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은 나의 삶23] 권태식(서울 구로한의원장)
상태바
[한의학은 나의 삶23] 권태식(서울 구로한의원장)
  • 승인 2004.01.16 14: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bmaster@http://


산업한의학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사회적으로 최근 대규모 작업장에서 노·사 양측이 근골격계 질환의 산재인정 여부를 놓고 대립하면서 산업재해·직업병이 핫이슈로 부각됐다.

의료권에서는 99년 산재보험의 한방급여가 전면 확대되면서, 한의학이 산재를 다룰 수 있는 제도적인 여건이 조성됐지만 실제 한방측에서 소화하고 있는 규모는 양방에 비해 턱없이 적다.

국내 최초로 산업재해와 직업병을 전문으로 하는 서울 구로한의원이 문을 연 것은 95년 3월. 지금 이 한의원을 지키는 사람은 권태식(35)원장이다.

□ 산업한의학의 모태 구로한의원

최근 권 원장은 진료를 마치면 산업한의학연구회(가칭)를 본격 출범시키기 위해 회원들과 매주 회의를 하고, 한편으로 양방 산업전문의와의 토의를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 중랑구에 녹색한방병원이 설립됐다.

직업병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한방병원 규모에서 양방과 공조하면서 산재를 전문으로 하는 녹색한방병원의 설립은 일단은 한방산업의학을 본격적으로 다룰 수 있는 근거지를 확보했다는 평이다.

권 원장은 “사실상 구로한의원이 한방에서 유일하다시피 산재를 전문으로 진료해 왔지만, 한의학이 산재를 폭넓게 끌어안을 수 있는 임상적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은 그 작업을 시작해야 할 단계”라고 말했다.

구로한의원이 개원하고, 그가 원장으로 온 99년 이후에도 산재로 찾아오는 환자는 많지 않았다. 그는 이 시기를 한방이 산업의학으로 진입하기 전 ‘탐색기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서히 입소문을 타서 지난해 들어 한달에 10여명 이상의 산재환자가 찾아오면서부터는 “직업병에 대한 인식의 성장과 한방의 가능성”을 실감하며 산업한의학연구회 구성을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통상적으로 산재환자는 양방에서 최초 진단을 받은 다음 한의원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은데, 구로한의원에서 처음부터 산재환자로 인정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 노동자의 건강권 확보에 앞장

경북 안동에서 출생한 권 원장은 고등학교시절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정신과를 전공해야겠다는 생각을 품던 중 양방의학은 비교적 쉽게 공부할 수 있겠다 싶었지만 한의학은 접근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동국대 한의대를 입학했다. 동교에서 신경정신과 논문으로 박사학위도 받았다.

한의대 시절 청년한의사회와 관계하면서도 사회문제에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여왔다.
이때 학과 선·후배로 만난 아내 김동은(32) 씨는 현재 서울 녹색한방병원에서 진료하고 있다. 권 원장의 반려자이자 동료가 된 셈이다.

청년한의사회가 90년대 초 산업재해 직업병 한의원 및 연구소 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이 분야에 관여하면서 자연스럽게 권 원장도 참여하게 됐다.

98년 졸업 직후에 서울 현대한의원에서 부원장으로 지내다가 99년 구로한의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구로한의원은 설립추진위원회가 모금한 자금으로 출발했으며 권 원장은 매월 일정액을 급여로 받고 있다. 수입을 묻자 그는 “보통 한의사의 월급보다 적다는 정도로만 알라”며 웃는다.

□ 세계로 수출할 수 있는 출구

‘최초’라는 꼬리표는 빛을 발하는 반면 감수해야하는 고통도 크다.
더군다나 구로한의원은 지내온 시간보다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더 큰 시점에 서 있다.
권 원장은 산업의학의 미래는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산업의학의 분야는 미래사회구조의 요구에 따라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하지만 양방은 이를 모두 수용할 수 없으며 자연스럽게 한방에 대한 요구도도 높아진다.

권 원장은 특히 경험적으로 노동자 내부에서 한방치료에 대한 요구도가 자발적으로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서구의 통계는 근골격계질환자가 전체 산재 중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 분야는 모든 한의원에서 치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추구해야 할 산업한의학의 내용은 기존의 치료요법을 산재보험과 연결시켜나가는 데 있다.

한편 또 다른 측면에서 산재는 담당의가 정해지면 중간에 바꾸기가 쉽지 않다. 행정상 진단과 치료과정·효과를 분명하게 기록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는 각 질병의 치료효과에 대해 장기적인 시간을 두고 검증해 데이터를 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한방 뿐 아니라 전의학차원에서 치료효과의 허실을 분명히 구별할 수 있는 실험의 장이 되는 것이다.

권 원장은 “이 과정에서 한방의 치료법 중 ‘분명한 효과있음’으로 통계치가 뒷받침된다면 국내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한방치료요법을 수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한의학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만큼 현실적으로 넘어야 난관도 만만치 않다.

그는 “산재보험은 정부와 노동자, 기업이라는 다자로 구성된 영역에 의료가 개입된 형태”라면서 “한의학은 후발주자로 끼어드는 것이라 양방보다도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동자의 삶과 밀접한 산업의학은 구성원들의 의지와 높은 상관관계를 이룬다. 누가 칼자루를 쥐느냐에 따라 음식을 썰거나 흉기로 돌변하는 것처럼 구성원들의 의지에 따라 노동자의 건강권이나 비용의 논리로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권 원장은 “최대 고민은 바로 이점”이라면서 “노동자의 건강권 확보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가 바로 나와 한의계가 끝까지 풀어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오진아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