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동향] 채한 박사의 American Report (10·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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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동향] 채한 박사의 American Report (10·끝)
  • 승인 2004.07.0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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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양방 일원화(?) 교육
차세대의학에 대한 한의학적 비전 제시해야


의료 일원화에 대한 혹은 한-양방 협진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정치적인 논쟁이 맞물려 들어가는, 순수 학문적 입장에서는 매우 곤혹스러운 주제 중의 하나입니다. 양방은 “못난 너희들을 우리가 흡수하여 발전시킬 것이다”라는 의례적인 발언을, 한의계는 이에 반해서 “한의학의 우월성과 순수성”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논쟁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되면서도 한번도 공개적인 토론의 주제가 되지 못했던 내용은 “한의학(양방) 과목의 의대(한의대) 교육”인 듯 합니다. 단순히 넘어가기에는 그 영향이 너무도 큰 주제를, 미국인들은 과연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을까?

최근 미 국립의료원(NIH)은 170만불이라는 연구비를 들여 Haramati 박사에게 상보대안의학(CAM)을 의과대학 교육 과정 속에 포함시키는 연구를 시작하도록 하였습니다.
Georgetown대 의과대의 Director of Education이기도 한 Haramati 박사는150편 이상의 논문, 저서 등을 발표한 신장 기능의 조절과 심부전에 대한 심신-호르몬계(cardiovascular-renal-endocrine) 조절 분야의 대가로서, 현재 curriculum의 개발과 시행을 총괄하고 있는 분입니다. 지면 관계상 시행 4년차에 들어가는 교육 과정 개발의 세부적인 내용을 모두 서술할 수 없음이 아쉽지만, 세미나와 토론을 통해 공개된 원칙적인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통합의학(Integrative Medicine; IM) 혹은 대안상보의학(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 CAM)에 대하여 의사들이 너무 모른다”는 현실 인식입니다. 현실적으로 너무도 많은 일반 대중이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의 지적 수준은 환자들을 만족시키기에는 너무도 부족하여, 의사들이 환자들에게서 괴리되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어떠한 치료법이 사용되고 있는지, 장단점은 무엇이고, 현존하는 양방 치료법과 어떤 상호작용이 있는지에 대한 임상 교육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 의사 고시(USMLE)에 이러한 지식들을 시험 문항에 포함시키는 방안이 연구되고 있음은 시사하는 바 크다고 하겠습니다.

둘째는 “의학은 하나다(One Medicine)”라는 개념-- 기존의 서양의학과 통합의학은 전혀 이질적인 것도 아니고, 특별히 열등하거나 우월하지도 않다. 환자를 치료한다는 전제 위에서는 통합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들은 모두 습득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서양 의학계가 한의학을 흡수하는 방안으로 제시되는 방법이 근거기반의학(Evidence-based Medicine)으로, 안전성(Safety)과 유효성(Efficacy)에 대한 정보를 근거로 하여, 특별한 이론적 기전 설명이나 해석 없이도 기존의 학문 정보 체계에 포함시킨다는 전략의 기조(基調)입니다.

셋째는 “실질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점-- 해부학 교과의 일부로서 침구학, 추나학 혹은 마사지를 포함시키고, 생리학 교과 과정의 일부로서 bio-feedback, neuromuscular manipulation을 포함시키며, 내분비학의 일부로서 스트레스 억제와 관련하여 명상과 호흡(기공)을 포함시키며, 신경과학(Neuroscience)의 일부로서 침의 작용기전을, 약물학(Pharmacology)의 일부로서 양약-한약의 상호작용, 생약학 등을 포함시키는 전략입니다. 실질적으로, 의과대학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Mind-Body Technique 교과 과정이 통합의학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학교생활에 대한 적응력을 높인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넷째는 통합의학을 기존의 서양의학과 동떨어진 현실로 인정하지 않고,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기초 과정을 마친 이후에도, 연구 경험과 실제적인 임상 응용 교육을 통해 “자연스럽게 자신의 일부”로 여기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이러한 과정을 촉진하기 위해 모든 의대 교수진(Faculty)들에 대한 재교육을 병행하여 기존의 부정적인 시각을 교정하고 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이러한 교육을 마친 미국의 의사들은 임상 현장에서 침, 한약, 마사지, 기공 등에 대한 적절한 지식들을 지니고 있으며, 기초 혹은 임상 연구를 통해 의학 발전을 주도한다는 전략입니다.

미 NIH에 의해서 촉발된 연구라는 점에서 본다면 10여년 후의 미국 의료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 의사 고시에 한의학 관련 내용이 모든 (양방) 과목에 고르게 포함될 것이며, 습득된 한의학 지식들이 (양방) 임상에 실질적으로 사용될 것이고, 침구와 한약재 연구에 있어서 중추적인 역학을 차지할 것입니다. 또한 이와 같은 냉정한 현실은, 미국의 의료를 답습해 왔던 한국의 현실을 볼 때, 10년 혹은 20년 후 한국 (양방) 의학계의 모습을 미루어 보는 거울이기도 하겠습니다.

현재 한국 의학계가 보이고 있는 ‘한의학은 과학이 아니며, 안전성과 유효성에 문제가 있기에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은, (십여년 후) 일순간 변하여 약사들의 ‘한의학은 내 것이다’라는 주장과 같은 궤적(軌跡)을 그릴 것이 명백합니다. 그때까지 해 놓은 것은 아무것도 없을 터이지만, ‘서양식 과학화 연구는 모두 양방’ 혹은 ‘미국 의료 체계는 모두 양방’이라는 논리로 다시 한 번 맹위를 떨칠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러한 현실위에서 한국 한의학 교육은 어떠한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 자문하게 됩니다. 교육 과정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양방 과목, 양방 병원의 시스템을 따라가는 교과 체계, 병원 임상을 통해 확대되는 양진한치, 한방 과학화라는 미명하에 이루어지는 한의학 연구들, (타의에 의해) 점차 확대되는 (양방) 근거기반의학의 범주들, 일반인 사이에 범람하는 얄팍한 한의학 지식들, 점차 경계가 모호해지는 한-양방 의료 영역.

세계 흐름 속에서, 이들에 대한 옳고 그른 가치평가란 너무도 근시안적인 태도입니다. 도리어, 차세대 의학에 대한 ‘한의학적 비젼(vision)’이 제시되고, 한국 한의학에 적절한 한의학만의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2004 학번이 활동을 시작하는 십여년 후에는 동양의학-서양의학의 구분 자체가 모호해질 것이며, 지금부터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만의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냉정한 현실입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맹목(盲目)의 편견에 발목을 잡힌 눈 뜬 장님은 아닐까? <끝>

필 자 : 경희대 한의대 졸(한의학박사), 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브랜드클리닉 재단 통합의학센터 리서치펠로우
E-mail : chaeh@ccf.org
Homepage : www.chaelab.org

채한 박사의 아메리칸 리포트는 이번 10회로 마칩니다. 그동안 보스톤통신(8회)에 이어 귀중한 원고를 보내주신 필자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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