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 한방의료기관의 한약을 살리자(下)
상태바
[조명] 한방의료기관의 한약을 살리자(下)
  • 승인 2004.07.16 14: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bmaster@http://


‘가격중심·무관심·미비한 법’ 판을 바꿔라
품질향상, 신뢰회복이 관건

서울 서초구에서 개원하고 있는 한 한의사는 근 골격계 질환으로 내원한 환자에게 자침한 후 자신이 직접 산재로 만든 약을 투약한다.
“첩약도 함께 먹어야 회복이 빠릅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지만 환자가 부담스러워 할 것 같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말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미리 갈근해기탕, 오적산 등을 만들어 놓고 환자에게 투약한다.
물론 이 처방은 보험급여가 적용되는 혼합엑스산제에도 있다. 하지만 이 한의사는 그 약을 신뢰하지 않는다.
신뢰 차원이 아니라 이 약을 환자들에게 주는 것은 한약에 대한 불신을 키워 줄뿐이라고 믿고 있다.
약 값은 별도로 받지 않는다. 보험약 급여 비용은 공단에만 청구하기 때문에 환자에게 “이 약은 보험적용이 되지 않아 약 값을 부담하셔야 한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보험급여비중 증가 속 투약은 감소

2000년 5,414억원이던 한방병·의원 요양급여 비용은 2003년에 8,787억원으로 62%나 증가했다.
한방의료기관의 환자 수 증가보다는 급여비 인상에 따른 것이다.
전체 의료급여에서 한방이 차지하는 부분은 같은 기간동안 4.1%에서 4.3%로 소폭 증가했다.
그러나 문제는 건강보험에서 투약이 차지하는 비중이 7.5%에서 4.2%로 떨어졌다는 부분이다. 그 원인은 보험약이 중간 소비자인 한의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험급여에 포함돼 있는 가미소요산, 구미강활탕, 반하사심탕, 소청룡탕, 이중탕, 평위산 등 50여 종은 일반 한의원에서 많이 응용되고 있는 처방이다.
그런데 보험약은 쓰지 않고 한의원에서 첩약 등의 형태로 투약되고 있는 이유를 급여 금액이 낮아 한의사가 처방을 기피하는 것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서울 강북구에서 개원하고 있는 한 한의사는 “첩약을 먹을 형편이 못돼 침만 맞고 돌아가는 환자를 볼 때 보험약이 조금 만 더 좋았으면 하는 아쉬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환자에게는 추가부담이 없어 투약해도 되지만 치료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투약을 꺼린다는 것이다.

■ 가격 일정 품질 향상 어렵다

이에 대해 제약업계에서도 할 말은 있다.
모 제약회사의 홍보 담당자는 “급여 금액이 정해져 있어 회사입장에서는 이 금액에 맞추어 한약제제를 생산해야 하는데 어떻게 품질을 보장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인삼패독산을 제조해 한방의료기관에 공급한다고 했을 때 제제 가격은 생산원가에 적정 이윤이 포함된다.
인삼패독산의 하루 투약분 고시금액이 2,044원임을 비추어 볼 때 어떠한 한약재를 원료로 사용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담당자는 “같은 약이라도 보험급여 대상이 아닌 약국에 공급되는 한약제제는 원 자재의 질을 높여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으나 가격이 정해져 있는 보험제제의 경우는 품질향상이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일부 한약제제에 한정된 것이지만 1989년 한방의료보험이 실시되면 한약제제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는 한의계의 기대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약효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한방의료기관에서의 한약도 가격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10년전 서울지역에서 10~12만원 수준이던 첩약 한재의 값은 12~20만원 수준으로 편차가 심해졌다.
하지만 18~20만원을 받는 곳은 지명도가 높은 한의원이나 일부 지역에 한정돼 있다.
다수가 15만원 이하며, 일부는 10만원 수준에 투약하는 곳도 있다.
대다수의 한의원이 가파르게 올라가는 물가에 맞춰 한약 가격을 올리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방의료기관에서는 약재비용에 많은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또 한의원에 공급되는 한약재의 품질에 대한 불만은 약재의 품질보다는 가격을 우선시하는 풍조마저 낳게 했다.
공정서의 기준은 약재 약효능을 발휘하기 위한 기준이 아니라 그 식물임을 증명하는 기준에 불과하다.
농산물도 유통기한이 있는데 한약재는 없다. 한약재로 수입돼 들어 왔을 때는 부실한 검사나마 이루어지지만 식품으로 들어 왔을 때는 아무런 절차가 필요하지 않다.
이 제품들은 국산으로 둔갑해 한방의료기관에 공급된다.
11일 식약청은 또다시 “위염·인후염 유발하는 이산화황이 유통 한약재서 다량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수입업자는 가격이 낮은 한약재를 수입해야만 유통이 가능하고, 식약청은 주기적으로 한약재에 문제가 있다는 보도자료를 내고 있다.
한방의료기관의 한약이 경쟁력을 상실해 가고 있는 주 요인이다.
한약, 한의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인스턴트 식품이나 양방의학의 문제점과 부작용이 속속 드러나고 국민들이 이를 직접 체험하게 됨으로써 친환경 제품과 한약시장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방의료에서 한약이 차지했던 공간은 건강식품이 대거 잠식했고, 뒤를 이어 건강기능성식품도 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채비를 서둘고 있는 상황이다.
첩약 등 기존의 한방의료기관 한약은 식품에 밀리고, 제도적 미비로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된 한방신약을 한의사가 투약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될 경우 한방의료에서 약은 점차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한방의료기관의 한약이 대중의 품안으로 되돌리는 것은 한의사 스스로 한약재를 바라보는 마음을 재점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격에 맞춰 한약재를 수입할 수밖에 없는 업계, 약재의 질에 대해 무관심해진 한의계, 미비한 법체계 그리고 한약재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공존하는 한 한방의료기관의 한약은 더 이상 설 곳이 없을 것이다.

이제민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