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223] 有名藥草栽培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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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223] 有名藥草栽培法
  • 승인 2004.11.12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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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局下 醫藥의 自給을 圖하기 爲하야

일본제국주의 칼날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의 약초재배법에 관해 적어놓은 대중용 책이다. 저자는 趙鍾國이란 사람으로 기록에 의하면 그는 朝鮮賣藥株式會社의 전무취체역을 지낸 한약업계의 인물로 당시 굴지의 매약전문회사인 平和堂藥局 李應善의 사위였다고 한다. 그는 또 1929년 中外醫藥申報를 발행하여 한약을 홍보하는 대변지 역할을 하였는데, 매월 1회 발행한 月報 형태였다. 1939년에는 조선한약업조합장이며 동양의약협회 상무이사로 동아 신질서 건설과 동양의학의 부흥을 역설하였으며, 당시 天津·上海의 한약업계를 시찰하고 돌아와 견문을 기록한 글을 남겼다고 한다.

1942년(소화17)에 초간한 이 책의 본문은 114쪽에 불과한 작은 책이다. 하지만 뒤 쪽에 실린 부록에는 54쪽 분량의 (藥草本位)單方療法集이 별도로 붙어있다. 京城의 중외의약신보사가 펴낸 것으로 되어있으니 결국 자신이 몸담고 있었던 신문사에서 출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앞에는 범례에 해당하는 例言과 編者의 序文, 유명약초재배법 목차와 부록의 단방요법집 목차 등으로 제법 상세하게 구성되어 있다.

본문은 국한문 혼용체로 되어있으며, 간혹 일본어로 발음을 표기한 곳도 눈에 띈다. 예언의 첫머리에서 편자는 다음과 같이 이 책의 편집의도를 요약하여 보여주고 있다. “本書는 時局下 醫藥의 自給을 圖하기 爲하야, 가장 需要가 만흔 重要한 藥草와 藥木만을 蒐集하야, 이것의 栽培要領을 示한 것임으로…….” 이 말은 서문에서 다시 한번 부연하여 밝혀놓았는데, “우리는 時局下 醫藥의 自給을 圖하기 爲하야, 또는 他力依存에서 버서나기 爲하야 藥草, 藥木의 栽培增殖에 最大의 努力을, 勿惜하여야 하겟습니다.” (띄어쓰기는 필자가 재구성)

또 단방요법에는 가격이 저렴하고 효능이 좋은 약재를 골라 소개했다고 밝혔는데, 일반 한약국에서 판매하기 때문에 구하기 쉽다고 하였다. 특히 여기에는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상용 약재 외에도 특히 皇漢藥으로 유명한 방(얼룩소 방)牛兒, 望江南, 當藥, 집藥 등도 인용해 놓아 일제강점기 막바지의 치열했던 사회상을 짐작할 수 있다.

저자 서문에는 국민의 보건의료와 약초 재배증식을 위하여 집필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그는 약초의 우수성에 대해 강조하면서 길경과 시호, 옥촉수 등에서 약효성분이 추출되었다는 점을 예로 들어 설명하였다. 이러한 시각은 약초재배법의 세부 목차에서 그대로 드러나는데, 鎭靜, 發汗, 消炎排毒, 收斂, 祛痰, 强壯, 健胃, 瀉下, 補血興奮, 鎭咳, 補肺, 利尿, 通經, 驅蟲 등의 약의 효능별로 구분되어 있다. 실례를 몇 가지 들어보면 鎭靜藥=甘菊과 재배법, 發汗藥=羌活과 재배법, 祛痰藥=桔梗과 재배법, 瀉下藥=大黃과 재배법 등과 같은 식이다.

또 목차를 보면 ‘재배 가능한 유명약초’와 ‘보호 증식할 유명약초’로 크게 나뉘어져 있는데, 상당 부분 아직 인공 재배가 손쉽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배 가능한 유명약초에는 甘菊, 羌活, 牽牛子, 決明, 桔梗, 地黃, 大蒜, 大棗, 大黃, 當歸 등 62종의 약재가 올라있으며, 보호 증식할 유명약초로는 苦蔘, 葛根, 地楡, 蔓荊子, 木賊, 木通으로부터 구충약 海人草까지 19종이 수록되어 있다.

본문의 각 항목은 약초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에 이어 재배법, 收穫及調製, 藥用部分及效能의 세 부분으로 나뉘어 기술되어 있다. 상당수의 약초에 대해서는 單線으로 묘사된 세밀화를 그려 삽화로 수록해 놓았기 때문에 비슷한 약초를 감별하는데 도움이 된다. 또 일부 약초명 아래에는 일본어음이나 한글로 쓴 향명을 병기해 두었다.

단방요법집은 소화기병, 호흡기병, 혈액관계병, 신경계통병, 소아병, 피부병, 성병, 부인병, 眼耳鼻 질환, 외상 등 10편으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앞선 시대에 질병증상별로 나열하여 소개하던 형식으로부터 벗어나 서양의학의 분류체계에 따라 단방약초를 쓰는 방법을 수록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 시기 약초재배와 단방요법이 주로 전쟁물자의 부족을 메우기 위한 양약의 대체 투여 효과와 약재의 수탈을 노리고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 상 우
(042)868-9442
answer@kio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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