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웃음은 빨간 봉투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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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웃음은 빨간 봉투에서 시작된다
  • 승인 2023.06.16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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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 기자

박숙현 기자

sh8789@mjmedi.com


영화읽기┃메리 마이 데드 바디
감독: 청 웨이 하오출연: 허광한, 이백굉 등
감독: 청 웨이 하오
출연: 허광한, 이백굉 등

중국과 대만에는 영혼결혼식 풍습이 있다. 결혼하지 않은 채 사망한 시신의 머리카락과 손톱, 사주, 돈을 넣은 빨간봉투를 길거리에 두고 유가족들이 숨어있다가 누군가 그 빨간봉투를 주우면, 그 봉투를 주운 사람은 사망한 영혼과 결혼을 하게 되는 풍습이다.

이 영화는 강력계 형사 우밍한이 거리에서 우연히 빨간봉투를 줍게 되면서 시작된다. 문제는 죽은 영혼이 예쁜 여자가 아니라 신체 건강하고 정신도 건전하던 ‘잘생긴 청년’이었다는 점이다. 죽은 마오방위(일명 마오마오)는 게이였기 때문에 마오마오의 할머니는 “이렇게 잘생긴 청년과 결혼하게 되다니 마오마오도 좋아할거야”라며 기뻐한다. 게이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있는 우밍한은 이 미신에 동참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결혼을 거부한 뒤로 우밍한에게 온갖 재수 없는 일이 벌어지자 어쩔 수 없이 우밍한과 마오방위는 부부가 된다.

이 작품은 의외의 비틀기를 잘 사용하는 코미디 영화이다. 우연찮은 계기로 엮이게 된 두 사람(과 사람이었던 존재)가 처음에는 옥신각신하다가 나중에는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을 열면서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로맨틱코미디의 공식이기 때문에 우밍한과 마오마오의 러브라인을 예상했건만 둘은 그저 진한 우정을 공유하게 된 친구다. 그런 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마오마오가 게이라는 점은 그저 특이한 비틀기만을 위한 요소이고, 주된 내용은 마오마오의 죽음을 파헤치려는 것인가 예상했건만 마오마오가 게이라는 것은 이 영화의 색채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요소다. 대만은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나라이기 때문에 동성애에 관대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영화에서는 여전히 존재하는 동성애자의 어려움이 자연스레 노출된다. 덧붙여 생각보다 환경에도 진심이라 맨 마지막 엔딩에서는 눈물을 흘리면서 “에코그릇을 사용하는 당신이 자랑스러워요”를 외치게 되는, 일반적인 코미디영화와는 다른 개성이 있다.

범죄수사물에 성지향성이며 환경문제며 여러 가지 요소를 범벅한 영화이지만 어쨌든 기본적으로 ‘코미디’ 영화인만큼 웃겨야 한다. 그런데 이 코미디라는 장르가 실은 굉장히 어려운 장르이다. 모두가 yes라고 생각할 때 no라고 하는 식의 반전과 비틀기를 아주 절묘한 타이밍에 이뤄내고,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질러주는 템포조절이 이뤄져야, 소위 말하는 ‘싼티’가 나지 않고 세련된 웃음을 만들 수 있다. 중화권의 작품에서 특유의 ‘어설픈 싼티’를 느껴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 영화는 어땠는고 하면 한 70%정도는 성공한 것 같다. 초반부의 폴댄스와 후반부의 액션씬에서 확실하게 배꼽을 잡아준다. 코미디를 위해 대충 넘겨주는 몇몇 장면을 볼 때 시놉시스가 어설프거나 연출이 과장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약간의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말이다.

영화 자체는 별 생각 없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킬링타임 작품에 가깝다. 그러나 보는 사람이 큰 거부감 없이 편안하게 웃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한 감독의 노력을 생각해보면 여간 도전적인 작품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환경운동을 하고, 인권운동을 하며, 유기견돕기를 자처하는 동성애자를 주연으로 내세우면서 지나치게 희화화하지 않을 코미디를 만드는 일은 여간내기가 아닐테니 말이다. 결국 보는 사람의 짧고 빠르게 스쳐가는 순간을 위해 수많은 고민을 반복해야 하는 것이 창작자의 운명이리라.

 

박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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