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227] 醫鑑刪定要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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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227] 醫鑑刪定要訣
  • 승인 2004.12.1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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陽平君 비추인 뜻, 큰 말로 다시 되어

조선 후기 헌종, 철종대에 활약한 西坡 李以斗(1807~1873)는 비록 시골 선비였지만 經學과 문장에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천문, 지리, 의약, 복서, 산술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 걸쳐 博通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는 자가 瑞七, 본관은 廣州로 어려서부터 남다른 재주를 보여 10여 살에 四書五經을 두루 읽었으며, 일찍이 『東醫寶鑑』을 섭렵하는 등 의약에도 흥미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명에서 보이듯 ‘醫鑑’(동의보감)에서 요점을 가려 뽑고 여기에 자기의 경험을 참작하여 新方을 더하고 雜方과 俗方을 덧붙여 꾸몄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현재 우리가 보는 책은 집필 후 100년 정도 세월이 흐른 뒤인 1935년 嗣孫인 李相駿이 漆谷에서 석판본으로 간행한 것이다.

그런데 생몰연대와 간행경위가 분명하고 문집이 남아있어 저자의 행적이 자세히 밝혀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저술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어떤 곳에서는 헌종 초엽인 1830년대, 혹은 좀더 구체적으로 1835년~1849년으로 추정하기도 하는데 이는 20대 후반부터 40초반까지의 젊은 나이에 집필한 셈이다. 이렇듯 저술시기가 명확하지 못한 이유는 집필한 뒤 시일이 오래 지난 뒤에 펴낸 탓도 있겠지만 대부분 班家의 집안에서 의약을 雜學이라 여겨 제대로 기록하지 않거나 잘 드러내지 않는 까닭이다.

그의 詩文과 저술들은 『西坡文集』 2권 1책에 담겨져 전해지고 있는데, 문집은 오히려 이 책이 나오고 몇 해 뒤인 1941년에 이르러서야 목판본으로 발행되었다. 詩, 書, 雜著, 跋 등으로 구성된 문집을 다 뒤져보아도 그가 의약을 공부했다거나 책을 썼다는 구체적인 기록을 찾아보기 힘들다. 기껏해야 雜著에 기록된 ‘京本神課金口訣大全序’ 정도가 그나마 術數를 다루었다는 흔적일 뿐이다. 저자의 行狀과 墓誌銘에서도 천문, 지리, 음양, 오행, 卜筮, 醫理, 산술 등에 두루 해박했다는 정도로만 기술되어 있다. 문집의 遺事를 살펴보면 壬寅年, 즉 1842년에 어머니가 重病에 들자 저자가 밤낮으로 탕약과 미음을 받들어 봉양했다고 되어 있는데, 아마도 이 무렵이 『동의보감』을 읽고 그 요점을 정리하는 시점이자 의약경험을 축적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은 天, 地, 人 3권 3책으로 되어 있는데, 본문에 앞서 序와 總錄, 그리고 목록이 수재되어 있다. 권 1에는 內景, 五臟六腑가 들어 있고 그 다음에 외형편이 이어지는데, 頭만 들어 있고 나머지 대부분의 外形질환과 六淫 질환은 권 2에 들어 있다. 권 3은 內傷, 虛勞로부터 소아까지 총 76편으로 나뉘어 진다. 대략 체제는 『동의보감』을 그대로 遵用하고 있으나 처방은 저자의 경험과 기준을 새롭게 적용하여 개정해 놓은 것이 가장 큰 특색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목록에는 질병분류별로 처방명만 나열되어 있고 처방 밑에 작은 글씨로 주치병증을 기록하였으며, 또 검색해 보기 편리하도록 3단으로 구분해 놓았기 때문에 간단한 처방색인과 같은 기능을 할 수 있다.

실제 본문의 기술방식에 있어서도 병증목 아래 간략한 요점이 붙어 있을 뿐 상세한 설명은 별로 들어 있지 않다. 본문은 거의 처방의 나열로 일관하고 있으며 마치 잘 정리된 처방집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나 조금만 끈기를 갖고 들여다보면 본문 중에도 군데군데 醫說이 숨어 있다. 예컨대 眼門에 수록된 總論은 비록 3조문에 불과하지만 眼目腫痛의 병인과 허실에 따른 치법이 함축되어 있고 老少간의 병인과 치법을 달리해 놓았다. 아울러 젖먹이 부인네의 짤막한 醫案도 수록하여 작은 분량이지만 매우 효과적으로 압축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눈여겨 볼 부분은 각 병증목 별로 주요 처방 뒤편에 실린 저자의 精選 경험방인데, ‘附’라고 간단하게 표기하고 나서 연이어 실었기 때문에 얼핏 보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서문에서 강조한 新方, 雜方, 俗方이 담긴 부분으로 예를 들어, 酒泄을 보면 固腸湯, 調中益氣湯, 仁蔘敗毒散, 加味三白湯과 같은 경험처방으로부터 黃土煎水, 馬齒현汁, 부魚膾, 牛肝, 黃雄鷄 등 음식처방까지 갖가지 방법의 치료법이 소개되어 있다. 그야말로 저자의 노하우와 의약경험이 녹아 들어가 있는 實戰治方이라 하겠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 상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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