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 (118) 운명을 바꾸는 법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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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 (118) 운명을 바꾸는 법이 있을까
  • 승인 2022.06.17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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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김영호

doodis@hanmail.net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김영호한의사
김영호
한의사

 

사람의 일상은 수천 년 전과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재의 소유에 집착하며 미래를 걱정하는 것, 그 일상이 합쳐져 인생이 된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생각하던 대로 생각하고, 말하던 대로 말하며 살아왔던 대로 살아간다. 이런 관성(慣性)은 나이가 들수록 더 단단해지고 완고해진다. 처음에는 의도한 대로 말하고 행동하지만, 점점 말하고 행동하는 대로 의도하게 된다. ‘나의 생각’은 점점 강력한 ‘의도’가 되어 운명을 결정한다.

우리의 ‘생각, 말, 행동’에는 분명 ‘의도’가 있다. ‘의도’는 밖으로 표출되는 모든 것의 배경이자 환경이다. 불교에서는 ‘의도’를 업(業)이라 하여 궤도를 달리는 열차에 비유한다. 자신의 습성대로 살아가면 궤도 속 열차처럼 영원히 업(業)의 고리 속에 갇히게 되고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면 계속 윤회(輪回)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극히 일부의 사람만이 깨달음을 통해 결박된 고리를 풀어헤치고 윤회를 벗어나는데 이를 해탈(解脫)이라고 했다. 해탈에 이른 사람은 습성을 버리기 위해 마음 속 ‘의도’를 바꿨고, 바뀐 ‘의도’는 생각과 말, 행동을 모두 변화시켰다. 그것이 운명을 바꾸는 법의 정석이다.

우리 같은 보통사람에게 이 과정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해탈에 이르는 사람도 극히 드물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해탈에 이를 필요는 없다. 해탈에 이르러 운명이 완전히 바뀌는 것을 100이라고 할 때, 평범한 우리는 1 혹은 5, 조금 더 나아가 10만큼 바뀌는 것으로도 일상은 변한다.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고, 그로 인해 성격이 바뀌며, 성격이 바뀌면 운명까지 바뀐다.

변화는 업(業)을 이루는 환경, ‘의도’가 나오는 그곳을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곳은 살아가며 겪는 모든 경험, 생각, 감정이 뒤섞인 곳이다. 이것들이 뒤섞여 다른 사람과 나를 구별하는 울타리가 된다. ‘나는 이 정도 성취한 사람이야’ ‘나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야’ 같이 자존감의 울타리도 있고, 타인과 나를 구별 하는 ‘생각, 행동, 말’등 성격의 울타리도 있다. 서양 철학자들은 이 울타리를 에고(Ego)라고 했다. 에고를 무너뜨리는 것이 바로 운명을 바꾸는 방법의 핵심이다.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세계 모든 종교가 지향하는 바도 ‘내가 만든 Ego’를 얼마나 확실하고 완벽하게 무너뜨리는 가로 모아진다.

남이 만든 것은 부수기도 쉽지만 내가 만든 것은 부수기도 어렵다. 만드는 과정에 더해진 애착 때문이다. 이 울타리에는 요란한 스피커까지 달려있다. 보고 듣는 것을 순간적으로 판단해서 ‘좋다, 싫다, 나쁘다’ 같은 소리를 낸다. 그 소리에 우리는 절대적 믿음과 지지를 부여한다. 그래서 ‘내 말이 옳다’는 고집은 나이가 들수록 강해진다.

‘내 생각, 내 주장’이 끊임없이 떠오르거나, 생각도 해보기 전에 ‘좋다 싫다’의 감정이 느껴질 때, 혹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려할 때 잠시 멈춰보자. 그리고 ‘아! 에고의 소리구나?! 이 소리에 귀 기울이면 내 운명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떠올리고 흘려보내는 연습을 해보자.

에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지 않으면 볼륨은 줄어든다. 그냥 한두 번 떠올랐다가 힘을 잃는다. 이 과정을 잠시만 게을리 해도 울타리는 높아지고 스피커는 다시 요란해진다. 그래서 매일 무너뜨려야 한다. 일을 잘 해냈을 때 우쭐해지는 ‘내 생각’도, 남들과 비교해서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내 생각’도 매일 무너뜨려야 한다. 그래야 울타리가 무너지고 에고의 목소리가 힘을 잃는다. 에고가 약해져야 있는 그대로 보이고, 있는 그대로 보아야 내가 만든 소리에 속지 않는다. 마음이 불편해지는 모든 순간을 떠올려보면 결국 에고의 목소리가 강할 때다. 그 소리가 커질 때마다 마음은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불교에서 말하는 업(業)과 의도, 서양 철학자들이 말하는 에고(Ego) 이것들이 결국 ‘생각의 습관’이다. 습관적 생각에서 나오는 에고의 목소리에 속지 않아야 운명을 바꿀 수 있다. 그 목소리에 휘둘리지 않을 때 비로소 모든 것이 선명해진다. ‘나는 날마다 죽는다. 고린도전서 15:31’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마태26, 39)”와 같은 성경의 말씀과도 정확히 이어지는 부분이다. 나의 뜻이 사라진 자리에는 신의 뜻이 피어오른다. 그것이 곧 새로운 운명이다.

(故)신해철씨가 라디오에서 "나의 팬이라면 누구나 알지만 뜨지 않은 어려운 노래가 있다. 이 곡은 내가 죽으면 뜰 것이고, 내 장례식장에서 울려 퍼질 곡이다."고 얘기한 곡이 있는데, 그 곡의 가사가 이제야 어렴풋이 와 닿는다.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민물장어의 꿈 中에서)

김영호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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