. 현장에 도착하여 미리 준비해온 냉장고를 콘센트에 꽂으니 우리 진료실이 위치한 운영요원 편의시설 전체의 전력 공급이 멈췄다. 시설관리자는 선풍기 정도만 돌릴 수 있는 상황이니 우리가 준비해온 냉장고, 냉동고, 에어컨 등은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급하게 경유로 가동시키는 발전기를 빌렸다. 냉장고는 한약 등 의약품 보관을 위하여 필요했고, 냉동고는 아이스팩 및 온열질환자들에게 제공할 얼린 생수 준비를 위해 필요했고, 에어컨은 폭염경보 환경에서 진료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장비였다. 아울러 에어컨 냉기를 보존하기 위하여 몽골 천막 4동도 빌렸다. 진료 준비가 길어지다 보니 진료 첫날인 지난 8월 1일 새벽 4시에야 진료실 모양이 갖추어졌다. 새벽 4시까지 했던 마지막 작업은 진료실 내 베드간 커텐 작업으로 특히 여성 치료실은 베드간 프라이버시가 지켜지도록 신경을 더 썼다.

잼버리 의료진 봉사자들은 후일 이구동성으로 ‘역대급 경험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에어컨이 중단된 경우 환자와 의료진 안전을 위하여 진료를 멈추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의견도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의 의료진들은 오랜 시간 기다린 환자들을 돌려보낼 수는 없다고 의견을 모아 진료는 중단 없이 진행되었다.

 

▶잼버리 현장에 온열질환자가 속출하면서 양방에서는 여러 단체에서 급하게 의무지원을 나서는 등 숨 가쁜 시간을 보냈다. 한의진료센터에서는 이러한 인력과 자원 부족이 없었는지 궁금하다.

당초 주최측으로부터 허용된 공간이 약 68평이었기에 이에 맞춰 의료진과 진료 보조진을 준비하였고, 하루 진료 가능 인원을 최대 250명 정도로 예상하여 준비했다. 실제로 일 평균 220명의 환자가 진료센터를 내원했다. 환자가 많은 날은 최대 269명까지 내원했으나, 행사 중간에 영국과 미국 대원들이 현장을 떠나면서 내원 환자가 줄어들었다. 우리는 주어진 공간에 최대한 많은 의료진을 준비했고, 각자 맡은 시간에 최선을 다해 진료에 임했다.

진료에 필요한 물자는 사전에 준비한 것에 지속적으로 외부에서 보충하여 큰 문제없이 진행이 되었다. 예를 들어, 진료 첫날부터 얼린 생수가 필요해 보이는 잼버리대원들에게는 얼린 생수를 제공했는데, 행사 초기에 대원들에게는 식수로 수돗물이 제공되고 생수는 편의점에서 판매가 되던 상황이었다. 또한 온열질환 예방과 치료에 도움이 되는 한약(생맥산, 제호탕)도 여유있게 준비해 방문 대원들에게 제공이 되었으며, 우리 진료실의 모든 서비스는 한의협 예산으로 무상으로 제공이 되었다. 한 번은 허브클리닉의 의사 선생님이 클리닉에 방문한 환자들이 자꾸 (클리닉에 없는)‘허브 주스’를 요청한다고 하기에 ‘허브 주스’가 뭔지 궁금해서 우리 진료실을 잠시 방문한 적도 있었다.

당초 잼버리 운영요원들은 일과시간인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중학생 연령 대원의 과정 활동 지원 등 각자 역할을 하러 출장을 나가기 때문에, 그 외 시간인 오전 7시~9시, 오후 6시~10시에 환자가 많고, 일과시간에는 환자가 뜸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폭염 등으로 야외 활동이 대거 취소되면서, 일과시간에도 운영요원들이 대거 우리 진료실을 방문하게 되었다. 우리는 하루 15시간을 쉬지 않고 운영했다. 식사로 1인당 김밥 한 줄씩을 준비했지만 절반 이상의 김밥이 (먹을 시간이 없어) 버려지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약국에서 구입한 식염 정제와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과자를 수시로 의료진과 진료 보조진들에게 배급했다. 쉬는 시간 없이 일한 의료진과 진료 보조진들에게 지금도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한의진료센터를 방문한 환자들은 주로 어떤 질환을 겪고 있었나. 당시 온열질환자가 많았을텐데, 이들에게 어떤 진료를 제공했는지 궁금하다.

총 77개국의 1,093명의 환자가 한의진료센터를 방문했다. 이중 제일 많은 질환은 근골격계가 1,029건으로 가장 많았고, 호흡기계 67건, 피부질환 55건, 온열질환 28건, 소화기계 27건, 신경계 27건 등으로 환자들이 내원했다.

이중 온열질환자는 시원한 곳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에어컨 앞 베드에 누워서 쉬게 하면서 체온을 지속적으로 체크했고, 온열질환에 도움이 되는 한약(생맥산, 제호탕)은 방문하는 거의 모든 대원들에게 제공이 되었다. 당초 한약을 어색해하는 대원들도 있었으나, 옆 대원이 먹는 것을 보고 본인도 먹어보고 남기지 않고 한 팩을 모두 복용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슬람 대원들은 알콜이 포함되어 있으면 못 먹는다는 표현도 했지만 한약 성분을 출력하여 안내문으로 붙여놓고 해당 한약의 효능에 대하여 설명하며 안심하고 드셔도 된다고 안내했다.

38도 이상의 고열이 떨어지지 않는 경우, 협회 차량을 이용하여 잼버리 병원이나 코로나19 검사소로 이송하여 추가적인 검사나 치료를 받도록 했다. 행사장 내 이동은 도보가 원칙이고 잼버리병원까지 거리도 3km 가까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이송해주는 경우 대원들이 많이 고마워했다.

 

▶비단 잼버리 뿐 아니라 앞으로도 국제대회에 한의사들이 의무지원을 나가는 경우가 많이 있을 것이다. 잼버리의 경험을 토대로 향후 이러한 국제 행사에 참여할 때 어떤 점을 보완하면 좋을지 의견이 궁금하다.

인천 아시안게임, 평창동계올림픽 의료 지원 참여 등으로 한의사들의 국제 행사 의료지원은 노하우가 많이 쌓여 있다. 잼버리대회의 경우, 해외에서는 모두 오로지 민간단체 주도로 진행이 되는데 우리나라만 정부가 조직위원회를 꾸리고 지원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외 스포츠대회와 다른 잼버리대회만의 특징을 꼽는다면, 청소년층이 주 대상자라는 점, 야영활동을 한다는 점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번에 가장 절실히 느낀 것 중 하나는 문화적 차이로 인해 여성 의사에게 진료 받고 싶어하는 여성 환자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향후 국제대회나 행사에서 봉사할 여한의사 육성이 필요해 보인다. 물론 이번 잼버리대회에 모든 진료시간에 항상 여한의사를 1인 이상 배치하여 여성 환자는 모두 여한의사가 진료하고, 여한의대생이 그 진료를 보조하도록 했다.

 

▶이외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잼버리 대회에 참여하면서 마지막까지 불확정적인 상황, 지원시설 부족 등 여러 가지 위기가 있었다. 수시로 특정시각 이후 행사장 주 출입로가 통제가 이루어진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우리 의료진을 실은 차량 중 한 대가 밤길에 급하게 나가다가 진흙밭에 바퀴가 빠지는 일도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차량은 버려두고 다른 차량에 모두 끼어 타고 통제 전에 행사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고, 진료 마지막 날인 8일은 대규모로 대원들의 버스가 이동해야 해서 의료진들은 차량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2km 가량 걸어 나가서 행사장 밖에서 대기 중인 우리 차량을 이용할 수 있었다.

이렇듯 이번 의료 봉사의 준비와 진행을 위해 많은 분들의 희생이 있었다. 협회 임직원, 협회 잼버리위원회 위원, 의료진과 진료 보조진으로 수고해주신 분들, 이외에 여러가지로 도움 주신 지역 업체 관계자, 그리고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지원해주신 주최측 관계자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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