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은 나의 삶24] 김영섭(서울 원백운당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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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은 나의 삶24] 김영섭(서울 원백운당한의원장)
  • 승인 2004.03.2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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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대 醫家 잇는 ‘문화’ 지기

“영화 ‘타이타닉’의 후반부, 마지막까지 연주하며 유람선과 함께 침몰하는 밴드의 모습을 기억하나요? 아비규환의 순간 밴드의 음악소리에 침착을 찾은 사람들이 차례로 탈출하게 되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 이것이 문화입니다.”

98년부터 서울 동대문문화원장과 전국문화원연합회 서울시연합회장을 맡고 있는 김영섭 원장(64·서울 원백운당한의원)은 국민대 공연예술원 겸임교수이자 수필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의 행보는 개원의로서 한의원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문화사업에 정열을 쏟고 있다.
그에게 한의사는 “천직”이고, 문화는 “산소”이기 때문이다.

◆ 일제에 말살된 전통문화 복원

경남 하동에서 출생한 그는 청년시절 당시 서울에서 진료하던 조부의 한의원으로 상경했다.
집에서는 김 원장이 조부에서 숙부로 이어진 집안의 가업을 이어주리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젊은 김 원장은 어렸을 때부터 보아왔던 한의사에게서 매력을 찾지 못했고 집안어른들의 눈을 피해 건국대 경영학과를 진학했다.

결국 졸업식 전날 한의대가 아니라 다른학교에서 졸업한다고 이실직고 한 후 다시 경희대 한의대를 입학함으로써 “탈출”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고, 13대 가업을 잇는 한의사가 됐다.

사회과학계열을 전공했던 그는 한국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진료를 하면서도 이 분야를 꾸준히 공부했다. 이 와중에 자신이 있는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과 관련한 향토사에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됐고, 1991년부터는 지역문화행사로 청룡문화제를 발굴했다.
동양권에서 용은 국가와 군주를 대표하는 상징물로서, 조선3대 태종은 한양의 다섯지역에 오방토룡단을 만들고 용신에게 기우제를 지냈다.

음양오행에 따라 마련된 동·서·남·북·중앙 등 다섯 곳 중 가장 먼저 만들어진 동쪽의 제단 동방청룡단은 지금의 용두동 자리이며, 임금이 친히 폐백을 하사해 예조나 관상감에서 받들어 제사를 지냈다.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사라진 이 제도를 옛 문헌에서 찾아내고, 매회 8천~1억원 가까운 비용을 사재로 충당하며, 지역 문화행사로 정착시켜 금년으로 14회를 맞게 된다.
이 행사는 전통제례 재현과 함께 국악공연·경로잔치·주민노래자랑 등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문화행사로 치러진다.

지난 2002년 월드컵 기간 중 동대문구 대표 문화행사로 선정, 많은 외국인이 관람한 그 순간은 아직도 큰 즐거움으로 기억된다.
동대문 제기동에는 매년 곡우에 임금이 풍농을 기원하는 선농단, 영휘원, 숭인원 등 문화 사적지가 풍부하다.

이에 98년 동대문문화원장을 맡아 문화행사를 주관하고, 동대문문인협회를 결성해 지역 문인들을 지원해오고 있다.
지난해 전국문화원연합회 서울시 지회장을 맡으면서 서울시민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예술이나 정통문화 개발을 구상중이다.

◆ 침향매료도 문화사랑탓

김 원장의 한의원에는 침향연구소가 딸려있다.
“침향은 성경에 태초에 하나님이 심으신 나무이며,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가셨을 때 장사를 지낼 때 썼고 사흘만에 부활케했다는 약재죠. 불교에서는 ‘남무침향불’이라는 성호로 사용됐죠.”

임상에서 침향을 사용해 신장병을 치료하고 있는 그에게 침향은 또 하나의 소중한 문화적 가치로도 해석된다.
“용과 매향은 한국의 귀중한 문화”라고 생각하는 김 원장이 침향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일단 문화적 마인드에서 비롯됐다.
약재로서 침향은 삼국 시대부터 수입돼 왕실에서만 사용됐다.
불가 행사에서 사용되는 최고의 공양품으로 애용돼 왔다.

희귀한 만큼 대중적으로 사용될 수 없었기에 백성들은 침향의 대용품만이라도 만들기를 소원했고, 香木을 묻어 매향비를 세우고 천년후에라도 침향이 나오기를 바랬던 것이다.
매향비는 국가의 종교적 염원이 담긴 민족의 사적인데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에 의해 일부 도굴됐다.

그는 집안의 비방을 이어 진료했다. 좋은 약재를 채취하기 위해 시간나는 대로 산이나 약재상을 찾아다녔다. 16년 전 침향을 알게 된 후 임상적으로도 유효하다고 판단한 그는 국내에서는 진품을 찾지 못해 유일한 재배지라고 알려진 베트남으로 건너갔다.
현지에서 침향을 매매하는 한국인을 만나 진품을 확보해 임상에서 사용하고 있다.

침향은 강한 항염작용을 나타내며 신장, 간 등에 효과적이다. 그는 침향과 12씨앗요법을 개발해 난치로 알려진 신장병 환자를 치료했고, 한의사 사이에도 이름이 알려져 보수교육 및 본초학회에 초청돼 강의를 했다.
“의자로서 좋은 약재를 확보하고, 진품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지사”라고.

◆ 한의학 문화로 숨쉬게 해야

제1·2대 동대문구의회 의원(보사분과위원장)을 맡기도 했던 그는 한의원과 문화원을 바쁘게 오가지만 자신의 문화생활을 포기하지 않는다.
최근에 개봉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를 재미있게 봤다고.

“보통 저녁시간에 모임이 많죠. 술자리가 벌어지면 2·3차까지 가게 되잖아요? 모임이 생기면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2차 이후 시간은 제시간으로 활용하죠. 시간은 누구나 똑같습니다만 활용하는 테크닉이 틀릴 뿐이죠”라고 설명한다.

이런 시간활용법으로 문화사업을 하고, 약초를 찾으러 다니며, 틈틈이 글을 썼다.
그는 “문화의 재생산이라는 측면에서 전통문화는 강력한 파워를 갖습니다. 5천년 역사를 가진 한의학은 중요한 전통문화이고, 브랜드화 할 수 있는 아이템이죠”라면서 “한의사로서 마인드를 가지고 지역사회와 문화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한의학의 문화사업을 시작하는 첫단계입니다”라고 말했다.

수필집 ‘꽃들이 나를 울린다’에 이어 후속 수필집과, 전문 한의학서로 선조부터 내려온 비방집 ‘만병록’을 준비중이다.
미국에서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경영하는 아내와 2남2녀를 두고 있다.

오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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