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협 창립50주년 기념특집(4) - 한의협 조직의 발전과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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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협 창립50주년 기념특집(4) - 한의협 조직의 발전과 한계
  • 승인 2004.03.2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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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 제시-실천-검증-피드백 시스템 부재
주먹구구 회무종식, 정책으로 승부해야

견제세력 전멸, 참여 호소에 침묵 일관
4단체 의견조율로 정책능력 극대화해야

사진설명(上)-한의협은 자체적으로 준비한 정책토론회를 통해 각종 현안문제를 해결코자 했지만 단기적인 대책에 머물렀다는 지적을 받았다.(사진은 98년 2월 12일 열린 한의사 전문의 제도에 대한 심포지엄 장면으로 기사 중 특정내용과 관계 없음)

사진설명(下)-1990년대 들어 정부기관과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설립이 활발해 상대적으로 한의학의 공공성이 증대되었으나 투자지원이 미흡한 점은 개선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사진은 한국한의학연구소가 院으로 승격되면서 거행된 현판식 장면)

연재순서
1) 외연의 확장과 내포적 발전
2) 갈등과 대응
3) 평등의료운동의 성과와 과제
4) 한의협 조직의 발전과 한계
5) 세계로 미래로 가기 위한 조건

1만 2천 한의사의 법정대표기구인 대한한의사협회. 50년 풍상을 헤쳐오면서 얼마나 달라졌는가? 물론 조금은 달라졌다. 달라지지 않았다면 지나친 자기비하요, 과소평가다. 숱한 시련과 투쟁 속에서 변모를 거듭해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양적 변화를 발전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가? 상황대처능력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한의협의 존재로 한의학의 외연을 확장하고 내포적 발전은 이루었는가? 이런 문제에 답해야만 진정으로 발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협회는 뭐 한답디까?”

우선 한의협은 양적으로 신장을 거듭해왔다. 중앙조직인 사무처와 중앙이사회, 한의신문사, 지역조직인 지부,분회 조직, 참모조직으로서 각 분과위원회가 있다. 3권분립형 정부조직과 비교하면 의회격의 대의원총회와 정부격인 전국이사회, 사법부격인 윤리위원회가 있다. 여기에 더해 감사원격인 감사단과 학술자문기관인 대한한의학회가 뒷받침하고 있다.

정부의 국무위원에 해당하는 이사가 회무를 집행하게 되어 있다. 정부와 다른 점은 지부장이 이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최고집행기관을 형성한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한의협 지부장은 지역조직의 책임자임과 동시에 중앙회의 최고집행기관의 책임자가 된다. 형식적으로 보면 한의협은 전국 회원의 의사가 효율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조직인 셈이다.

그러나 한의협 역사는 조직형식의 전국성이 곧바로 의사결정의 전국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체로 중앙집권적 조직형태가 관철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의견수렴의 효율성 측면과 행동의 조직화에는 종종 한계를 드러냈다. 중앙에서 ‘모여라’ 할 때 활성화된 몇몇 지부를 빼놓고는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최대지부인 모지부는 각종 행사에 불성실하게 참여해 지방회원들로부터 눈총을 받곤 했다. 다른 지부도 사정은 대동소이했다.

이러다 보니 일선한의사들 사이에서 “중앙회는 뭐한답디까?”라는 말이, 중앙에서는 “지부가 굳이 필요합니까?”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올 정도다. 중앙은 지부가 일을 분담해주기를 바라지만 지부는 준비가 안 되어 있고, 지부는 중앙회에 회원의 이해와 밀접한 정책, 홍보, 기획 등을 잘 해주기를 바라지만 중앙회는 지부의 요구에 부응하기 어려운 처지에 있다. 지부직원이래야 사무국장이 고작이고 큰 지부는 경리직원 1명을 더 갖고 있을 뿐이어서 회비 걷고 일상적인 회무활동만 하기에도 버거울 지경이다. 중앙회는 직원이 28명에 이르지만 대부분 일상적인 회무를 처리하느라 여념이 없다. 임원진이라고 해도 대부분 개원의여서 절대시간이 부족해 보다 큰 일을 하기에는 물리적 한계를 보이고 있다.

회원이라고 해서 임원과 다를 게 없다. 개원의라는 특성으로 인하여 한의원을 지켜야 하므로 이들도 마찬가지로 시간이 없다. 개별적으로 정치활동이나 시민운동과 같은 대사회적 활동에 참여하고 싶어도 한의원에 매여 있어 시간을 낼 수 없다는 게 한의사 개원의들의 공통적인 생각이다. 정치나 사회운동은 고사하고 분회, 지부, 중앙회의 회무에 성실하게(?) 참여하는 일조차 말같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장기정책 전담기구가 없다

한의협이 분야별 전담이사제를 도입한 것은 199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다. 그 이전만 하더라도 이사가 전문화되지 않아 그때그때 역할을 분담하여 관장해왔다. 이런 시스템으로는 밀려오는 산적한 회무를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이사전담제가 도입되고 정책기획위원회라는 정책전담위원회를 구성하게 된다. 각 이사 산하에는 해당위원회가 만들어져 여러 전문가의 생각과 판단을 반영한 회무가 이루어지게 된다.

전산위원회의 경우 전문성이 두드러져 회장의 임기와 관계없이 차기 전산이사는 전산위원 중에서 선출되는 관행이 일찍이 자리잡았다. 다른 위원회도 전산위원회만큼은 아니더라도 해당위원회내에서 인력의 재생산을 담당하면서 자칫 단절되기 쉬운 회무에 연속성을 보장하고 있다. 또 회무절차도 많이 개선되어 위원회에서 결정된 사항은 중앙이사회와 전국이사회의 심의만 통과되면 실행될 수 있도록 의사결정과정이 간소화되었다.

그러나 위원회 제도는 한의계 인재의 발굴, 훈련이라는 중요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를 안고 있다. 위원회 제도는 집단결정에 의존하므로 의사결정이 이사 한 사람의 결정에 의한 것보다 훨씬 정확하고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해당분야를 넘어서는 분야에서는 거의 무용지물이 되었다. 이를 보완한 위원회가 정책기획위원회이지만 이 위원회의 위원들 대부분이 한의협 이사들로 구성된 나머지 단기대책에는 성과가 있었을지언정 장기대책에는 이렇다할 실적이 없다.

한의협은 한약분쟁 당시 국한위라는 역동적 조직을 운영해서 광범위한 정책활동을 전개해 상당한 성과를 거뒀지만 기존 이사회조직과 겹쳐 옥상옥이라는 비판을 받고 해산해야 했다. 그후 한의협내에는 한의학의 줄기를 논의하고 결정짓는 조직이 구성되지 않은 채 단기대책 위주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회장선출방식 변화돼야

한의협을 구성하는 여러 조직이 있지만 이들을 다 합해도 회장 한 사람의 역할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한의협 회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전임 수석부회장 유기덕씨는 한의협 회무중 회장이 차지하는 비중을 95%는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을 정도였다.

이런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회장은 기대만큼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선출방식부터가 문제로 거론된다. 누가 무슨 공약으로 선거에 나서는 지도 모른 채 200여 대의원이 총회당일 제한된 정보를 갖고 허겁지겁 회장을 뽑는 배수공천제 선거방식이 한의계를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입후보제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협회를 분열시킨다는 이유로 한두번 실시하다가 입후보자가 없자 사실상 배수공천제로 돌아섰다. 회장후보로 추대된 인물 대다수가 선거과정에서 돈이 들어가고 검증과정에서 망가지는 불행한 사태를 방지하고자 하는 고육지책의 측면도 배수공천제의 정착에 한몫 했다.

제한적이나마 배수공천제가 가지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후보 없는 선거라는 희한한 선거결과 한의협선거는 공약도 없고, 그래서 정책대결도 없고, 당선 뒤 지켜야 할 공약도 없으며, 회장의 자질을 검증할 기준을 갖지 못해 시대적 추세에 뒤쳐지게 됐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게 됐다.

한마디로 한의협은 공약 제시-실천-검증-피드백 하는 시스템이 부재하여 전현직회장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조직체인 셈이다.

가족주의적 한의협 회무관행은 공약이 없는 선거방식을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야당이 성장할 여지마저 없애 버렸다. 합의에 의한 추대를 선호하다 보니 시비를 일으키는 사람은 불만세력쯤으로 분류되어 매도되기 일쑤였다.

그 결과 지금은 한의협의 정책을 비판하는 세력이 실종되어 시비를 따지는 일이 없게 됨으로써 해당 정책의 옳고 그름, 방법론의 적절성, 시의성 등 일선회원이 식별할 판단기준을 가지기 어렵게 되었다.

이리하여 회원들도 모두가 애협심에 가득찬 한의사협회 회원인 듯 보였지만 정작 위기가 닥쳤을 때 집행부의 참여 호소에는 침묵했다. 설사 참여한다 하더라도 겨우 한의사통신망인 AKOM 꼬마마당을 빌어 한마디씩 불쑥 내뱉고 사라지는 행태를 보이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엘리트 충원구조 재정비를

한의협 일을 하는 사람은 회장을 비롯해서 부회장, 이사, 위원, 사무요원, 대의원, 감사, 지부장, 분회장 등 많다. 이 중에는 지역조직에 속한 사람도 있고, 참모조직에 속한 사람도 있다.

한의협 일은 안팎의 모든 자원을 동원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집행부 소수 몇 사람의 생각과 에너지만으로는 불가능할 정도로 일이 복잡해졌다. 문제는 그런 자원을 누가 어떤 방법으로 동원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고민조차 양방에서는 의협 부설 경영연구소에서 전담하고 있지만 그런 연구소가 없는 한의협으로서는 한의협 스스로 해결하는 도리밖에 없다.

한의협 회무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그 문제의 해결책의 하나로 4자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한의협, 대학, 학회, 연구소가 상시적인 대화창구를 개설해 한의계의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의계의 현 상황이 한의협만으로는 한계에 도달한 이상 학회, 대학, 연구소 등 떠오르는 집단의 힘을 활용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필요하면 대학을 방문해 설명회를 개최하여 한의협의 정책을 보고하고 그 정책에 맞는 인력양성방안을 대학에 주문하는 대신 한의협에서는 필요한 예산을 지원하는 식으로 회무스타일을 확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연구소나 학회에도 유사한 프로그램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선한의사의 욕구 증대

사회가 변화를 거듭함에 따라 일선한의사들의 욕구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벌써 수년전부터 신세대 한의사들이 배출되기 시작하여 새로운 사고를 하는 젊은 한의사들이 한의협 구성원의 절대 다수를 점유하고 있다. AKOM 등을 통해 들려오는 젊은 한의사의 목소리의 스펙트럼은 굉장히 다양하다.

젊은 한의사는 물론이고 일반한의사의 존재방식과 사고방식에도 변화가 이미 일고 있다. 입시커트라인의 상승으로 대표되는 한의학 선호도의 증가는 한의사의 사회적 지위상승과 역할상승, 욕구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국제적 국내적 환경 변화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기존의 조직방식이나 사고방식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연일 발생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의협의 회무도 달라져야 할 때가 되었다. 기존의 시스템으로는 분출하는 회원들의 욕구를 담아낼 수 없다. 그런데도 한의협은 과거 주먹구구식 회무방식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없다. 이제는 정책으로 승부를 걸지 않으면 한 걸음도 전진할 수 없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로비하는 조직, 닥쳐야 움직이는 조직, 회비나 걷는 조직이란 전통적인 이미지를 탈피해 데이터를 생산·관리하는 조직, 합리적 기준을 갖고 설득하는 조직, 한의계의 의사를 조율하는 조직으로의 변신이 요구된다 하겠다. (다음호에 계속)

김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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